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믿을 것은 남한뿐'이라는 생각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방은 615호실이다. 2000년 6ㆍ15 남북공동회담을 상징하는 번호다.

그의 방에 들어서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사진이 눈에 띈다. 벽 한 켠에는 '後廣布德澤 南北生光輝(후광포덕택 남북생광휘)'라고 쓰인 액자가 보인다. '후광(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은 은혜를 베풀었고, 남과 북이 (하나 되면) 찬란한 빛을 발한다'는 의미로, 배기선 전 의원이 직접 써서 선물한 것이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그리고 '초대 평양대사가 소원'이라는 박 전 원내대표를 한마디로 설명해 주는 것들이다.

박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 정부 시절 대북 특사 역할을 맡았고, 2000년 6월 15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박 전 원내대표는 '공식적으로' 현역 정치인 가운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기도 하다. 박 전 원내대표는 6ㆍ15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국내 언론사 사장단과 함께 방북, 김 위원장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지난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박 전 원내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남다른 감회를 나타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 내 최고의 친미주의자"라며 "진정한 남북 화해를 원했던 김 위원장은 (6ㆍ15 정상회담 때) 대화 중간중간에 '우리 영토를 탐했던 러시아 중국 일본은 못 믿어도 미국은 우리 주권을 보장해 주면서 동북아 평화를 원하는 나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회고했다.

박지원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박 전 원내대표는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 위원장 생전에 남북이 화해의 큰 길에 나서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자주 토로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누구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몇 달 전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물은 적이 있는데 '좋아졌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김 위원장의 급서(急逝)에 조의를 표합니다."

-김 위원장을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어떤 인물이라고 평가하십니까?

"김 위원장은 친미주의자입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우리 영토를 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미덥지 못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주권을 보장하면서 동북아 평화를 유지시켜 줄 거라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가 통일돼도 미군이 필요하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그런데 왜 미 제국주의자 철수를 외치냐'고 물었더니 '그건 국내 정치용입니다'라고 답할 정도로 솔직한 인물입니다."

-현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아쉬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의 성과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도 국민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높이 평가돼야 하고 심지어 군사독재를 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

-김정일 위원장 사후 북한의 체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정은 후계체제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따라서 북한 내 통치를 위해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같이 3년 상을 치를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훈(遺訓) 통치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 판국에 남북정상회담을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요?"

-향후 북한의 권력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김정은은 군부와 함께 통치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군부에 대해 중국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할 테니까요. 북한은 3년 상을 치를 텐데 그렇다면 내치에 주력할 겁니다. 외부까지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는 거죠. 우리가 (북한의) 여유를 이끌어내려면 경제 지원이 필수이고 그래야만 개혁과 개방의 길이 열립니다."

-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새삼 주목 받고 있는데 만나봤는지요

"장성택은 강성입니다. 아주 강성이에요. 하지만 장성택은 그래도 믿을 것은 남한이라는 생각을 하는 인물입니다. (저랑) 술도 두 번쯤 마셨는데 아주 강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부는 일부 조문을 허용하면서 북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봅니까.

"이희호 여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뿐 아니라 권양숙 여사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조문을 허용해야 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도 조문을 가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 정부 국회 민간이 북한의 안정을 위해 성의를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또 가장 큰 문제인 식량 등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안정화를 꾀해야 합니다."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등과 관련해 북한과의 화해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이 우리에게 이익입니까? 우리는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배워야 합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동독 사람들의 가슴속 장벽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강국이었던 독일이 통일 후 20년 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2명이 북한 주민 1명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을까요?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은 우리가 죽는 길입니다. 다시 햇볕정책을 펴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시키면 자연스러운 통일이 될 거라고 봅니다."

-MB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변화 조짐이 있습니다. 조문 수위를 놓고도 고심한 흔적이 보이고요.

"(대북정책은) 변해야죠. (변화) 안 하면 우리가 손해입니다. 우리가 식량 지원, 경제 지원 등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김정일 사망을) 정부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북한과 평양은 당분간 세계적 뉴스의 초점이 될 거예요. 북한이 내년, 내후년에 어떻게 될 건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우리도 당장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고, 미국도 대선도 있고, 중국 러시아 일본도 지도자가 바뀔 수 있잖아요."

