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하는 尹 “굉장히 만나고 싶다”…무력시위 나선 李 “안 만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인재 영입 등을 둘러싸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지난 7월 이 대표가 윤 후보의 입당을 “오월동주”라고 비유했던 두 사람의 당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마침내 기로에 선 모양새다.
이 대표는 당무를 거부하고 지방을 돌면서 잠행을 이어가면서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캠프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선대위 인사들에 대한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윤 후보가 이 대표의 요구를 100% 받아들일지가 사태의 관건이 된 상황이다. 양측이 원만한 합의를 한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생채기를 남길 것으로 관측된다.
선대위 쇄신과 핵심 측근 배제 요구한 李…尹 화답할까?
이 대표는 지난 2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한 후 기자들과 만나 "(캠프) 핵심관계자 말로 언급되는 저에 대한 모욕적인 말들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갈등의 원인을 지목했다.
특히 이 대표는 "당대표 사퇴설이라든지, 특히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인사에 대해 (윤석열 후보는)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고, 알고 있다면 인사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요구했다.
이 대표는 앞서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총괄선대위원장 추대가 무산되면서 당내 입지가 현격하게 좁아졌다. 당초 윤석열 선대위는 김종인, 김병준, 김한길의 정치계 원로들로 구성된 이른바 ‘3김’ 선대위 구상이 유력했다. 하지만 전권을 요구한 김 전 위원장과 윤 후보의 협상이 결렬됐다. 산통 끝에 지난달 25일 선대위가 개문발차 했지만 이 대표는 김 전 위원장과 함께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는 프레임을 피하지 못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29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긴 후 지방으로 잠행을 하면서 선대위 중요 당무는 시계제로에 놓였다. 지난 2일 예정된 선대위 두 번째 회의는 이 대표 불참으로 결국 취소됐다. 당내 여론은 당대표를 향한 비난 여론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윤 후보의 지지자 일각에선 이 대표를 대선의 ‘리스크’로 규정하고 탄핵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누리집 게시판에는 “이 대표가 정권교체를 눈앞에 두고 거의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있다”, “이 대표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기정사실이며 대선전까지 당을 혼란에 도가니로 몰고 갈 것이다”, “이준석은 당대표에서 사퇴하라” 등의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의 앞길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다.
국민의힘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도 패싱 위기에 몰린 이 대표가 본인의 정치적 위상 및 대표로서의 지위 회복을 위해 무력시위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번 잠행으로 입지가 한결 좁아진 이 대표는 윤 후보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지역구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 대표측은 지난 1일 부산 사상 당협 사무실을 방문한 뒤 당원 증감 추이 등 지역 현안 체크 및 격려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 듣는 이는 없다. 당대표가 장 의원도 없는 사무실을 일정까지 전면 취소하고 찾아가 ‘인증샷’을 찍고 나온 의도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이 대표의 반대로 선대위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뒤 페이스북 글을 통해 불만을 내비친 바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준석은 ‘이대남’의 관심대상일지는 모르나 ‘이대녀’들에게는 혐오 대상이다”, “김종인이 몽니를 부린다” 등 이 대표를 저격하는 인터뷰를 해온 이른바 윤핵관 당사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런 배경으로 이날 이 대표의 장 의원 사무실 방문을 경고의 의미로 보는 해석이 힘을 받고 있다. 이 대표가 장 의원을 비롯한 윤 후보 측근에게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기습 방문’의 형식은 이 대표가 윤 후보에게 당했던 수법이기도 하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7월 입당 당시 이 대표와 일절 상의 없이 이 대표 없을 때 기습적으로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 입당한 바 있다. 최근에는 이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직접 반대한 이수정 교수의 공동 선대위원장 영입까지 윤 후보가 강행한 데다 윤 후보의 충청권 유세 일정을 당 대표가 몰랐던 점까지 드러나면서 패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이수정 선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한테도 30대 아들이 있다”면서 대화하겠다고 밝혀 ‘당 대표를 애 취급 한다’는 논란까지 불거지는 등 이 대표의 심기를 건드렸다.
