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사생활’ 이면에 숨은 청탁과 금품 수수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미모의 여검사가 내연 관계를 맺고 있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의 대가로 고급 외제 승용차와 고가의 명품 가방, 아파트 등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법조계의 권위는 또다시 추락했다.

이번 사건은 해당 변호사와 또 다른 내연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학 여강사가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진정서는 검사에 대한 사건 및 인사 청탁, 판사에 대한 뇌물 공여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폭발력이 크다. 대검찰청은 즉각 특임검사를 임명하고 진화에 나섰지만, 진정서를 입수한 지 넉달 간 이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점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풀어야 할 세 가지 의혹'

대검찰청은 지난달 30일 이번 사건을 특임 검사에 맡겨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대검은 특임 검사에 이창재(사법연수원 19기) 안산지청장을 지명하고,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이 특임 검사는 1일 부산으로 급히 내려와 이남석 대검 중수부 연구관(연수원 29기), 김경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연수원 22기)을 두 축으로, 수사관 10여명으로 수사팀을 꾸렸다.

특임 검사팀은 수사 개시 첫날부터 지난달 18일 사표를 쓴 이모(36·여) 검사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높였다. 또 청탁 당사자인 최모(46)변호사와, 이번 사건을 진정한 이모(40·여) 강사 등을 대상으로 '이-최-이 3각 관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억지 기소' 부분. 최 변호사는 동업자의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가 동업자한테 들통나 '10억원을 주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당하자 그를 공갈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연수원 동기인 경남지역 A검사장한테 부탁해 무리하게 그를 기소했으나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는 게 의혹의 뼈대다.

그러나 해당 검사장은 "경찰에서 구속 지휘 의견으로 올라왔지만 담당 검사 말에 따라 불구속 기소하도록 했다. 청탁을 받았다면 당연히 구속 수사를 지시하지 않았겠느냐"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두 번째는 부적절한 '사건 청탁'을 위한 금품 수수 여부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이 전 검사에게 사건 청탁의 대가로 540만원짜리 샤넬 핸드백을 건넸다는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사실인 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최 변호사가 소속 로펌 명의의 벤츠 차량을 무상 대여하고, 아파트를 구해 줬다거나, 이 전 검사의 인사 청탁을 검사장급 인사에게 전달했다는 의혹도 특임검사팀이 풀어야 할 숙제다.

마지막으로 '판사 뇌물' 의혹이다. 진정서에 따르면 최 변호사가 부산지법의 모 부장판사한테 와인과 50만원 상당의 상품권 등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설사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 액수가 그리 크지는 않다는 점에서 실제 수사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지만, 최 변호사의 인맥이 워낙 넓은 것으로 알려져 특검 수사 과정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터져나올 지 모른다.

'다급해진 검찰'이 꺼낸 특임 카드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1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벤츠 여검사' 등 최근의 검사비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대 검찰총장이 특임 검사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역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처방의 일환으로 보인다. 여론의 악화 속도로 볼 때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자칫 검찰조직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을 놓고 '검사 비리를 검찰에 맡길 수 없다'는 경찰 진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이 검찰 수사권에 등을 돌릴 경우,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검찰 비리 의혹과 관련, 자체 특임검사가 임명 된 건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해 11월 부실 수사로 사건 은폐 의혹이 일었던 '그랜저 검사' 사건의 재수사를 특임검사에 맡겼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강찬우 특임검사와 수사팀은 전직 부장검사를 구속기소하는 등 관련자 3명을 재판에 넘겨 1,2심에서 유죄를 끌어냈다. 이는 지난해 국회에서 임명한 민경식 특별검사가 수사한 '스폰서 검사' 사건 관련자들이 잇따라 무죄 선고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실상 조직 살리기 특명을 받은 이 특임검사는 임명 직후 기자들에게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논어>에 담긴 이 말은 '신뢰가 없다면 조직의 존립 기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법조계 전반의 비리로 확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 크지 않다. 다만 사건의 중심에 놓인 최 변호사가 부산ㆍ경남지역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한 '마당발'로 알려져 다른 판ㆍ검사와도 유착관계를 맺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이번 사건을 폭로한 대학강사 이씨의 전력도 세간의 관심사다.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이씨는 검찰과 경찰, 변호사, 금융인 등 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사들과 다양하게 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법조계의 A씨는 "진정서를 낸 이씨는 모 정권 실세와의 친분을 내세워 판·검사와 변호사, 경찰 고위 간부 등 수십명을 만나고 피해를 입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때 이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B씨는 "5~6년 전 우연히 모임에서 이씨를 만나 자주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처가 많이 바뀌고 전세를 얻어 달라는 등 터무니없는 말을 해 신뢰하긴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이씨는 무척 똑똑한 데다 미모까지 뛰어나 남자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여성"이라고 전했다.

이씨와 최 변호사의 관계는 지난해 10월 채권·채무 관련자로부터 공갈 등 혐의로 피소된 이씨의 사건을 최 변호사가 선임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씨는 최 변호사와 사적 관계로까지 발전하면서 이 전 검사와의 관계 청산을 요구했고, 이에 최 변호사가 이 전 검사에게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으니 벤츠를 돌려달라'는 요지의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검찰은 이씨의 진정서를 남녀간 3각 관계에서 빚어진 일로 치부했지만 이들의 '은밀한 사생활' 이면에 청탁과 뇌물 수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씩 확인되고 있어 세간의 이목을 더욱 끌고 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