노무현의 ‘지방 살리기’ 꿈 현실화...선거용 ‘떡밥’ 될까 우려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행사에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관계부처 합동 초광역 협력추진 전략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지자체들이 연합해 광역 단위의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메가시티 구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메가시티 개발을 주도할 특별지방자치단체(특별지자체)도 내년 출범을 앞둔 가운데, 대규모 재정·행정 지원 방안을 포함한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서 사업이 탄력을 받은 것이다.
판 깔아준 정부..특례 조치로 획기적 인센티브 지원 나서
지난 14일 정부는 ‘초광역 협력 지원책’을 발표,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위한 전폭적 투자를 시사했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핵심 사업을 구성하고 산업과 연계할 주거, 문화 거점도시를 육성하기 위해 재정, 세제, 규제 등 특례로 통해 획기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지원책의 골자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시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는 기준은 기존 ‘총사업비 500억 원, 국비 300억 원’에서 ‘총사업비 1000억 원, 국비 500억 원’으로 두 배가량 높인다. 지방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심사를 넘지 못해 인프라 투자가 뒤처졌던 제약이 다소 완화될 전망이다. 낙후된 지역 현실은 인구 유출로 이어졌고 경기 침체로 다시 투자효율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이외에도 투자 효과가 큰 500억 원 미만 초광역 협력사업은 지방재정투자심사를 면제받을 수 있게 한다.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사업은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회계)의 ‘초광역협력 사업군’으로 분류, 국고보조율을 50%에서 60%로 상향할 방침이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기존 지역발전투자협약보다 강화된 지원특례 등을 담은 ‘초광역 특별협약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수도권’ 목표로 특별지자체 구성해 행정통합까지
초광역 협력사업은 복수의 지자체들이 연합해 ‘특별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하고 추진하는 사업을 말한다. 내년 1월 13일 개정 지방자치법이 적용되면서 특별지자체 구성이 가능해진 게 발단이 됐다.
특별지방자치단체는 메가시티를 타깃으로 광역개발을 위한 의사결정 효율을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 부산, 울산 경남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된 메가시티 구상은 이명박 정부에서 ‘5+2 광역경제권’으로 바뀌었으나 진척을 보지 못했다. 정부가 정하고 지자체에 하달하는 식의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지역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게 한계로 지적됐다.
이번 메가시티 논의는 지자체들이 공동의 개발모델을 도출하면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 부처들이 컨설팅 등으로 뒷받침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을 따르고 있다. 특별지자체는 중앙과 지자체 사이에 위치해 양쪽의 권한을 위임 받아 광역 개발을 주도하게 된다.
정부는 장차 특별지자체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구성 지자체의 고유 행정기능까지 부여받는 ‘행정통합’까지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자율적인 행정 통합을 돕기 위한 지방분권법 개정도 논의 중이라 앞으로도 특별지자체는 한껏 힘을 받을 전망이다.
현재 논의 중인 특별지자체 구상은 ▲대전·세종·충북·충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산·울산·경남 등 4개 권역으로 가닥이 잡혔다. 각 권역은 지역연구원을 통해 핵심 사업 구상을 내놓고 있다. 각 권역별로 지자체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내년도 출범을 목표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자체들이 광역 개발에 활발히 호응하는 배경에는 인구유출만은 막겠다는 절박함이 있다. 우리나라 인구는 2010년 4955만 명, 2015년 5101만 명, 2020년 5178만 명으로 증가했는데 이중 수도권 인구가 2443만 명, 2524만 명, 2595만 명으로 절반을 차지한 반면 지역은 소멸 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일 행정안전부 고시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시·군·구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공식 선정했다. 인구감소지역은 연평균 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순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 비율, 유소년 비율, 조출생률, 재정자립도 등 8가지 지표로 도출하는데, 서울은 없었고 경기·인천도 각각 2곳에 그쳤다.
