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중도층 확장’ 시사했지만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우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지리멸렬한 ‘밀당’이 결국 협상 결렬로 마무리됐다. 김 전 위원장이 합류 조건으로 내세운 새로운 인물을 축으로 한 선대위 구성과 의사결정 상의 전권 요구가 끝내 수용되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민의힘은 ‘김종인’이 없는 선대위를 출범시켰지만 중도층 확산이 더 어려워졌다는 당내 비판도 벌써부터 제기되는 등 뒤숭숭한 상황을 맞고 있다. 반문(반문재인) 연합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혁신과 신선함, 중도층을 유인할 구심점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더는 못 기다려” 김종인 없이 선대위 꾸린 尹
윤 후보는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6개 총괄본부장과 대변인 등 인선안을 상정하고 최고위원회로부터 추인을 받았다. 윤석열 선대위는 이준석·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김한길 새시대위원장과 6개 총괄본부장으로 구성됐다.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는 당초 거론됐던 김종인 전 위원장의 보이콧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비워진 채로 시작하게 됐다.
윤 후보는 이날 회의에서 “선거운동이 더 지체돼서는 곤란하고, 1분 1초를 아껴가면서 우리가 뛰어야 될 그런 상황”이라며 “선대위가 출발하게 된 만큼 저 역시도 압도적 정권교체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총괄선대위원장 없이 선대위가 출범하는 점에 대해서는 “선대위 구성은 한 번에 전부 마무리해서 발표하는 것보다, 일단은 기본적인 우리 당조직과 관련해서 우리 당에서 출발되는 선대위 조직을 먼저 구성을 좀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핵심인사로 손꼽히는 김 전 위원장의 부재에도 윤석열 선대위가 출범한 배경에는 선대위 출범부터 발목이 잡혀 삐걱거린다는 당 안팎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김 전 위원장과의 지루한 샅바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대위 쇄신을 이끌고 정책 공약을 선보여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크게 벌어졌던 윤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근소하게 좁혀져 ‘접전’ 양상을 띠고 있는 점도 국민의힘 내부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지난 22~24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1월 넷째 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 후보는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35%를 기록, 32%를 확보한 이 후보에 3%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가상번호(응답률 29.6%)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은 ±3.1% 포인트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추세적으로 윤 후보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졌던 이 후보 입장에서는 오차범위 내 팽팽한 접전으로 격차를 줄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역전될 수 있다는 ‘골든크로스’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했다.
윤 후보의 ‘컨벤션 효과’가 힘을 잃고 김 전 위원장과의 갈등이 깊어지자 국민의힘 당직자와 지지자들은 “우리가 뽑은 대선 후보가 윤석열이냐 김종인이냐”라며 반발했다. 김영우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국민의힘 대선 캠프는 말 그대로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캠프이자 대통령 후보인 윤석열 후보의 캠프가 돼야 하는데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는 문제로 길게 헤매면 피로도가 높아지지 않을까”라며 “정권 교체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에게 국민의힘이 계속 실망을 끼쳐드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임승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경선 이후 우리 당은 줄다리기와 기싸움으로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선대위 구성 과정이 당원과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있나”라고 지적했다. 또 선대위 구성에 발이 묶인 데 대해 “상대 후보는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이에 맞서 어떤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나”라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에 물밀듯이 몰려오던 청년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으신가”라고 비판했다.
산통 끝에 나온 선대위…참신함 대신 ‘올드보이’의 귀환 지적
국민의힘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단 선대위 출범이 11월을 넘기지 않으면서 ‘김종인 리스크’와 당내 불만은 일단락된 가운데, 윤 후보는 중도 지지층에 대한 확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윤 후보는 선대위 구성을 선언한 자리에서 “우리 민생, 공정, 미래 가치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대한민국을 정상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 같다”며 “또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아우르는 모습을 통해 민주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드리고자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인선에 대해 “과거 보수정당에 몸을 담지 않았던 분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오신 분, 이 정부가 망가트린 공정,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삼고초려해서 모시겠다”며 “최고위에 부의를 하게 되면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그런 방식으로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 선대위 조직은 계속 보강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현 선대위를 보면 정책총괄본부장에 원희룡 전 제주지사, 조직총괄본부장에 주호영 의원, 직능총괄본부장에 김성태 전 의원,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에 이준석 당대표, 총괄특보단장에 권영세 의원, 종합지원총괄본부장에 권성동 사무총장이 선임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서 떨어져 나갔던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선대위 대변인에는 전주혜·김은혜 의원, 김병민 전 비대위원, 원일희 전 SBS논설위원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윤 후보가 강조한 중도 확장성을 이끌어낼 인사는 이 대표 외에 딱히 눈에 띄는 인사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과거 민주당 진영을 거쳤던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과 김한길 새시대위원장은 진보적 가치관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올드’ 이미지가 강하다.
