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버핏세’(부유세)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 증세를 위한 이른바 ‘버핏세’는 세계3위 부자인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가 워런 버핏이 지난해 “미국 정부가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공개 촉구하면서 생겨난 신조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재정적자 감축 방안의 하나로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6일 “과세 불균형 등 제도상의 허점으로 인해 부자들이 소득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내는 측면이 있다”면서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버핏세 도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큰 틀에서 소득세의 최고구간과 최고 세율을 하나 더 두고 과표를 만들 때 증권소득과 이자소득 등도 모두 합산토록 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일률적 소득합산 과세시 다른 구간의 피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종합부동산세처럼 새로 신설하는 최고 구간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도 인식을 공유하고 이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내에 불고 있는 정책 쇄신 움직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대기업ㆍ부유층 반발예상…일각선 출총제 부활 거론도

한나라당의 ‘친(親) 부자ㆍ대기업’, ‘부자감세ㆍ부자정당’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나 대기업과 부유층의 반발이 예상된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도 버핏세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여권은 또 대기업 내부의 자본 흐름에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지난 2009년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을 거론하고 있으나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당직자는 “출총제 부활 논의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과도할 뿐 아니라 기업구조 자체가 지주회사로 바뀌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출총제를 부활하는 대신 공시 대상 및 내역을 좀 더 강화하고, 특히 특수관계인의 지분 이동뿐 아니라 계열사 지분 비율 문제도 공시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공정거래법 전체를 뜯어고치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부당거래를 입증하기 힘든데 앞으로 제도개선 등을 통해 거래의 불공정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상 불공정 문제도 잡아내야 한다.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어떻게 막아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버핏세’란?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도입을 검토 중인 ‘버핏세’는 무엇인가?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자는 일종의 ‘부자 증세’ 방안이다. 내심 한나라당의 ‘부자 정당’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한 속셈도 깔려있다.

미국의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이 “돈을 굴려 돈을 버는 사람들이 노동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보다 훨씬 낮은 세율을 누린다”며 부유층에 대한 증세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공론화됐다.

미국은 투자 등을 통해 얻은 자본소득에 대한 최고세율이 15% 수준으로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에 대한 최고세율 3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버핏은 지난 8월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슈퍼 부자를 감싸지 말라”며 “나 같은 슈퍼 부자는 비정상적인 감세 혜택을 받고 있다”고 밝혀 전 세계에 공평 과세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는 지난달에도 “나는 지난해 17.4% 세율을 적용받아 693만달러(약 80억원)를 연방정부 소득세로 냈다”며 “언뜻 많은 돈으로 보이지만 내 사무실 직원들에게 30%대 소득세가 매겨지는 것과 비교하면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재정적자라는 복병을 만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적자 감축안의 하나로 지난 9월 연간 100만달러(11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계층을 대상으로 자본소득세율을 근로소득세율 수준으로 높이는 사실상의 버핏세 도입을 제안했다.

그러나 부유층을 중심으로 조세저항도 만만치 않다.

미 공화당은 현재 세율만으로도 충분히 높을 뿐 아니라 버핏세가 빈부갈등을 자극, 분열을 조장한다고 반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야권에서 ‘한국형 버핏세’로 볼 수 있는 부유세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순자산 30억원 이상인 개인과 1조원 이상인 법인에 순자산액의 1~2%를 별도 부유세로 부과해 복지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남형준기자 joon@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