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박성수 회장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유명 소장품 리스트가 화려해지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랜드 측에서는 새 사업을 위한 콘텐츠 확보를 주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기이한 수집벽도 한몫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헛된 돈은 쓰지 않는다는 근검경영의 이랜드가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유명품들을 수집하면서 내부 직원들의 불만도 제기되고있다.

이랜드는 지금 경매에 올인중

지난해 말 세계 경매업계를 뒤흔든 소식이 있었다.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며 일곱 번에 이르는 결혼과 이혼을 단행했던 전설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평생에 걸쳐 모았던 보석들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것이다. 이날 나온 물품들은 1인 소장품 경매로는 역대 최고액인 총 1억1,600만달러의 낙찰액을 기록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분명 테일러였지만 경매가 막바지에 다다르며 또 다른 이름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경매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33.19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낙찰받은 한국기업 이랜드다. 테일러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탓에 ‘테일러의 반지’로까지 불렸던 이 반지는 당일 경매의 하이라이트답게 가장 마지막 순서에 경매에 올라 예상가의 3배인 881만8,500만달러(약 101억원)에 팔렸다.

이랜드의 ‘큰손행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오슨 웰스가 시민케인으로 받은 오스카 트로피가 대상이었다. ‘시민 케인’이 1941년 제작되며 미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데다 이 영화의 감독, 주연, 각본을 맡은 오슨 웰스가 받은 유일한 오스카상이었던 까닭에 경매 이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랜드는 이 트로피를 86만1,542달러(약 10억원)에 손에 쥐었다. 테일러의 반지를 낙찰받은 지 불과 일주일만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반지
연말 벌어진 두 번의 낙찰이 화제가 되며 이랜드가 그동안 수집해왔던 유명품들도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이랜드는 이미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의 진주 목걸이, 영국 에드워드 7세의 직위 봉, 비틀즈 ‘렛잇비’ 앨범에 수록된 조지 해리슨 곡의 친필 가사, 마돈나 장갑, 딥퍼플 핑크플로이드 롤링스톤즈 친필사인 픽가드 등 다양한 인사들의 물건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랜드의 유명품 수집 도대체 왜?

재계 오너들이 국내외 유명 고가 예술품을 수집하는 사례가 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박성수 이랜드 회장에게로 옮겨갔다.

이랜드 측은 지난해 말의 경매물품 확보는 박 회장의 신성장 사업구상과 관련있다고 밝혔다.박 회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이랜드의 관광•레저분야에 대한 세부적인 ‘킬러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랜드 측은 “패션, 유통사업에 이어 관광•레저사업을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계획하고 있다”라며 “지난해 말의 경매 참여도 이에 필요한 핵심 콘텐츠 확보가 주된 목적이었다”라고 전했다. 평소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관광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랜드는 2010년 우방랜드(현 이월드)를 인수해 테마파크를 사업에 뛰어들었고 현재 제주도와 강원도 등지에 새로운 테마파크 조성을 계획 중인데 테일러 반지와 오스카상은 그곳에 전시될 것으로 보인다.

여타 경매품들도 이월드를 운영 중인 이랜드파크(구 이랜드레저비스)에서 맡고 있다. 마돈나의 장갑과 재클린 케네디의 목걸이는 패밀리레스토랑 애슐리 명동점에 비틀즈 친필사인, 조지 해리슨의 친필가사, 에드워드 7세의 직위봉, 유명 록그룹의 픽 가드 등은 켄싱턴스타호텔에 전시돼있다. 이들은 모두 이랜드파크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석연찮은 구석은 남는다. 그동안 수집했던 유명품들이 몇 점이나 되는지, 공개되지 않은 것들은 어떤 식으로 보관하고 있는지, 그것들의 낙찰가격이 얼마인지, 또 해당 금액이 어디서 나온 건지 등 거의 모든 사안들이 공개돼 있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이랜드 본사의 직원은 박 회장의 독특한 수집벽을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직원은 “회장님은 해외에 나가서 특이한 것을 발견하면 아예 집 채로 구매한 뒤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되팔아버린다는 소문이 있다”라며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경매품들 또한 사업적 측면과 동시에 박 회장의 수집벽이 반영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근검경영에 지쳐 있던 직원들은 불만

박성수 회장 주도의 유명 소장품 수집에 대해 적잖은 직원들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형 카니발을 타고 다니고 비행기도 꼭 이코노미석만 이용할 정도로 저렴한 박 회장이 정작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유명품들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이는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효과를 검증하기 어려운 유명 소장품을 사들이는 데는 막대한 돈을 쓰기보다 직원들의 복지나 근무요건 개선에 더 신경써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2010년 말 박 회장이 약속한 급여인상 및 은퇴기금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이랜드는 과거 과도한 업무부담으로 이직하는 직원들이 많자 ‘전직 금지 서약서’라는 사상 초유의 방법을 쓴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안팎으로 논란이 커지자 박 회장이 대신 꺼내든 당근이 바로 은퇴기금 신설과 연봉 최대 50% 인상안이었다. 정년까지 일해야만 받을 수 있는 은퇴기금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신입사원은 기본급의 25%, 주임 이상급 직원들은 기본급의 15%를 인상하고 성과급을 늘려 최대 50%까지 임금을 인상해주는 본 방안은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박 회장의 선언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연봉 인상의 수혜를 입은 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비판이다. 말단 사원들에게는 그 혜택이 잘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그나마도 등급을 나눠 좋은 평가를 받은 일부 직원들만 인상 혜택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한 직원은 “회장님이 처음 인상안을 발표했을 때 무척 기뻐했지만 정작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알고 오히려 상실감만 커졌다”라며 “대다수 직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십억원 이상의 유명 소장품을 낙찰받았다는 소식은 분위기를 싸하게 한다”고 밝혔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