갈등의 당사자인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시위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이 대표는 패싱 논란과 당무 보이콧을 이슈로 키우고 있지만 윤 후보는 아무 일 없는 듯 유세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1일 충남 천안에서 지역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이 대표가 당무와 선대위 업무는 계속 수행하는 상태라고 본다”라며 “부산에 좀 뭐라고 할까, 리프레시(refresh) 하기 위해 간 것 같다”며 이 대표의 시비를 모르는 듯 심드렁하게 받았다.
‘2일 예정된 선대위 회의에 앞서 이 대표와 소통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도 윤 후보는 “오늘 제게는 충청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 우선 이 일을 마무리하고 생각해보겠다”며 딱히 이 대표를 염두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민주당 행사에 참석한 김종인, 尹 겨냥한 간접 시위 논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 토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와 윤 후보는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전권’의 향방을 놓고 기싸움을 벌였었다. 이 대표는김 전위원장을 단독으로 총괄선대위원장에 추대하고 중요 의사결정 등 전권을 위임하는 ‘원톱’을 주장했다. 윤 후보 측은 김병준 상임위원장과 김종인 전 위원장을 공동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는 투톱 체제를 주장하면서 대립했다.
이 대표가 김 전 위원장 영입 입장을 앞장서서 밝히면서 윤 후보도 앙금이 남았다.경선 때 함께 사선을 넘은 윤 후보 캠프 인사들의 영전 문제도 이 대표와 윤 후보 간 갈등의 진원지 중 하나였다. 특히 당초 선대위 비서실장으로 거론됐던 장 의원 등 일부 인사를 놓고 이 대표와 윤 후보가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인 가수 노엘 씨가 최근 무면허 음주운전 및 경찰폭행으로 구설에 오른 장 의원의 비서실장 임명을 이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은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장 의원이 떠나면서 중요 인사권을 일부 양보한 윤 후보 입장에선 김종인 전 위원장이 김병준 상임위원장까지 비토하는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려웠다. 김 전 위원장의 밀당으로 선대위 출범이 미뤄지면서 윤 후보 측근들의 반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된 윤 후보가 아직 선대위 들어오지도 않은 김 전 위원장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불만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마침 이 시점에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선대위 전면 해체 및 대국민 사과 등 파격 행보에 나선 상태라 윤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선대위 출범 하루 전인 지난달 24일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이 긴급 회동을 갖기도 했지만 결국 ‘전권’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
이후 양 측의 관계는 감정싸움으로 진화했다. 윤 후보는 “나는 우리 김종인 박사와 관련된 얘기는 이제 안 할 것”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김 전 위원장도 “오늘도 (윤 후보가) 나한테 무슨 최후통첩을 했다고 신문에 주접을 떨어놨던데, 내가 그 뉴스 보고 잘됐다고 그랬다”라고 쏘아붙이는 등 반목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행사에 참석해 다양한 억측을 유발시켰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서울 종로 교보타워에서 개최한 ‘박용진의 정치혁명’ 출판기념회에 김 전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박 의원과의 관계 때문에 예정된 일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김 전 위원장의 발걸음은 눈길을 끌만했다.
