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7시간 통화'에 민주당 "최순실 시즌2"
국민의힘, '이재명 욕설' 맞불 "새빨간 거짓말"

[주간한국 김동선 기자] 여야 유력 후보에게 아킬레스건과 같은 과거 녹취록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정책과 비전이 실종된지 오래인 대선판이 이제 막장으로 흐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이른바 '7시간 통화'가 공개된 이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공개된 통화 내용에 그간 김씨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한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지만 논란이 될만한 발언들이 다수 포함된 때문이다. 반대로 이에 대한 맞불격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60분 욕설'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양당의 난타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개된 김씨의 녹취에 결정적 한방이 없었다는 안도와 함께 상대 이 후보의 도덕성을 부각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후보 욕설에 사과하면서도 김씨의 ‘미투’ 폄훼 발언, ‘조국 수사’ 관련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여야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아전인수식 평가를 내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가적인 녹취 공개가 예고되고 있어 향후 대선 정국에 녹취록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평가받으며 시작한 이번 대선 레이스가 네거티브 공세가 심해지면서 혼탁을 넘어 막장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발목 잡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형국으로 초박빙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양당 후보의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장부" "걸크러시"…김건희 팬클럽 회원수 급증하기도

김건희씨의 이른바 '7시간 통화'는 방송 전까지 '핵폭탄' 급으로 인식됐다. 지난 16일 김씨의 통화 녹취를 공개한 MBC 스트레이트의 시청률은 17.2%로 자체 최고를 기록했다. 그간 스트레이트의 평균 시청률이 1~3%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국민적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 가늠케 한다. 하지만 김씨의 통화 녹취가 방송된 이후 반응은 대체로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보도 직후 페이스북에 "후보자의 배우자가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 관점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고 했다. 친노(친노무현)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도 "뭐 대단한 게 있는 줄 알았더니 별로더라"라고 촌평했다. 유 전 총장은 "쥴리 의혹 등에 대해 기자회견이나 캠프에서 하는 것보다 본인의 육성으로다가 깔끔하게 해명이 됐지 않나"라고도 했다.

유 전 총장의 말처럼 쥴리 의혹, 검사 동거설 등에 대해서는 의혹이 일부 해소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개된 통화에서 김씨는 지난달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때 위축된 분위기 속에 수세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김씨는 캠프 구성, 조국 사태 등 여러 이슈에 대해 거침없는 화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는데 이런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오히려 솔직하고 속시원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의원은 보도 직후 여러 발언이 충격적이라며 "참 대단한 여장부"라고 평했다. 이와 달리 일각에서는 속시원한 화술이 "걸크러시" 같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건희씨의 온라인 팬카페 회원수가 폭증해 눈길을 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김건희 여사 팬카페(건사랑)'의 회원수는 21일 오전까지 4만3000명을 넘었다. 지난달 19일 개설된 이 카페의 회원수는 김씨 통화 공개 직전인 지난 16일에 200여명에 불과했지만 방송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급증, 불과 5일만에 200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기류는 여론조사로도 확인된다. 머니투데이 의뢰로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지난 17~18일 이틀동안 진행한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김씨 '7시간 통화'가 지지율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40.8%,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답변이 36.4%였다. 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은 12.4%였다.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는 세간의 반응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투 폄훼 논란...김건희씨 직접 사과하나

하지만 김건희씨의 공개된 발언에는 문제가 될만한 부분이 여럿 발견된다. 특히 미투를 폄훼하는 내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개된 통화에서 김씨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사건의 피해자인 김지은씨를 폄훼하고 가해자인 안 전 지사를 옹호했다. 김씨는 "난 안희정이 불쌍하더만. 둘이 좋아서 한 거를. 강간한 것도 아니고"라며 "나랑 우리 아저씨(윤 후보)는 되게 안희정 편이야"라고 안 전 지사를 옹호했다. 반면 피해자 김지은씨에 대해서는 "왜 그걸 미투를 해야 해? 김지은이 웃긴 애 아니야? 지가 소리를 질렀어? 뭐했어? 둘이 합의 하에 했으면서"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김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돈 안챙겨주니까 터지는 거 아니야? 돈은 없지 바람은 피어야겠지, 이해는 다 가잖아. 나는 다 이해하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라고 하기도 했다.

김씨의 발언은 아무리 사적 통화라고 하더라도 성인지 감수성이 지나치게 낮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김씨의 이 같은 발언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외신들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씨의 미투 발언에 대해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복기왕 선대위 대변인은 "'미투 운동'은 국적과 성별, 지위를 떠나 수직적 위계 사회에서 폭력을 겪은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사회적 연대운동"이라며 "그런데 '돈을 안 챙겨줘서 터졌다'는 식의 인식은 마치 성매매를 연상케 하는 발언으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김지은씨는 지난 17일 입장문을 통해 "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된 사건에조차 음모론과 비아냥으로 대하는 김건희씨의 태도를 봤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신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결국 2차 가해의 씨앗이 됐고, 지금도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며 "2차 가해자들은 청와대, 여당 후보의 캠프 뿐만 아니라 야당 캠프에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명확히 알게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도 이와 관련해서는 즉각적인 사과 입장을 밝히면서 진화에 나섰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국민의힘은 2차 가해 논란과 관련해 김건희씨가 직접 사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지난 19일 김씨의 직접 사과 가능성에 대해 "모든 사안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며 "이번주 일요일(22일) 예고된 추가 방송이 끝난 다음에 최종 입장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후속보도를 예고했던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21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취재 소요시간, 방송 분량 등 여러 조건을 검토한 결과 23일 160회에서는 관련 내용을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王자, 천공스승, 건진법사...끊이지 않는 무속 논란

