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사랑'은 지난해 3월 23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뜸자리 잡기' 행사를 개최했다. '뜸사랑'은 항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뜸 시술과 관련해 무해성과 효능을 알리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 뜸사랑 제공
한자 뜻 그대로다. 뜸(灸)을 뜨는 집(堂)이다. 젊어서부터 동네 사람들에게 뜸을 떠주다 생긴 별명, '뜸 뜨는 집'이 아호(雅號)가 됐다. 별 대가 없이 무료로 시술을 해 줬으니 주민들에게는 은인이 따로 없었다.

'직접구(灸)의 대가'인 구당(灸堂) 김남수(96) 옹이 족쇄를 풀었다. 헌법재판소(헌재)는 구사(灸士ㆍ뜸 놓는 사람) 자격 없이 침사(鍼士ㆍ침을 놓는 사람) 자격만으로 뜸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김남수 옹에게 내려졌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별다른 부작용이나 위험성이 없는 뜸 시술을 위법하다고 본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검찰을 상대로 구당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인이 구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헌재는 "침사로서 수십 년간 침술과 뜸 시술을 해온 김씨의 행위는 법질서나 사회윤리, 통념에 비춰 용인될 행위인 만큼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많다"며 "뜸 시술 자체가 신체에 미치는 위해 정도가 그리 크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뜸이 침사에 의해 이뤄진다면 위험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무방할 만큼 적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동흡 재판관은 "뜸과 침은 별개로, 뜸을 시술할 때는 그 자체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므로 침사라고 해서 당연히 뜸도 제대로 뜰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구당 김남수 선생이 서울 청량리동 자신의 침술원에서 환자에게 뜸 시술을 하는 모습. 구당은 검찰의 기소유예와 서울시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2008년 10월 이후 침술원을 폐쇄하고 미국 중국 등을 개척했다. 뜸사랑 제공
구당의 시술을 문제 삼았던 대한한의사협회도 즉각 성명을 내고 "범법행위를 장기간 계속해도 단속만 되지 않는다면 더 무겁게 처벌되기는 커녕 합법이 된다는 것이냐"며 "보건당국과 사법당국은 불법 무면허 침, 뜸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족쇄를 푼 구당은 3년 여 만에 국내에서도 시술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침 뜸 시술을 위해 지난달 하순 미국으로 건너갔던 구당은 1일 오후 4시40분 KE82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귀국에 앞서 구당은 '한국정통침구학회(회장 김남수)' 송순구 사무처장을 통해 "잘된 결정이다. 모든 게 침과 뜸을 아껴주는 국민들 덕분"이라며 "침사에게 뜸은 문제될 게 없다. 한국이 중심이 돼서 뜸이 세계화를 이루는 데 앞장서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기소유예 후 미국 중국 개척

구당은 오랫동안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서 침술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서울북부지검에서 "자격 없이 침 뜸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구당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혐의는 인정되지만 범행 동기, 정황 등을 참작해 재판에는 넘기지 않기로 하는 검사의 처분이다. 기소유예 처분에 대한 불복 방법은 헌법소원이 유일하다.

검찰의 기소유예에 이어 서울시에서 영업정지 45일 처분을 받자 구당은 침술원을 아예 폐쇄해 버렸다. "뜸 없이는 절대 치료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구당의 침술원은 지금까지도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그러던 중 구당은 미국과 중국 의료단체의 초청으로 새 활로를 모색하게 됐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소망병원을 운영하는 이건주 원장이 2009년 한국으로 직접 건너와 구당을 '모시고' 갔다. 이 원장과 인연 이후 구당의 미국 '출장' 횟수만도 7, 8번이나 됐다. 미국에서는 뜸 시술이 대체의학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게 구당 측 설명이다.

송순구 한국정통침구학회 사무처장은 "말기 암 환자, 파킨슨병 환자 등 현대의학으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사람들에게 침과 뜸이 큰 힘이 됐다"고 소개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토미 어빙 조지아주 농림부장관은 구당에게 시술을 받은 뒤 침 뜸의 팬이 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구당은 "용한 것은 내가 아니라 침과 뜸이고 사람의 몸"이라고 화답했다.

중국에도 침과 뜸은 있다. 하지만 침에 비하면 뜸은 다소 대중성이 떨어진다. 세계중의약학회연합회(세중연) 초청으로 중국과도 인연을 맺은 구당은 베이징 위팡탕(御方堂) 중의병원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당은 4일에도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1주일가량 시술한 뒤 돌아올 예정이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의료 자격증이 없어도 뜸 시술을 할 수 있다. 구당이 환자 상태에 따라 뜸 자리를 잡아주고, 병원 의료진이 뜸을 뜨는 방식으로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구당 제자들의 모임인 '한국뜸사랑(회장 김남수)'은 "지난 4월 중국중의민간협회 조직인 세중연과 정기적인 학술교류 및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구당이 세중연의 초청으로 위팡탕 중의병원에서 상주하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격증 부활돼야 세계화

한국정통침구학회는 침구사(鍼灸士) 자격증 부활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침과 뜸 시술을 모두 할 수 있는 침구사 자격증은 1962년 의료법 개정으로 폐지됐으며, 이전에 면허를 취득한 사람 39명(침사 31명, 침구사 8명)만이 법적으로 자격을 인정받고 있다.

