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관리법 회피하기 위한 원형보전녹지 조성 의혹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의원 아들이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50억 원을 받아 화제가 된 곽상도 무소속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는 어떤 일을 하고 그 돈을 받은 것일까. 시행사인 성남의뜰컨소시엄이 문화재 발굴 작업을 졸속으로 처리하는데 곽 의원 부자가 가담했을 가능성이 정치권과 수사기관 등에서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 조사 지역에 원형보전녹지를 지정, 발굴 작업을 간소화하고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는 취지다. 성남의뜰이 당시 경작지 등 생태적 보존가치가 없는 땅을 원형보전녹지로 지정했다는 관계자 발언도 나와 이 같은 추론을 거들고 있다.
원형보전녹지로 개발 편의 봐줬다는 의혹 불거져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곽 의원의 아들은 문화재법, 환경영향평가법 등 위반 소지가 제기되고 있다. 병채 씨는 2015년 6월~2021년 3월 동안 화천대유에서 일하면서 대장지구의 문화재 발굴 업무를 돕고 산업재해 등의 명목으로 50억 원 보상금을 받았다. 검찰 등은 이 돈이 곽상도 의원에 대한 뇌물이라고 보고 연관된 문화재청도 압수수색에 나선 상태다.
성남시 대장지구의 원형보전녹지는 지난 2017년에 성남시와 시행사인 성남의뜰이 확정했다. 원형보전녹지란 자연적으로 형성된 녹지 중 환경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을 지역 개발에 따른 훼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원형보전녹지로 지정된 토지에선 부동산 개발은 물론 문화재 발굴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당초 대장지구 지구계획에서 공동주택 개발지역을 모조리 피한 형태로 원형보전녹지가 설계돼 논란이 됐다. 보존 가치가 높은 녹지는 자연 환경에 따라 지구 중심이나 공동주택 구역에도 있을 법 한데, 결과적으로 개발에 방해되지 않도록 변두리에만 지정됐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전문가는 이를 두고 원형보전녹지로 문화재를 덮어 실제로 개발상의 이익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시행사는 원형보전녹지를 통해 착공의 걸림돌이 되는 문화재 지역을 대폭 줄였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중앙문화재연구원의 ‘2017 성남판교대장지구 도시개발사업부지 면적변경 및 원형보전녹지 확정에 따른 조사단 보고서’에 따르면 대장지구 내 문화재 조사 면적은 시행사가 성남의뜰로 바뀐 이후 과거 조사보다 16%나 줄어들었다.
성남시 대장지구의 도시개발사업부지.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원형보전녹지이며 주황색은 문화재 시굴조사범위, 청색은 표본조사대상범위를 의미한다. (사진=2017년 중앙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의견서)
중앙문화재연구원은 앞서 2009년 조사에선 대장지구에 유물산포지 7곳과 표본시굴대상지역 5곳을 확인, 16만 6359㎡를 조사면적으로 책정하고 “공사 전에 매장 문화재의 존재 유무를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같은 기관의 2017년 조사에선 조사면적을 13만 9608㎡로 2만6751㎡ 줄여 발표했다. 줄어든 면적은 모두 원형보전녹지와 겹치면서 문화재 발굴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다.
‘전답’과 ‘농장’이 ‘원형보전녹지’로 둔갑한 이유는?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장지구의 원형보전지역이 애초 자연보호 목적이 아니라 착공에 걸림돌이 되는 문화재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의혹은 성남의뜰이 생태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원형보전녹지를 조성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힘을 받고 있다.
성남의뜰 관계자는 지난 27일 <주간한국>과의 통화에서 원형보전녹지 중 일부가 원래 전답, 농장이었던 땅에 나무를 심어 녹지를 조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구 남동쪽에 위치한 A12블록(현재 더샵판교포레스트 단지) 위에 설계된 원형보전녹지는 기존에 전답이었던 지역인데, 경관녹지를 조성하기 위해 15~30cm 높이의 수목을 심었다”며 “A1, A2블록(현재 판교퍼스트힐푸르지오 1, 2단지) 북쪽의 원형보전녹지도 옛날에 농장을 하던 지역이었다. 그곳인 이미 산림이 훼손된 지역이라 묘목을 드문드문 심었다”고 밝혔다.
