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내년 총선과 대선에 미칠 영향

더 이상 김정일은 없다. 그렇다고 김정일의 '그림자'까지 아주 지워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국내 정치판, 특히 총선과 대선이 잇달아 치러지는 내년에는 김정일 '그림자'가 더 짙어질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정치권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당장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 나아가 내년 12월에 치러지는 대선을 놓고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김정일 사망으로 모든 정치 시계가 멈춰 버렸다"는 말도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ㆍ분산 서비스 거부) 사건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로 수세에 몰렸던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김정일 정국'으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MB 탄핵'까지 거론하며 정부 여당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야권도 잠시 수위 조절에 들어갔다. 국가적 돌발상황 앞에서 마냥 정쟁에만 매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정일 사망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좀더 우세하다. 다만, 김정일 사후 북한 체제의 불안전성이 지속된다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통일 외교 안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럴 경우 내년 선거에서 '북풍'이 '상수(常數)'로 움직일 개연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가 확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또 '김정은 체제'가 연착륙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당장 남북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최소 1년 정도는 남북간 긴장이 사그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김정일 변수가 없었다면 내년 총선은 MB 정부 심판론이 핵심 이슈였다"면서 "김정일 사망 이후 안보 문제가 부각됨으로써 MB 정부에는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김정일 사망 사건을 계기로 어느 정도는 보수결집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만일 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서 대선까지 동력을 이어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북풍' 하면 으레 보수 세력에 유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는 "김정일 사망은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 사건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전제한 뒤 "김정일 사망이 내년 선거에서 주요 이슈가 되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보수세력에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고 박사는 이어 "현정권이 보수정권임에도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외교 안보 라인에 허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한 뒤 "(김정일 정국은) 내년 선거에서 여든 야든 준비된 비전을 제시하는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는 김정일 사망 이후 만 이틀이 넘도록 정보가 차단돼 있었다. 북한 측 발표에 따르면 김정일은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께 사망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날 낮 12시30분 일본 오사카로 날아갔고 이튿날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또 결혼기념일, 생일, 당선기념일이 겹친 지난 19일에는 청와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 스케줄까지 잡았었다.

한편 한나라당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강행 처리로 냉각기에 접어들었던 국회는 김정일 사망 대책 논의를 매개로 급반전 모드에 돌입했다. 민주통합당의 전격 등원 결정으로 여야는 국방위원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을 예정이다.

20년 만의 총선과 대선의 해를 앞둔 정치권이 '김정일 변수'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선거 단골손님 '북풍'… 갈수록 위력은 반감

'북풍(北風)'은 선거 때마다 단골손님이었다. 형태만 다를 뿐 거의 모든 선거에 '북풍'은 등장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풍은 선거를 좌지우지할 만한 큰 변수였지만, 그 위력은 갈수록 반감되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로는 '미풍'에 그친 경우도 많았다.

북풍은 5년 담임제로 치러진 첫 번째 대선이었던 1987년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다. 총 115명을 태운 KAL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했고, 탑승자 전원 사망했다. 그리고 보름 후 치러진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3김'을 물리치고 제13대 대통령에 올랐다.

이와 관련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8월 1일 "전두환 정권이 KAL기 폭파사건을 대통령 선거에 활용했다"면서 "13대 대선 하루 전인 1987년 12월 15일까지 김현희를 압송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북풍'이 선거에 이용됐음을 밝혔다.

1992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김대중 후보의 측근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됐다"고 발표했다. 김영삼 후보는 접전 끝에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1996년 16대 총선은 북한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중무장 병력 투입 사건 직후에 치러졌다. 결과는 139석을 얻은 신한국당의 승리였고, 국민회의는 76석, 자민련은 50석, 민주당은 15석에 그쳤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ㆍ26 재ㆍ보선 직전에는 '대한항공 조종사 종북(從北)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압승을 거뒀다. 2002년 대선 때는 '2차 북핵 위기'가 터졌지만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던 북풍과 달리 '신(新)북풍'은 되레 역풍을 맞았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했으나, 115석을 얻는 데 머물렀다. 반면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원내 1당을 차지했다.

2007년 10월 3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으나, 두 달여 뒤에 치러진 대선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피격 사건 후 치러진 6ㆍ2지방선거에서도 당시 한나라당은 안보이슈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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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