송순구 한국정통침구학회 사무처장은 "뜸은 인체에 무해하다. 또 뜸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면서 "침과 뜸의 세계화를 이루려면, 또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최소한 자격증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처장은 이어 "1999년 '뜸사랑' 설립 이후 지금까지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은 1만 명, 그 중 자체검정시험을 통과한 사람만도 족히 4,000명이 넘는다"며 "당장 침구사 자격증 도입이 어렵다면 최소한 뜸만이라도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뜸사랑'은 한의사 면허와는 별개로 침구사 자격증이 제정되고 뜸 시술의 합법화가 이뤄지면 전체 한의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방(洋方)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협업하듯, 한의학에서도 한의사와 침구사, 한의사와 구사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뜸사랑'은 "무분별한 뜸 시술은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된다"는 대한한의사협회의 우려를 불식시킬 대안으로 ▲봉사활동에만 사용 ▲뜸 크기(현재 뜸사랑은 쌀 반 톨 크기의 뜸 시술만 교육) 제한 등을 제시하고 있다. 뜸 크기를 제한하자는 것은 뜸이 지나치게 클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이다.

불법의료행위 논란 속에서도 '뜸사랑'은 65세 이상 어르신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15만 명(연간)에게 무료로 뜸 시술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뜸사랑'은 "뜸은 건강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 모두에게 매우 유용한 시술"이라며 "세계화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부터 침과 뜸이 인정받는 게 모든 회원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 구당 김남수는
•1915년 전남 광산군 하남면 출생
•부친 김서중에게 한학 및 침구학 전수
•1943년 남수침술원 개원
•중국 베이징 침구골상학원 객좌교수
•녹색대학원 석좌교수
•(현재) 남수침술원 원장
뜸사랑 회장
정통침뜸교육원 원장
뜸사랑 봉사단 단장
<주요 저서>
뜸의 이론과 실제(1987)
생활침뜸의학(1999)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2003)
침사랑 뜸사랑 아~내사랑!(2002)
평생건강을 위한 침뜸이야기(2004)
*자료: 뜸사랑 봉사단

2008년 TV특집 출연후 뜸 치료 열풍
구당 김남수는 1915년 5월 12일 전남 광산군 하남면에서 부친 김서중과 모친 최임곡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침과 뜸을 배웠다는 구당은 1943년 남수침술원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넓게 보면 구당의 시술은 한의학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양측이 극한 대립관계에 있다. 한의사협회는 구당의 '과장된' 이력과 치료 실적 등을 문제 삼고 있다. 구당의 신분은 침구사가 아닌 침사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것도 구당이 구사 자격증 없이 뜸을 떴기 때문이다.

구당이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불과 몇 해 전이다. 구당은 2008년 KBS 추석 특집프로그램인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 뜸 이야기'에 출연하면서 크게 주목 받았다.

방송이 2회에 걸쳐 나간 이후 자가(自家) 뜸 치료 열풍이 크게 불었고, 유명인들을 치료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구당은 일약 뜸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에 작고한 배우 장진영을 비롯해 수영선수 박태환, 민주당 김춘진 의원, 전윤철 전 감사원장, 남덕우 전 국무총리, 시인 김지하, 소설가 조정래 등이 구당에게 뜸 시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김춘진 의원은 2009년 2월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뜸 시술의 자율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뜸 등 전통적인 한방의 치료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므로 뜸이 자연의술과 대체의학으로 그 효용성이 인정된다"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구당은 과거 인터뷰나 자서전 등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야 정치인 장준하 선생,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도 치료했다고 주장했으나, 이와 관련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뜸, 직접구와 간접구 두 종류로 나눠
뜸(灸)은 글자대로 아픈 부위를 불(火)로 오랫동안(久) 자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뜸(직접구)은 살갗 위에 쑥을 직업 올려놓고 태운다. 섭씨 60~70도의 열로 가벼운 화상을 낸 뒤 경혈을 자극시켜 신체 내부에서 특수한 물질을 작용하게 하는 치료법이 뜸이다.

한의학에서는 뜸이 세포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뜸을 통해 움직임이 둔한 세포에는 활력을 주고, 병든 세포는 체내에서 신속하게 배출시켜준다는 것이다.

뜸은 두 종료로 나뉜다. 직접구는 3년 이상 묵은 쑥을 주로 사용하며 피부에서 직접 연소시킨다. 가벼운 화상 자국이 생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대신 면역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접구는 뜸 흔적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에게 많이 쓰인다. 간접구는 피부에 직접 닿지 않은 채 쑥을 연소시키기 때문에 직접구와 달리 쑥의 종료도 크게 가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간접구 시술이 직접구 시술보다 훨씬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

'뜸사랑' 관계자는 "주로 여성들이 미용을 따지다 보니 간접구를 많이 뜨지만 효과 면에서는 직접구와 비교가 안 된다"며 "직접구를 뜨다 보면 약간의 상처가 생기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