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보다 더 뜨겁다. "개미투자자들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전문가들의 숱한 경고 메시지가 무색하다. 이른바 '정치 테마주(株)'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 테마주들이 물 만난 고기인 양 활개치고 있다.

급기야 당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테마주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투자자 보호, 증권시장 건전화 차원에서 테마주 관련 허위사실 작성, 유포, 시세조종 등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이 테마주 퇴치를 선언한 것은 선의의 개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금감원의 단속 발표가 있었던 지난 21일, 주식시장에서 정치 테마주들로 묶인 주식들은 폭락 일로를 걸었다. 안철수 연구소는 전일보다 10.93% 급락한 7만5,000원에 마감됐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저출산 대책을 강조하며 떠올랐던 아가방컴퍼니와 보령메디앙스도 하한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이튿날인 22일 일제히 반등에 나서며 하루 만에 '만회'에 성공했다.

당국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치 테마주가 근절될지는 미지수다. 시장은 '한 방의 꿈'을 좇는 개미들로 넘쳐나는 데다 테마주는 갈수록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여의도에는 "정치 테마주는 당분간 조심하자"는 주의보가 나돌았다. 작전 세력들은 이미 실속을 챙긴 뒤 낮게 엎드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헬스케어 전문기업인 솔고바이오는 "최근 정치 테마주에 회사 이름이 자꾸 거론되는 것을 내부적으로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루머를 확산시킨다면 법적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07년 대선 때부터 열풍 시작, 현재는 300개 넘는 듯

정치 테마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7년 대선 때부터.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대선주자로 확정되자, 이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대운하 사업 관련주들이 급등을 이어갔다.

이화공영의 주가는 2007년 초 1,000원 대였지만 12월 대선 직전에는 3만원 대로 치솟았고, 신천개발 주식은 5개월 만에 4,000원 대에서 3만원 대로 뛰었다. 그러나 이들 주식들의 '현재스코어'는 초라하기만 하다.

증권가에서는 현재 시장에 난무하는 테마주가 300개는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이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여러 테마주가 250개 정도, 순수 정치 테마주가 60개쯤 된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다 합쳐도 국내 증시에서 상장기업은 2,000개가 채 안 된다. 산술적으로 6, 7개 기업 중 한 곳은 이런저런 이유로 테마주로 엮여 있다는 얘기다. 또 테마 하나에 최소 10개에서 최대 200개 종목이 포함돼 있다. 한 기업이 전혀 관련 없는 여러 개의 테마에 속한 경우도 있다.

사진 한 장 때문에 일약 테마주로

'정치인 박원순'의 화려한 등장과 함께 테마주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정작 관련 회사에서는 아무런 제스처도 없었지만, '테마주 장사꾼'들은 이런저런 인연을 들어 '박원순 테마주'로 만들었다.

휘닉스컴은 홍석규 대표가 박 시장과 경기고 동창이라는, 풀무원홀딩스는 박 시장이 사외이사였다는 이유만으로 테마주가 됐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비록 패하긴 했지만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게도 테마주가 생겼다. 한창은 이 회사 대표가 나경원 후보와 서울대 법대 동기라는 이유로 270원이던 주가가 890원까지 치솟았다. 나 후보의 패배와 함께 이 회사의 주식도 인기가 시들해졌다.

'혁신과 통합'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이용한 테마주도 등장했다. 여성의류 업체인 대현의 대표이사가 문 이사장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던 게 발단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문 이사장의 옆에 있던 인물은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주식은 하락세를 걸었다.

잠재적 대선후보로 분류되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연관된 테마주도 있다. 또 어떤 인물이 부각되느냐에 따라 정치 테마주는 얼마든지 생겨날 개연성이 있다.

박근혜 안철수 테마주는 내년에 더 주목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내년 대선 유력 주자로 꼽힌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두 사람은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1, 2위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근혜 테마주와 안철수 테마주는 시장에서 '생물'로 분류된다. 안철수 테마주는 몇 달 새 등락을 반복하는 등 요동쳤지만 적어도 내년에 야권의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생존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에서는 "박근혜 테마주가 정확히 몇 개인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우스갯소리도 있다. 안 원장과 마찬가지로 여권의 대선후보가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박근혜 테마주도 태풍의 눈일 수밖에 없다.

테마주는 장사꾼들의 덫

시장에는 테마주 정보 제공 업체들이 있다. 업체들은 기업 관련 정보, 각종 소문 등을 종합해서 테마주와 관련 정보를 생산한 뒤 이를 대부분의 시중 증권사들에 판매한다. 그러면 증권사들은 테마주 정보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그래서 테마주 정보라는 게 사실 '객관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개미들이 테마주를 기웃거린다. 단기차익을 노리기 때문이다. 안철수 연구소의 경우 하루 평균 거래량은 270만 주인데 이 중 기관과 외국인의 매매 비중은 1.5% 안팎이다. 나머지는 죄다 개미 투자자들이라는 얘기다. 안철수 연구소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설립자이자 최대 주주라 그나마 다른 테마주들과는 많이 다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테마주, 특히 정치 테마주는 기업의 실적이나 실속과는 관계 없이 정치인과 기업 고위 관계자의 사적 인연 등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며 "테마주라는 것은 장사꾼들이 쳐놓은 덫이기 때문에 한때는 반짝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게 돼 있다. 손해 볼 게 뻔한 개미들은 쳐다볼 필요도 없는 게 테마주"라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 테마주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정경유착의 부산물"이라며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정치가 경제, 증시에까지 마수를 뻗치는 한 정치 테마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금감원의 테마주 단속에 '정치적 복선'?
野 인사 관련 기업 편중 논란

금융감독원은 지난 21일 정치인 테마주와 관련된 불공정 거래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대현, 솔고바이오, 안철수 연구소 등 3개 기업을 직접 거명했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은 불공정 거래 단서가 발견되는 테마주로서, 투자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조사하겠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금감원과 한국거래소의 엄정 단속 방침에 대해 '선의의' 투자자들은 환영하고 나섰다. 다만 금감원이 지목한 기업들이 하나같이 야권 인사와 관련됐다는 게 찜찜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복선'이 깔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감원은 또 지분보고 공시 위반 혐의가 있는 안철수 연구소의 2대 주주인 원종호씨를 조사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지분보고 위반에 대한 조사동의서를 징구(徵求)할 방침이다. 원씨는 안철수 연구소의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원씨는 안 원장의 정치 참여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지분을 갖고 있었으며, 테마주 논란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원씨는 "공시 규정을 잘 몰라서 생긴 일일 뿐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며 "누락된 공시가 있었다면 연구소 측과 상의해서 정정 공시를 내겠다"고 밝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테마주 엄정 단속 의지는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하다"면서도 "금감원이 지목한 기업 이외에 다른 기업들은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형평성 논란이 사그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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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