이는 환경영향평가법이 규정하고 있는 원형보전녹지에서 한참 벗어난 개념이다. 당초 원형보전녹지인 곳을 녹지로 인정받기 위해 비용을 들여 수목을 식재한 것도 이상하지만 농지가 원형보전녹지가 될 수 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환경정책ㆍ평가연구원에서 펴낸 ‘환경영향평가서 검토 및 작성매뉴얼’을 보면 환경영향평가 시 식물군락의 종을 조사해 인위적 개변상황을 파악하고 1에서 10까지 10개 등급으로 구분된 ‘녹지자연도’를 설정하게 돼 있다. 농경지는 이중 낮은 단계인 1~3등급의 ‘개발지역’에 해당하고 자연림, 원시원, 고산초원이 보통 8~10등급의 ‘보전지역’으로 묶인다.
보전지역은 우수한 식생이 형성돼 있어 조경 시 외래 수종을 최소화해야 할 정도로 까다롭게 관리된다. 하지만 대장지구의 원형보전녹지 중 일부는 개발 이전에 전답, 농장 등 사람의 손이 많이 탄 토지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보전 가치가 없는 곳을 지정하고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어 가치를 만든 셈이다.
지난 28일 성남시 대장지구 내 A12블록(현 더샵판교포레스트 단지)의 북쪽에 마주한 원형보전녹지. 단풍이 든 수목이 녹지 일대에 빽빽히 식재돼 있다. (사진=이재형 기자)
지난 28일 성남시 대장지구 내 A12블록(현 더샵판교포레스트 단지)의 북쪽 원형보전녹지 내 나무에 걸린 이식수목 표찰 (사진=이재형 기자)
지난 28일 성남의뜰 관계자가 말한 원형보전녹지에 가보니 수백그루의 묘목이 인위적으로 심어져 있었다. A12블록과 도로 1개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 이웃해 있는 사각형 형태의 원형보존녹지 구역은 지도상 단지 내 학교 2개 면적과 맞먹는 넓이이다. 하지만 해당 구역에는 묘목 수백그루가 빽빽하게 식재돼 있었다. 식재 영역은 해당 녹지 외곽부터 100여m 안쪽까지 이른다.
이들 나무의 높이는 주변 자연림의 절반 수준인 3~4m 정도로 보였고 굵기는 한 손으로 기둥을 감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늘었다. 각 나무에는 목재 지지대와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박은 검은색 관이 설치돼 있고 연번, 수종, 규격, 조사등급, 굴취위치, 식재위치가 적힌 이식수목 표찰이 달려 있었다. 조경업자들이 작업 후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여분의 지지대용 막대기도 일대에서 수십여 개 목격됐다.
대장지구 북쪽에 위치한 A1블록 역시 아파트 단지와 이웃한 원형보전녹지가 있다. 이곳에는 판교퍼스트힐푸르지오 1, 2단지의 북쪽에 각각 사각형의 녹지가 조성돼 있는데 잔디가 각진 야트막한 언덕에 드문드문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두 지역 모두 면적은 꽤 되지만 가로막혀 있어 접근은 안 되는 곳이다.
대장지구 사례를 종합하면 문화재 조사를 통해 문화재가 나오더라도 해당 지역을 특별한 이유 없이 원형보전녹지로 지정하고 나무만 적당히 심으면 조사를 피해가는 식의 꼼수가 가능한 셈이다.
성남시 “원형보전지역 식재 사실 전혀 몰랐다”
성남시 녹지과 관계자는 “대장지구는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는 시행사인 성남의뜰이 조경 등 업무를 전담하고 있어 원형보전지역의 식재 등의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 정책연구소 소장은 “개발 지구의 원형보전지역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 한해 일부 가능하지 대장지구처럼 모든 녹지를 다 외곽으로 빼버리는 식으로 대규모 조정을 한 적은 없었다”며 “보통 원형보전지역 변경은 문화재청 내부 인사들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 가능한 것인데, 내부의 권력이 있는 누군가가 화천대유에 조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