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특검’ ‘결선투표제’ 말고 공통점 없는 제3지대 공조 가능할까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방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양당 체제를 극복하고 민생 정치, 미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정책적 협력을 하기로 했다.” 지난 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공조하겠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제3지대’ 연대지만 양당이 보수-진보의 가치관 차이를 극복하고 대안 세력으로 성장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정치지형은 좌우 진영으로 첨예하게 양분됐고 두 후보는 대선후보 여론조사상 10% 이상 지지율을 확보한 적이 없다. 3개월 뒤 대선 레이스 끝에서도 두 후보는 손잡고 있을까.
양당 사이에 낀 군소정당의 ‘몸값 높이기’ 전략일 수도
현재 제3지대 연대가 공조하는 노선은 일부 정책에 국한돼 있다. 민주당-국민의힘 양당 대선 후보가 관련된 대장동·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쌍특검’, 결선투표제 도입 등 노선은 일치하지만 그 외에는 정책적 접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안 후보는 큰 정부론을 펼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 ‘연금개혁’ ‘부채비율’을 지적하며 맹공에 나섰다. 심 후보는 군 병사-간부간 두발·복장 규정 통일 등 ‘평등군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을 의제로 꺼내들었다.
연립정부나 공동정부 등 정권 창출을 위한 협력체 청사진은 밝혀진 바 없다. 제3지대 내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심 후보는 “아직 이른 얘기”라고 했으며 안 후보도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나 손학규 무소속 후보와도 연대해 공조를 넓히겠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안갯속이다. 김동연 대선 캠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서 “(제3지대 공조 발표는) 언론과 시민들이 기대했던 회동이었지만, (두 사람이) 사진 한 장 함께 찍을 용기도 의지도 없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국민은 하나도 없다”며 “정말로 양당 기득권을 대체하는 정치세력 교체를 위해 노력할 의지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제3지대 공조가 진전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7일 오전 국회에서 탄소중립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두 후보가 서로 민주당, 국민의힘과의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잠시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안 후보는 지난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오세훈 서울시장과 단일화했다. 정의당은 지난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 민주당에 힘을 실어 줬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위성정당 출현으로 좌절을 맛본 경험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제3지대가 결국 거대 양당에 흡수되는 양상이 펼쳐질 경우 군소 정당 입장에선 세를 끌어모아 교섭력을 키워 놓는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지금 양대 정당 바깥에 있다는 점 외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단일화는커녕 선거 연대도 쉽지 않을 거다”라며 “연대를 통해 독자 세력을 확보한다기 보다는 두 후보가 함께 쌍특검 등 쟁점을 키워 존재감을 키워 놓고 향후 민주당, 국민의힘과 단일화할 경우 ‘몸값’을 올리기 위한 목적에 가까워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러브콜’ 받는 심상정과 김종인의 ‘사퇴 종용’ 굴욕 안철수
이재명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켜 정의당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위성정당’ 창당에 공개 사과하는 등 심 후보와 정의당을 향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15일 ‘위성정당 방지법’을 선거대책위원회에 지시한 데 이어 지난 9일 정당혁신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이번 기회에 정치개혁특위에서 우리가 주도해서 위성정당은 불가능하도록, 소수 정당들도 상응하는 자기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0일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글로벌인재포럼2021 행사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피해자인 정의당은 앙금이 남아 있어 갈등을 봉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장혜영 정의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말로는 뭘 못하나. (위성정당 관련 안건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안건으로 반영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안 혹은 당차원에서의 안을 가지고 오지 않는 한 단순한 말에 불과하다”며 냉담하게 반응했다.
안 후보의 경우는 현재 국민의힘 선대위의 전권을 잡은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과 갈등의 골이 깊다. 지난 3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국면에서는 김 위원장은 “(안 후보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 안 후보는 “(김 위원장은 오세훈) 후보 뒤 상왕”이라며 서로 헐뜯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했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위기대응위원회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위원장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 여론이 강한 점을 근거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혼자서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언론 인터뷰 등 공개 장소에서 단일화가 아닌 안 후보의 자진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안 후보가 스스로 윤 후보가 단일화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해주면 되는 것”이라며 “(대선) 포기는 본인의 결단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이에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김종인 위원장이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켠 건가. 국민의당은 무늬만 정권교체인 국민의힘 눈속임에 거들 일 없으니,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의 노력을 하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압도적 1등 없는 대선 국면, ‘케스팅 보터’ 군소정당 힘 얻나
다만 군소정당이 ‘캐스팅 보터’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졌다. 양당 지지율이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어느 양쪽도 아직 대세를 자신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이재명·윤석열 양당 후보 모두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가 매우 높아 중도층 지지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12월 둘째주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는 이 후보가 38%, 윤 후보가 36%로 나타났다. 이 후보가 윤 후보를 앞선 가운데, 두 후보 간 격차는 전주 대비 3%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좁혀져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 대상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 입장에선 지금 굳이 ‘안 후보가 필요하다’고 전략을 밝혀 안 후보가 협상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다”며 “그러나 복심은 따로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최근 ‘탕평 거국 내각’을 언급한 것도 안 후보와 손잡기 위한 일종의 전제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