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이창희 통신정책과장이 지난 23일 방통위 기자실에서 열린 제64차 위원회에서 KT의 PCS사업(2G 서비스) 폐지 승인 신청에 대해 남은 이용자 수 및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폐지를 승인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KT가 지난 15년간(97년 10월 시작) 운영해온 2G 서비스 종료가 결정됐다. 종료 방침을 밝힌 지난 3월부터 2전3기 끝에 어렵게 결정된 사안이지만 기존 2G 서비스 가입자들의 반발이 심해 마지막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2G 서비스 가입자 수를 줄이기 위해 KT가 벌인 불법적 행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자칫 서비스 종료 이후까지 논란거리가 남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2전3기 끝에 종료 승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달 23일 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KT 2G 서비스의 조건부 폐지를 의결했다. 해당 조건은 KT가 남은 2주간 자사 2G 가입자들에게 서비스 종료사실을 성실히 통지하는 것으로 사실상 별 의미 없는 수준이다.

KT는 지난 4월과 7월에도 '2G 서비스 종료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방통위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당시 방통위는 "서비스를 종료하기에는 남은 가입자 수가 너무 많을뿐더러 통지기간도 지나치게 짧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KT의 2G 서비스 가입자는 약 15만명으로 그간 방통위가 마지노선으로 제시해왔던 전체 가입자의 1% 수준(16만3천여명) 아래로 내려갔다. 올해 3월 110만명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비약적인 감소다.

법무법인 장백 최수진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30일 오후 서울행정법원에서 2G 가입자 970여 명을 대리해 KT의 PCS사업폐지 승인을 취소하라며 방통위를 상대로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서민기 대표. 연합뉴스
가입자수 불법축소 백태

그러나 KT 2G 서비스 가입자들과 시민단체는 가입자 수를 줄이기 위해 KT가 해왔던 불법적인 행태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빠른 서비스 종료를 위해 비상식적인 방법을 동원해왔다는 지적이다. 주간한국이 피해자들과 직접 통화해본 결과 매우 다양한 방법이 무리한 형태로 취해져 왔음이 드러났다.

김 모씨(30세, 서울시 강북구)는 사용하던 2G 단말기가 고장을 일으켜 집 근처 KT대리점을 찾았다. 따로 챙겨두었던 2G 중고 단말기로 기기변경을 신청하려 했던 정씨에게 대리점 직원은 "얼마 안 있어 2G 서비스가 종료될 것이기 때문에 기기변경을 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김씨가 대리점을 찾아갔을 때는 아직 서비스 종료 발표도 나지 않은 상태라 "슬슬 장사를 접을 테니 찾아오지도 말라는 거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구 모씨(32세, 서울시 강서구)는 집에 설치된 유선전화가 고장나 부른 AS기사가 3G 서비스 전환을 여러 차례 강권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구씨는 "내가 2G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설명을 위해 일부러 유선전화를 끊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모씨(48세, 서울시 성동구)는 영업용으로 두 대의 휴대폰을 쓰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대의 서비스가 종료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KT 측에 전화해 항의했으나 상담원은 "한동안 일시정지 상태였던 단말기라 직권해지를 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C씨는 그동안 요금을 납부하고 있었음에도 정작 직권해지를 당하기까지 아무런 사전통보도 받지 못했다. 특히 직권해지의 경우 군입대나 해외 장기 출장을 간 경우 번호 유지를 위해 일정 요금을 납부하는 가입자들이 많아 2G 서비스 가입자 수 감소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KT는 2G 서비스를 점차 축소해가는 방식으로 사용자의 불편을 유발하여 답답한 나머지 자발적으로 서비스를 끊게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잘 되던 전화가 갑자기 불통이 돼, 불편신고를 했더니 2G 서비스에 대한 시설 유지보수는 더이상 해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가입자들이 방통위에 신고한 건수만 매달 100건 이상이다.