-북한의 유훈 통치를 예상하셨는데,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시는지요.

"그건 모르죠.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마도 (안정적인 유지가) 어려울 거예요. 6ㆍ15 정상회담 후 가장 큰 변화는 북한 내에서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쪽 형제들 덕에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문화의 동질성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다 끊어버렸어요."

- 한반도 정세를 봤을 때 민주통합당의 역할은?

"민주통합당은 정부가 제대로 된 대북정책을 펼 수 있도록 조언도 하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특히 중국,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정부는 이들 국가들과 의견을 교환해서 북한이 안정화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북한 문제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십니까?

"북한이 불안정할지 안정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남북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대두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살지, 민주당이 살지는 모릅니다. 이 문제는 소용돌이칩니다. 안정화된다고 해도 계속 북한을 바라볼 것 아닙니까?"

-당권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당대표가 돼야 할 당위성은 무엇입니까?

"지금 화두는 남북 관계입니다. 그리고 (당대표 선거는)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고, (당대표는) 대통령 후보를 당선시키는 역할입니다. 청와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가장 꺼려하는, 청문회 5관왕, 검증된 박지원이 필요합니다. 당대표가 된다면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내년 대선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 번 보세요. 제가 금년 2월에 '형님 나가라. 비리 터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결국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SLS 이국철 사건, 부산저축은행 문제 제기, 제가 하지 않았습니까? 비판과 감시 그리고 대안 제시가 야당의 역할입니다."

-당의 중심에 설 경우, 어떤 변화를 이끌 계획이신지.

"한 세력의 독점으로 굉장히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정권교체입니다. 저도 인기에 영합하면 좋겠죠. 하지만 민주당, 김대중 세력을 모두 안고 가야 민주통합당이 이길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무서운 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도 121석을 건졌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야권 승리의 일등공신이 이명박 대통령, 이등공신이 나경원 후보였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은 47%나 얻었습니다. 우리는 패하면 전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세력의 통합이 이뤄져야 정체성을 회복할 겁니다."

-안철수 원장의 출마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국민은 민주통합당에게 정권을 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문제는 민주통합당이 준비를 안 하고 있다는 겁니다. 준비가 안 된다면 안철수 원장 같은 분이 대선에 나올 수 있겠죠. 안철수라는 '감'이 누워 있으면 내 입으로 떨어진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차라리 가서 따든지. 민주통합당이 준비가 잘돼 있었다면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박원순 후보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정치인으로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누가 대통령이 된들 제가 총리를 하겠어요? 장관을 하겠어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정치적, 역사적 소임을 다했어요. 단 민주통합당이 집권해서 진짜 민주주의, 경제, 남북관계를 잘해보자는 겁니다. 소원이 있다면 민주통합당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초대 평양대사를 해보는 겁니다."

미국 거주때 DJ와 인연

●박지원은

1942년 6월 5일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목포 문태고와 단국대 상학과를 나온 박지원은 미국으로 건너가 1972년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이 됐고, 그 후 사업가로 성공해 1980년에는 한인회 회장에 올랐다.

이후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으며 1987년 6월 김 전 대통령 귀국과 함께 미국 영주권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정치인 박지원'의 인생이 시작됐다.

1992년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제14대 국회의원이 됐고,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민주당에 복당했고, 지난해에는 경선을 통해 원내대표에 올랐다. 지난 1년간 민주당 원내 사령탑을 맡아 뛰어난 정무감각과 노련함을 바탕으로 4∙27 재∙보궐선거 승리를 비롯해 민주당이 지지도에서 2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앞지르는 성과를 올리는 등 제1야당의 존재감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핫이슈] 김정일 살해 가능성까지… 격랑의 한반도 어디로?
▶ MB와 측근들 줄줄이 비리 의혹… 이제 시작일 뿐?
▶ [핫이슈] 또다른 남자와도… '방송인 A양 동영상'의 모든 것
▶ 앗! 정말?… 몰랐던 '선수'남녀의 연애비법 엿보기
▶ 불륜·헐뜯기 행각도… 스타들의 이혼결별 속사정
▶ 아니! 이런 짓도… 아나운서·MC 비화 엿보기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