경북과 전남이 16곳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강원 12곳, 경남 11, 전북 10곳, 충남 9곳, 충북 6곳, 부산 3곳, 대구 2곳 순이었다. 부산의 동구, 서구, 영도구, 대구의 남구와 서구 등 지방 대도시도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돼 지방 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박성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인구 이동이 주로 군 단위 지역에서 거점도시로 가고, 또 거점도시에서 대도시나 수도권으로 가는 구조”라며 지방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사회적 유출을 지목했다. 정부는 범부처와 지자체가 협력하는 2조5600억 원 규모의 52개 국고보조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메가시티 역시 이런 지방의 위기감과 맞닿아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메가시티를 주제로 19일 열린 토론회에서 “부·울·경 메가시티는 인접 지자체와 초광역 협력을 통해 기업을 유치하고 울산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미래를 꿈꿀 '또 하나의 수도권'을 만들자는 절박함에서 출발했다"며 "시민 공감과 지지에 기반한 메가시티 조성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미래 먹거리산업 등 투자 겹치지 않는 차별화 관건
메가시티는 지역을 묶은 후 산업 등 핵심 기능을 수행할 거점을 마련하고 인프라 투자를 통해 거점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거점과 주변간의 1시간 생활권을 형성해 서울-경기·인천지역처럼 주거, 일자리, 문화를 전부 제공할 수 있는 생활권을 형성하는 게 골자다.
결국 개발의 성패는 거점 지역에 안정적인 비즈니스 지구를 형성하고 산업 동력으로 기능할 기업 유치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특별지자체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광역화를 통해 도모할 산업 클러스터 구상을 내실화할 것을 강조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광역화를 통해 과도한 SOC 유치 경쟁 등 지자체간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안 하게 되는 구조는 반갑다”면서도 “다만 국가의 산업 구조가 변동된 큰 흐름이 지방의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한 만큼, 단순 인프라 투자에 매몰되기 보단 패키지 투자를 통해 고급 인력과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하고 지역 경제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마 교수는 이어 “수도권의 판교테크노 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자체적인 첨단 산업을 보유하면서 강남, 양재와 가까워 교육, 문화 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이었다”며 “지역 소멸의 위기는 광역화한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앵커 기업을 유치하고 젊은 세대가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인 만큼, 지자체들도 광역적 시각을 가지고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자체가 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산업 모델이 성패를 가르는 만큼, 현재 메가시티 형성을 통한 산업 비전이 권역끼리 겹치거나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꼽힌다.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혁신 사업에 비슷한 관심을 보이다 보니 향후 기업 유치 시 경쟁이 예상된다.
가령 울산이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수소경제권 구축을 꼽은 가운데 충남도 ‘탄소중립 대응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현안 사업으로 내걸고 수소 생산·유통 인프라 조성 등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지자체를 통한 메가시티 계획에서 빠진 지역의 경우 ‘소외론’도 제기된다. 전북과 강원, 제주는 현재 특별지자체 권역에서 빠져있어 메가시티 개발에 동참할 수 없는 상태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권은 기회와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음에도 지역 메가시티라는 형태로 뭉쳐 더 큰 기회와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며 지역 불균형에 대한 우려 목소리를 냈다.
반면 모든 지역이 광역화에 뛰어들기 보다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선택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광역 지원전략은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는데 의의가 있는데, 강원도는 사실상 수도권 생활권에 편입되고 있어 메가시티 개발 계획의 취지에는 포함되기 어렵다”며 “오히려 이러한 특성을 살려 특별자치도로서 권한과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광역화 계획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초광역 계획이 내년 지자체장 선거를 앞두고 두루뭉술한 선전용 구호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별지자체 출범도 실질적인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지자체가 하나 더 생기면서 공무원 집단의 양적 확장으로 그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메가시티를 해서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고 구조조정하고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지 못한다면 단순 도시 연합에 불과하다”며 공직사회 비대화 등을 우려했다.
남재걸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치단체 공동 명의의 ‘행정협의회’를 만드는 등 현재 지방자치법상 협력할 수 있는 방법도 많다”며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진정한 지역 발전의 성공사례가 될지, 새로운 ‘옥상옥’ 지방단체로 그칠지는 주민들이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