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절도범의 기막힌 '자기 관리'평소 꾸준한 운동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 술·담배 근처에도 안가경찰도 처음엔 믿지 않아 끈질긴 잠복끝에 검거

"평소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절도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붙잡혀 왔다. 한눈에 봐도 탄탄한 근육질 몸을 가진 그는 조사를 받는 동안에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범행을 진술했다.

수서경찰서는 초저녁 시간대에 불이 꺼진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침입해 현금을 훔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김모(73)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이 남성을 조사하던 경찰관은 진술 내용에 이따금씩 믿지 못하겠다는 듯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70대 노인이 저지르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범행이기 때문이다.

경찰조사에서 드러난 김씨의 범행 일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서울 강북 수유동에 거주하며 납골당 사업을 하던 김씨는 수입이 신통치 않아 생활고를 겪어 오다 지난달 말 '한 탕'범행을 결심했다. 70대 고령을 감안하면 담벼락을 타고 넘어야 하는 절도는 쉽지 않지만 그에게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던 김씨는 틈나면 항상 운동을 하고 음식도 철저하게 조절해 젊은이들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란다 문 열린 집 공략

김씨는 70대 노인에게 지급되는 무임승차권을 이용해 지하철을 타고 거의 매일 저녁 강남 고급 아파트 일대를 돌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강남지역 지리에 그리 밝지 않은 김씨는 무작정 땅값이 비싸다고 알려진 강남지역 아파트 주변 역에 하차해 인근의 고급 아파트 등 찾아 다녔다.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며 범행 대상 아파트를 물색해온 김시는 집주인이 집을 비우고 외출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집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김씨는 고급 아파트촌에서 불이 꺼져 있는 빈집을 고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의 방식은 아주 단순했다. 초인종을 눌러 답변이 없으면 집이 비었다고 확신하는 방식. 그리고 빈집으로 확인되면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김씨가 주로 선택한 침입 경로는 베란다였다.

김씨는 지난달 20일 오후 7시20분께 가스 배관을 타고 베란다를 통해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아파트 2층 집에 침입, 안방에 있던 루이비통 명품 가방 속에 있는 현금과 달러 등 현금 5,800만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날에도 가스 배관을 타고 일원동에 있는 아파트 5,6층 집에 침입했으나 집 안에 현금이 없어 물건을 챙기지는 못했던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괴력의 노인 전직 조폭 두목

70대 할아버지인 김씨가 장갑 하나만 끼고 아파트 5~6층까지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갔다니 누가 믿겠는가? 조사를 맡은 경찰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한다. 공범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주변 경찰관도 있었다.

실제로 가스배관을 타고 아파트 5,6층을 오르는 것은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고령의 김씨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김씨의 평소 생활습관과 부지런한 체력관리에 있다.

김씨는 경찰 진술에서 "평소 체력관리를 위해 항상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식습관도 철저히 조절했다"며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그 밖에 위를 자극하는 담배나 커피 등도 멀리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에 대해 "얼핏 보면 40대로 보인다. 근육이 탄탄하고 체격이 좋은 것으로 미루어 평소 매우 부지런히 운동을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경찰을 놀라게 한 건 또 있었다. 김씨가 절도 등 전과 19범이었다.

김씨는 또 과거에 "조직폭력배 200명을 데리고 있던 두목이었다"고 진술해 경찰을 놀라게 했다. 그가 진짜 조폭 두목이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의 체력만 본다면 조직폭력단에 몸을 담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강남지역을 범행장소로 선택한 것은 역시 부자동네이기 때문. 특히 경찰은 강남 일대의 고급 아파트에 침입해 귀금속 등 금품을 절취하는 도난 사고가 잦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장소와 그 주변, 인근 지하철역 등에 설치된 CCTV 등을 통해 용의자 수십명을 추려낸 뒤 그중 가장 수상한 행적을 보인 김씨를 쫓았다. 그리고 강남과 강북지역 지하철역 3 곳에 잠복한 끝에 범죄 발생 10여일 만에 김씨를 검거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매일 옷을 갈아입는 등 변장하고 다녀 검거가 쉽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전에 강남지역 등에서 범행한 비슷한 수법의 절도 사건을 포함해 여죄를 캐고 있다. 또 공범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수사 경찰관은 "김씨가 절취한 현금을 제3의 장소에 은닉하거나 다른 공범 등에게 보관하게 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김씨를 계속 추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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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환 기자 jjh@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