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SK 총수일가 1천억대 횡령 정황 포착…비자금 조성 관련 자료도 확보8일 오전 그룹본사∙계열사 등 10여 곳 13시간 전격 압수수색SK측 “투자금 유용하지 않았다” 해명최태원 회장 급거 귀국…최 회장ㆍ최재원 부회장 소환될 듯

검찰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1,000억원이 넘는 회사돈을 횡령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부터 SK그룹 총수 일가의 선물투자 손실보전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중희 부장검사)는 8일 SK그룹 지주회사와 주요 계열사, 관련자 자택 등 10여 곳을 대대적으로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장장 13시간이 넘도록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과 중구 을지로2가 SK텔레콤 빌딩, 경기 성남시 분당구 SK C&C 사옥 등에 수사관 100여명을 투입, 관련 증거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SK홀딩스와 SK가스 사무실 등에서 최 회장의 선물투자 및 SK그룹 계열사의 창업투자사 투자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회계장부와 금융거래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최 부회장의 비자금 조성 관련 자료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SK그룹 내ㆍ외부 관련자 자택 등도 압수수색했으며, 최 회장 형제의 자택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SK그룹 상무출신 김준홍(46)씨가 대표로 있는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이하 베넥스)에 SK그룹 계열사들이 약 2,800억원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투자금 일부가 총수 일가로 빼돌려졌고, 이 자금 중 일부가 최 회장의 개인 선물투자에 쓰인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최재원 부회장이 SK그룹 계열사의 협력업체 3곳에서 비용을 과다계상하는 방식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7월 협력사 3곳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들 협력사는 불법대출로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에서 70억원대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최 회장 형제의 횡령 액수가 2,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 최재원 부회장이 이중 상당한 액수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번 SK그룹 수사는 글로웍스 박성훈(44) 대표의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박 대표가 몽골 보하트 금광개발 등 호재성 허위정보를 유포해 글로웍스의 주가를 띄운 사건을 수사하던 중 김준홍씨가 이에 공모한 정황을 파악하고 지난 3월 베넥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베넥스 사무실 금고에서는 175억원 상당의 수표가 발견됐으며 이 중 약 173억원이 최재원 부회장의 돈으로 드러나 검찰이 자금 추적에 나섰다.

검찰은 그동안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 수십여 곳에 대해 계좌추적영장을 발부받아 관련 계좌를 추적해왔다.

또 국세청의 SK그룹 세무조사에서 최태원 회장이 선물거래에 투자했다가 1,000억원대 손실을 본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SK그룹 계열사들이 베넥스 창투조합에 투자한 돈 일부를 최 회장이 개인 투자에 쓰거나 손실금액을 보전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유럽 출장 중이던 최 회장은 계열사 압수수색 소식에 이날 오후 급거 귀국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자료를 바탕으로 SK그룹 관계자 등을 순차적으로 불러 조사한 뒤 최 회장과 최 부회장 형제도 조만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자금 흐름을 보기 위해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며 최 회장의 혐의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최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그룹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들의 투자금을 유용하거나 다른 용도로 쓴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선물투자 손해를 계열사들이 메우거나, 비자금을 조성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검찰 조사에 잘 응해서 의혹이 해명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한동영 부장검사)도 이날 SK텔레콤과 SK C&C, 서울지방국세청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서울지방국세청 전 조사국장 이희완(62)씨가 2006년 6월 퇴직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SK그룹 계열사로부터 매월 5,000여만원씩 총 30억원 이상을 자문료 명목으로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이 돈의 대가성 여부를 조사해 왔다.

검찰은 이씨가 SK 계열사로부터 받은 돈이 통상적인 자문료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액수가 큰 점에 비춰 조사국장 재직 당시 SK그룹의 세무조사를 무마해 주고 받은 사후 수뢰금일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이날 전격 압수수색은 SK그룹 계열사들이 베넥스에 출자한 자금 가운데 500여억원이 자금세탁을 거쳐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에 동원된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SK텔레콤과 SK C&C가 베넥스에 출자한 500여억원이 2008년 10월 투자처에 입금된 뒤, 수 차례 계좌와 김 대표의 차명계좌 등 복잡한 돈세탁 과정을 거친 뒤 선물투자금에 활용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7일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최근 베넥스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SK텔레콤과 SK C&C가 베넥스 창투조합에 출자한 500여억원이 2008년 10월 무렵 복잡한 돈 세탁을 거쳐 김 대표의 차명 계좌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것.

이 돈은 김 대표의 차명 계좌에서 최 회장의 선물투자를 맡은 SK해운 고문 출신의 무속인 김원홍(50ㆍ해외 체류)씨 계좌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돈이 최 회장이 선물옵션 상품에 투자했던 5,000억원 가운데 일부로 보고 있다.

SK측은 또 SK가스, SK E&S, 부산도시가스 등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한 달 만에 500억원 상당을 다시 베넥스 계좌에 되돌려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베넥스 출자금 횡령 및 유용 사실을 숨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SK측은 이에 대해 "나중에 최 회장이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500억원을 모두 변제했다"며 횡령 의혹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넥스는 2006년 10월 설립된 신생 창투사이지만 18개 SK 계열사가 2,800억원이나 투자해 SK의 위장계열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 회사의 김 대표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금융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98년 SK그룹에 입사해 3년 만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한 최 회장의 측근 출신이라는 점도 이런 의구심을 키웠다.

검찰 주변에선 '최태원 회장-김준홍 대표-김원홍씨' 3인의 밀접한 관계에 비춰 베넥스 자금 횡령ㆍ유용이 결국 최 회장의 선물투자를 위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최 회장이 SK 계열사가 베넥스에 출자하게 하고 베넥스 자금 500여억원을 자신의 선물투자에 동원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면, 횡령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베넥스라는 제3의 회사를 중간 다리로 삼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SK 계열사 자금을 오너의 선물투자에 이용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앞서 2003년 SK분식회계 사건 당시에는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이 SK해운 자금 7,800억원을 들여 해외 선물투자에 나섰다가 90% 이상의 손해를 보고 구속된 적이 있다.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3월30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가 증권거래법위반 혐의로 김준홍 베넥스 대표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것이 단초가 됐다. 당시 검찰은 김 대표 사무실 금고에서 발견한 175억원 상당의 수표다발을 추적한 결과 이 중 172억여원이 최재원 SK 부회장의 자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같은 SK 오너 일가의 수상한 자금거래 흔적을 발견한 검찰은 기존에 내사 중이던 최 회장의 선물투자 손실 의혹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지난 8월 특수1부로 SK 관련 사건을 합치면서 사실상 본격 수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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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준기자 jo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