물론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과의 연결 가능성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 보면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이날 박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을 향해 “재벌 개혁에 대한 거친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할 수 있도록 구체성을 심어준 가르침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 말씀 드리자면 (국민의힘 선대위에) 안 가셨으면 좋겠다”며 당부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도 “우리가 늘 유행어처럼 ‘공정과 정의’를 많이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며 “박 의원이 보다 훌륭한 지도자의 길로 가는 데 노력해달라”고 덕담했다. 자신의 정치 참여 목적을 ‘공정과 정의’라고 강조해온 윤 후보를 의식하고 꼬집어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李 “의제 사전 조율해야 만날 수 있다니 굉장한 당혹감”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 사이의 앙금이 이처럼 쌓이고 있지만 김 전 위원장 거취 등 국민의힘의 향방은 결국 주도권을 거머쥔 윤 후보의 결심에 달렸다. 윤 후보 입장에서도 이 대표 도움 없이도 중도층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경선 때부터 불거졌던 설화와 부인 김건희 씨를 비롯한 측근 논란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기본소득제도를 철회하는 등 시장 경제적 정책을 곁들이면서 ‘물타기’ 전략으로 전환했는데 국민의힘은 의제 설정 등 경쟁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이 대표의 당무 거부 행위에 대해 “윤 후보가 대선에서 지면 이 대표의 정치적 생명도 끝이다”라며 “선거전략에 밝은 김 전 위원장의 도움 없이는 윤 후보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당무 거부까지 감수하며 김 전 위원장 영입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와의 내홍도 지지층 불안을 고조시키는 등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일 안승진 ‘팀 공정의 목소리’ 대표가 국회 소통관에서 “저와 팀원들은 윤 후보 곁을 떠날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히는 등 당내 2030 지지층 이탈도 표면으로 나타난 상태다.
당내 상황이 흉흉해지자 윤 후보도 방관했던 태도에서 적극적인 수습에 나서려는 모습으로 전환했다. 윤 후보는 지난 2일 경선 경쟁자였던 홍준표 의원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지난달 5일 경선 이후 27일만의 만남이다.
홍 의원의 검찰 선배가 동석한 이날 만찬은 3시간 넘게 이어졌는데 홍 의원은 주로 듣기만 했다고 전했다. 이날 만찬에서 윤 후보는 선대위 난맥상과 이 대표와의 갈등을 거론하면서 홍 의원의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홍 의원은 제주도로 가서 이 대표와 만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 후보가)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내일 제주를 간다고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문제는 윤 후보와 이 대표의 회동이 성사된다고 해도 과연 봉합이 될 지가 불분명하다. 이 대표는 한 매체와 문자 메세지를 통해 윤 후보가 제주도에 오더라도 “안 만난다”고 했다. 본인이 요구한 선대위 쇄신과 핵심 측근의 정리가 없는 단순한 ‘보여주기 회동’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도 3일 서?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선대위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와의 회동 여부와 관련해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대위 회의 후에는 “제가 오늘도 사실 일정을 좀 정리하고 제주도에 가려고 했는데, (이 대표가) 장소를 또 옮긴다고 그러고 안 만나겠다고 선언을 했다”며 이 대표를 향해 “굉장히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젊은 당 대표”, “만날 때마다 참 새로운 걸 배운다”, “나이는 젊어도 당 대표 맡을 자격이 있다고 얘기를 해왔다”는 등 이 대표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이어갔다. 윤 후보는 이어 이 대표가 전날 기자들에게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인사를 후보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를 들은 사실이 없다”고 밝혀 여전히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에 앞서 권성동 사무총장 역시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제주도에) 안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나면 뭔가 해결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결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이 대표를 찾아가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즉각 반발하면서 윤 후보의 회동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제주시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 측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하면서 의제를 사전 조율해야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며 “굉장한 당혹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만남을 하려면 검열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후보가 직접 나오지 못하고 핵심관계자의 검열을 받으면서까지 절대 만날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권 사무총장의 조율 언급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여 여전히 날이 선 갈등 양상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 대표의 잠행은 당분간 더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윤 후보가 반문(반문재인) 정서에 편승해 지지율을 높였지만 이후 김 전 위원장과의 갈등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국민의힘의 전통 지지자들만 껴안는 모습을 보인 한계가 노출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가 강조한 중도 확장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따른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그동안 윤 후보가 지지율이 높았던 건 ‘정권 교체’ 여론이 높았던 영향인데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만의 대결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윤 후보는 2030세대의 지지를 견인할 수 있는 김 전 위원장,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고 여성,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등 중도층으로의 확장성이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며 “결국 윤 후보가 국민 과반에 이르는 정권 교체 여론을 아우르는 인물은 아니라는 여론을 형성, 정권 교체 여론의 후광에서 벗어났다. 후보 대 후보만 놓고 비교하면 윤 후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