2G 서비스 종료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도 주된 메뉴 중 하나다. 특히 노인층과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자주 행해지는 이 방법은 가입자들에게 무차별적인 전화공세를 계속해 이미 서비스 종료 승인이 난 것처럼 안내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심지어 방통위에 신고 접수된 한 가입자는 하루에도 11차례의 스팸 전화로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KT는 지난 9월 신문광고 등을 통해 "더 나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G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며 9월 19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2G 서비스 폐지 계획을 접수하여 '최종 확정'했다"고 허위 공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KT의 도 넘은 2G 서비스 종료 과정으로 기존 가입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KT 측에서 "일선 마케팅 담당자들의 착오로 발생한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재발방지 노력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말과는 달리 불법적인 행태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어 문제다. 이석채 KT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발로 뛰는 KT'가 사실은 '(고객을) 밟고 뛰는 KT'였다는 농담이 더이상 우습게 들리지 않는 이상, 이번 논란이 쉬이 가라앉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G 종료 사활 왜?

KT가 명분과 기업이미지 급락을 감수하면서까지 2G 서비스 종료에 올인한 이유는 그로 인해 얻어질 막대한 실리 때문이다. KT는 이번에 종료될 2G 주파수 대역에 4G LTE 서비스를 시작, 내년까지 1조3,000억원을 투입하여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KT는 당장 2G 서비스를 종료하는 8일부터 서울 시내 주요 도심 지역에서 LTE 상용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KT는 지난 8월 열린 주파수 경매에서 SK텔레콤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1.8GHz 대역을 놓고 싸운 양사는 9일간 총 83라운드를 끌며 경쟁했고 결국 해당 주파수는 SK텔레콤에 넘어갔다. 본래 1.8GHz 대역에서 4G LTE 서비스를 진행하려 했던 KT는 차선책으로 기존 2G 서비스 주파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에 걸친 방통위의 '2G 서비스 종료 신청서' 반려로 KT는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경쟁 통신사에 비해 4G LTE 진입이 한발 늦은 상태다. 지난 10월부터 LTE폰을 출시한 경쟁사들의 4G LTE 가입자수가 벌써 60만명을 상회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KT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관련업계에서는 통신망 구축에 막대한 초기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당장 서비스 홍보부터 해야 하는 만큼 벌어진 2개월의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발길이 급한 KT로서는 큰 수익이 되지 않는 2G 서비스를 마냥 붙잡고 있긴 힘든 것이다.

4G LTE로 이전해야 하는 막대한 필요성에 비해 2G 서비스 종료로 받을 금전적 피해는 1,100~1,200억원 대의 일회성 비용밖에 없다. 그마저도 2G 서비스 망 유지로 드는 연간 7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약간의 명분을 잃더라도 실리를 찾겠다는 KT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입자, 분노의 집단 소송

명분 대신 실리를 택한 KT를 대상으로 2G 서비스 가입자들이 날 선 칼을 빼들었다. 폐지 승인을 내린 방통위를 상대로 집단 소송에 들어간 것이다. 또한 8일부터 있을 서비스 중지를 막기 위해 판결 선고까지 2G 서비스 사업 폐지 승인의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한 상태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법무법인 장백의 최수진 변호사는 2G 서비스 가입자 970명을 대리해 방통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낸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자신 역시 2G 서비스 가입자인 최 변호사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사업자를 감독해야 할 방통위가 승인 결정 시 이를 고려하지 않고 사업자 편의만 봐주고 있다"며 "KT가 가입자를 인위적으로 줄이기 위해 여러 불법을 저질렀음에도 사업폐지를 승인한 것은 방통위가 위법을 묵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2G 서비스 가입자 970명의 대표격인 서민기 '010통합반대운동본부' 대표는 "15만명이 넘는 2G 서비스 이용자들이 그동안 애용해온 번호를 바꿔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KT가 제시한 보상책 또한 미비하기 짝이 없는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분 대신 실리를 택하려 했지만 혹여나 집단소송이라는 암초에 걸려 명분, 실리 둘 다 잃게 되지는 않을지 KT의 운명이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