김씨의 통화 내용 중 무속과 관련된 부분은 또 다른 파장으로 확대됐다. 공개된 통화에서 김씨는 이른바 '쥴리' 의혹을 부인하면서 "나는 영적인 사람이다. 그런 시간에 난 차라리 책 읽고, 차라리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삶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커진 것은 방송 다음날 무속인이 윤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 보도가 이어져 무속 논란에 기름을 부으면서다. 세계일보는 지난 17일 윤 후보와 가까운 무속인 '건진법사' 전모씨가 선대위 하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씨는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대권 도전을 결심할 때까지 조언을 해줬다.

윤 후보를 둘러싼 무속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유튜브를 통해 '정법'이라는 강의를 하는 천공스승이라는 인물이 윤 후보에게 검찰총장 사퇴일자까지 조언했다는 의혹 보도가 있었고 지난 경선 때는 윤 후보의 손바닥에 왕(王)자가 새겨진 모습이 포착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전씨가 네트워크본부에 몇 차례 드나든 바는 있지만, 무속인이 아닌 대한불교종정협의회 기획실장"이라면서 "고문으로 임명되거나 개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 다음날 곧바로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무속 논란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이른바 '최순실 오방색' 트라우마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이 점을 파고들고 공세를 취했다. 전용기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국정농단과 탄핵으로 온 국민이 무속인의 국정개입 트라우마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대놓고 선대본부 고문에 참여시켰다니 경악할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굿바이 이재명' 저자 장영하 변호사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전날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형수 통화 중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 일부분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나온 '이재명 욕설'…장영하 “이재명 새빨간 거짓말”

지난 18일 '굿바이 이재명' 저자인 장영하 변호사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후보의 욕설과 막말이 담긴 160분 분량의 녹취 파일 34건을 공개했다. 국민의힘은 장 변호사가 선대위 소속이 아니고 개인자격으로 공개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김건희씨 통화 녹취 방송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장 변호사는 "이 후보가 전화로 형과 형수에게 개XX, XX놈, X신, 찌질이, 불쌍한 인간 등 모멸적 욕설을 반복적으로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는 "이 후보는 자신의 형수에 대한 욕설 원인을 형님과 형수가 어머니를 때리고 욕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시점상 형수에 대한 욕설은 2012년 7월 6일, 존속 상해 논란은 7월 15일이다. 사건 발생 시간과 순서만 봐도 이 후보의 거짓말은 너무나 분명해진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에는 이 후보가 형 재선씨와 형수 박인복씨에게 욕설을 하는 것과 재선씨에게 정신병원 입원을 강요하는 듯한 발언 등이 담겼다. 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이야기도 포함됐다. 이 후보의 형 재선씨가 숙명여대 음대를 졸업한 이 후보자의 부인 김혜경씨를 거론하며 "그래서 유동규가 음대 나왔는데 뽑았냐"고 하자 이 후보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라고 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은 이 부분을 대장동 의혹과 연계해 공세에 나섰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지난 국감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2010년 유동규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 임명에서 '지사님은 어떤 지시나 의견을 전달한 적이 없느냐' 라고 하는 질문에 '지금 기억이 안 난다' 라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유동규의 대학 전공까지 다 꿰고 있더니 국감장에서 순식간에 기억력을 잃어버린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2동 경로당에서 어르신 정책공약 발표 중 취재진의 욕설 녹취록 관련 질문을 받은 후 생각에 잠겨 있다.(사진=연합뉴스)
"무한 검증 불가피...재차 사과" 바짝 엎드린 이재명

이 후보는 욕설 파일이 추가 공개됐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재차 사과했다. 이 후보는 "가족의 내밀한 문제이고 또 말씀드리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며 "제 과거의 한 부분이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는 대통령 후보의 '무한 검증'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후보는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이므로 대통령이 될 사람의 권한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해 무한 검증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욕설 파일은 물론 김건희씨 통화 녹취도 검증 과정의 하나라고 견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욕설 파문의 당사자인 이 후보는 납작 몸을 낮췄지만 민주당은 법적 대응에 착수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은 입장문에서 “장 변호사를 후보자 비방죄로 즉각 고발한다”면서 “불법 배포한 자료를 선별 편집해 공개하는 행위 역시 선관위 지침에 위배될 뿐 아니라 후보자 비방죄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므로 즉시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사과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 후보의 욕설과 김건희씨의 통화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민병선 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이 일은 (이 후보) 셋째 형님의 불공정한 시정 개입을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슴 아픈 가족사였다"며 "욕설 녹음파일의 진실은 친인척 비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김동선 기자



김동선 기자 matthe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