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통신 자료 조회 역풍...檢·檢,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공수처장 수사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장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 의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를 사찰 의혹이라며 공수처 해체 및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를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오는 21일이면 출범 1주년을 맞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야권 정치인과 언론인을 포함한 일반 국민을 상대로 무분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이른바 ‘사찰 논란’으로 최대 시련을 맞고 있다. 통신자료는 수사 중 통상 활용하는 적법한 정보지만 공수처 수사와는 개연성이 적은 공직자나 기자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정보까지 수집한 게 알려져 적절성 시비에 휘말렸다. 이에 따라 수사당국이 김진욱 공수처장의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정치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공수처 폐지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공수처를 덮친 외풍은 조직의 뿌리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
‘직권남용’ 의혹 자초한 공수처의 ‘언론인 조사’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최근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된 김 처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공수처가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18조를 어기고 통신 내역을 무차별적으로 사찰했다며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한 건을 경기남부청이 이첩 받았다.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대표가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 자료 조회가 언론, 정치권을 대상으로 폭넓게 이뤄진 것과 관련해 김진욱 공수처장과 공수처 관계자들을 고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울러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오기찬)는 지난 6일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가 김 처장을 직무유기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한 2건을 배당받았다. 법세련은 지난해 11월 22일 김 처장을 공수처에 고발했지만 공수처가 김 처장을 직접 수사할 수는 없어 대검찰청으로 이첩한 것이다.
법세련은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기자와 그의 어머니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을 들어 "유독 공수처에 비판적이거나 현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만 특정해 강제수사를 벌인 것은 조폭식 보복수사"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 사찰 규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지난 3일 김 처장의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공수처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누가 봐도 과한 집권남용이며 수사 갑질에 해당하는 중대범죄”라며 “국민의힘은 김 처장의 사퇴와, '야(野)수처'이자 '국민사찰처'가 그 숨겨진 진짜 정체임이 드러난 공수처 해체에 모든 당력을 집중해 국민들과 함께 가열차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통신 자료 조회 적법하다지만 수사 관련성 해명 없어
사찰 논란은 공수처의 통신 조회 기록을 폭로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나날이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지난 3일 집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동통신사에 문의해 국민의힘 의원 105명 중 85%에 해당하는 89명의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 등 통신 자료를 조회했다. 김기현 원내대표, 김도읍 정책위의장,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배현진 최고위원, 조수진 최고위원 등 현역 의원들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 지자체장 등 인사들이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여기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 6명 등 고위 공직자가 아닌 인사들의 통신기록도 조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 중이다.
공수처는 지난달 8일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한 ‘조국흑서’의 저자 김경율 회계사와 기자 130명, 보수성향 대학생단체인 ‘신(新)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구성원 6인 등 일반인의 통신 자료도 조사했다. 공수처는 일부 기자들을 상대로 법원의 통신 영장을 발부 받아 통화 상대와 카톡 단톡방 참여자 번호까지 살펴본 것으로도 확인됐다.
공수처는 “수사 과정에서 나온 휴대전화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면서 수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과정”이라며 수사 대상과 관련된 사람들의 통신 자료를 조회하는 것은 합법적 절차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통신자료는 공수처가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도 조회 가능한 정보로, 검찰·경찰 수사에도 있었던 관행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 통신자료 조회로 인한 ‘사찰’ 논란과 관련해 “지난주 과기정통부 통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 검찰의 통신자료 조회건수는 59만700건이고 경찰은 187만7000건이다”며 “저희 공수처는 135건인데 저희보고 사찰했다는 것은 과한 말씀이다.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그러시나”라고 항변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공수처가 맡고 있는 윤 후보 ‘고발 사주’ 의혹 등 핵심 수사와는 동떨어진 일반인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사실이나, 기자를 상대로 통신 영장을 발부 받고 조사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해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를 둘러싼 공수처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지난 4일 입장문을 내고 오 시장을 향한 고발 건 중 공수처와 관련된 수사기관은 없었다는 점을 들어 통신자료 조사를 ‘정치 사찰’로 규정했다. 서울시는 “오 시장은 지난 보궐선거 과정에서의 고발 건으로 검찰수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오 시장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공수처와 경기남부경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천지방검찰청은 해당 사건을 직접 수사한 기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들 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통신기록 조회의 구체적 사유를 요구할 계획이다.
인권위 “전기통신사업법 규정이 문제”…광범위한 허용요건 지적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해당 논란에 대해 수사기관의 신상정보 조회 권한을 제한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전기통신사업법 개선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지난 6일 성명에서 법원, 검사, 수사관서의 장 등이 재판, 수사 등을 위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할 권한을 부여한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규정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통신자료 제공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지속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상정보를 파악하는 활동은 수사에 반드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제공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 절차를 관련 법률에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 통신자료 제공 절차의 허용요건이 너무 광범위하고 이용자에 대한 제공내역 통보 절차도 없어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