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야권 대통합 추진기구인'혁신과통합' 상임대표단과 오찬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선 혁신과통합 상임대표, 이해찬 전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국민의명령' 대표.
서울시장 선거를 전후해 확연히 달라진 정치지형은 향후 정치 일정과 정치세력들의 행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충격적인 위기를 경험한 여권은 '쇄신'을 앞세워 생존을 모색중이고, 민주당을 비롯한 기성 정당은 야권 제 세력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집권을 향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요즘 야권의 최대 화두는 '통합'이다. 통합만이 야권의 살 길이고 내년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라는 배경에서다.

이 '통합'의 주체로 가장 주목받는 단체는 '혁신과 통합'이다. 지난 9월 초에 발족한 '혁신과 통합'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변호사를 범야권 단일 후보로 만들고, 시장에 당선시키는데 일등공신이 되면서 야권 통합의 중심이 되고 있다.

'혁신과 통합'은 친노(親盧) 그룹이 주축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친노 그룹은 ▲민주당(한명숙 전 국무총리,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백원우 의원) ▲국민참여당(유시민 대표, 이재정 전 대표,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으로 세력이 나뉘었는데, 이들 그룹에 속하지 않은 친노 인사들이 '혁신과 통합'이라는 간판아래 한데 뭉쳤다. 김두관 경남지사,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경수 노무현 재단 사무국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세력, 진보시민단체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가세하면서 기존의 친노 그룹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권통합기구 표방… 사실상 정당

'혁신과 통합'은 야권통합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기성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혁신과 통합'은 '노무현 재단' '시민주권' '내가 꿈꾸는 나라' '국민의 명령' 등 4개 단체 인사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두관 경남지사, 남윤인순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준비위원장,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이용선 전 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이해찬 '시민주권' 상임대표 등 6명이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시민정치조직 준비모임을 갖고 있는 '내가 꿈꾸는 나라'는 남윤인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공동준비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10월 발족한 '시민주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를 계승하고, 노 전 대통령의 추모사업 등을 추진한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공동대표였지만,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시민주권' 대표에서 물러났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노무현 재단 이사장직도 내놓았다.

'100만 명이 모여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민란을 꿈꾼다'는 '국민의 명령'은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이끈다. 회원만 18만 명인 '국민의 명령'에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도 참여하고 있다.

중통합 거쳐 대통합 갈수도

'혁신과 통합'은 야권 대통합을 통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야권 대통합은 '혁신과 통합'뿐 아니라 민주당 및 야권 전체의 과제이다. 과연 대통합이 이뤄질 지, 어떤 세력이 참여하며, 통합의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이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9일 민주당은 야권통합정당 구성을 위한 통합전당대회를 내달 17일에 개최하자고 야권 전체에 제안했다. 통합 대상은 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과 '혁신과 통합', 박원순 서울시장, 한국노총 등 범야권을 아우른다.

이와 관련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이사장에게 "야권의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원샷 통합 전당대회를 12월 17일에 치르자"고 제안했다. 문 이사장은 즉답 대신 "국민의 염원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통합전대 방법이나 지도부 구성, 총선 공천 기준 등 대통합의 난제가 가로놓여 있음을 말해준다.

문 이사장은 이달 초 "신당 창당은 야권의 분열에 지나지 않는다"며 "아무리 좋은 뜻을 가져도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통합은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와 문 이사장은'대통합'이라는 원칙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연내 통합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지난 9일 문재인 이사장과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단결에 기여하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로 임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정치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복잡한 고민이 있다"며 한 자락을 깔았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타협을 이룬다 하더라도 참여당의 '장고(長考)'가 이어진다면 야권의 연내 대통합은 물건너가게 된다.

그럴 경우 대통합에 동의하는 세력들이 먼저 나서 중통합을 추진한 뒤 추후 다른 정파들과 다시 테이블을 차리는 식의 대통합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문재인 이사장의 발언도 그 같은 시나리오에 힘을 싣고 있다.

연내 야권 대통합 여부는 당장 내년 총선과 12월 대선에도 영향을 준다. '대통합'의 한 축인 '혁신과 통합'의 역할과 행보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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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