윤 후보는 이 같은 평가에 대해 “다양한 연령층을 검토를 해봤는데 적임자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유능한 분들이 있으면 선대위 조직이라는 것이 딱 한 번에 확정되는 것 아니고 변경되고 보완되고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유연한 조직이라고 보시면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 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근택 변호사는 지난 19일 KBS ‘여의도 사사건건’에서 이른바 ‘3김’(김종인·김병준·김한길)의 선대위 도입설에 대해 “대선이라는 것은 미래 비전, 희망, 뭔가 이걸 보여줘야 되는 건데 이건 지금 뒤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라며 “결국은 영남 중심, 아니면 6070 중심의 당의 틀을 못 벗어난다, 이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선대위 구조”라고 지적했다.
여성 범죄심리분석전문가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선대위 영입설도 최근 관심을 끌었지만 이 대표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실현가능성은 멀어졌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 ‘팩폭시스터’에서 이 교수 영입설과 관련해 “저는 후보가 저에게 단 한 번도 그 문제를 상의한 적이 없고, 실제로 영입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며 “(영입) 한다면 반대한다. 확실히”라고 밝혔다. “만약 그런 영입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 당이 선거를 위해 준비했던 과정과 방향이 반대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는 기존 2030 남성의 지지층을 유인해왔던 이 대표의 행보와 이 교수의 영입이 부딪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교수는 여성 대상 범죄를 비롯해 여성과 아동의 인권보호에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에 따라 2030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이 교수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해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강했다.
김종인과 줄다리기 중 ‘전두환 조문’ 논란 불거지기도
한편 윤 후보는 최근 정무적 판단 실수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와의 관련성이 다시 덧씌워지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윤 후보는 지난 23일 오찬 직전에 전 씨가 이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조문을)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라며 직접 조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내부에서 조문의 적절성 논란이 불거져 2시간 만에 조문하지 않기로 입장을 바꿨다. 윤 후보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힌 소위 ‘전두환 옹호론’이 다시 부각될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윤 후보는 불과 한 달여 전인 지난달 19일 당내 행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발언하며 크게 물의를 빚었다. 비판 여론이 불거지자 이틀 뒤 “전두환 정권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다음날 SNS에 반려견 ‘토리’에게 인도사과를 주는 사진을 게재한 행태로 ‘전날 사과 표명을 희화화하는 것이냐’는 당안팎의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결국 윤 후보는 지난 10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저의 발언으로 상처 받으신 모든 분들께 허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와 관련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MBC ‘뉴스외전’에서 “(전 씨 조문 건은) 입장 수정 자체가 문제”라며 “인간적 측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윤 후보의 한국 정치사에 대한 역사관 부족이 드러난 사례”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나중에라도 들어올까?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6일 오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서울 광화문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의 정치력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만큼 중도층 표심 분석에 탁월한 김 전 위원장의 역할론이 계속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선대위 출범 하루 전인 지난 24일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 권 사무총장은 만찬회동을 가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양측은 거친 말을 주고 받으며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감정 싸움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선대위) 밖에서 (윤 후보를) 돕겠다고 한 적도 없다”면서 “오늘도 (윤 후보가) 나한테 무슨 최후통첩을 했다고 신문에 주접을 떨어놨던데, 내가 그 뉴스 보고 잘됐다고 그랬다”고 쏘아붙였다. 윤 후보도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우리 김종인 박사와 관련된 얘기는 이제 안 할 것”이라며 답을 피했다. 막판 합류가 결렬이 된 후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만 낳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 총괄선대위원장 자리가 비어있어 전격적인 합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김 전 위원장도 윤 후보의 결단을 기다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간이 가는 거야 시간이 해결할 테니까, 시간 가는 걸 지켜본다”고 답하며 여지를 남겼다.
이 대표는 같은 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김 전 위원장의 요구사항이 많은 게 아니었다. 선대위 운영하는 데 있어 여러 지방 방송이 나오지 않는,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대선 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딱 하나인데 ‘그거 정도는 받아들여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