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의원 임기 끝나면 야인으로 돌아가 시민운동적 정치할 터 언젠가는 대권에 도전하는 게 꿈

원희룡(48) 의원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내에서 대표적인 쇄신파로 꼽힌다. 원 의원은 정두언 유승민 의원 등과 함께 "이대로는 안 된다"고 쇄신을 부르짖으며 지난해 12월 최고위원 자리를 내놓았다.

이에 앞선 지난해 6월 원 의원은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총선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른 해석도 없지는 않지만, 대다수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며 원 의원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굳이 따지자면 원 의원은 총선 불출마 바람의 '원조'인 셈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공직자후보자추천위원회(공추위) 위원장으로 추대한 지난달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원희룡 의원을 만나 당의 쇄신 방안과 공천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원 의원은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두고) 도로 법조당 아니냐는 지적들을 잘 유념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공천에서는 기존의 법조당, 부자 정당, 상류층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새누리당은 죽음뿐이고, 만일 그런 길로 간다면 나부터 가만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런 이유로 객관적인 위치에서 당에 쇄신과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데.

"당이 국민 대다수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반영해야, 국민을 위한 국정운영이 가능하고 선거에서 표도 얻을 수 있다. 그간 새누리당은 재벌 쪽에 치우친 성장에 비중을 두다 보니 다수의 국민들이 민생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거다. 부자 정당을 극복해서 중산층을 살려야 하고, 안보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서 젊은 세대들의 다양성과 평등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

정당은 공공성이 생명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새누리당이 하락일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의 사퇴와 박근혜 위원장의 등판도 이런 이유 때문일 텐 어쩌다 새누리당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첫째는 민생 불안, 둘째는 민심 불통 때문이다. 이런 것들에 따른 국민의 불만은 쌓여 갔는데 새누리당은 제때 스스로 반성과 개혁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든지, 4대강 사업이나 이명박(MB)식 경제정책을 밀어붙인다든지, 이런 과정에서 민심의 이탈이 가속화되다가 선거를 통해 정권의 심판으로 표출된 것이다."

-지난달 18일 '새로운 보수 가치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의 과제'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한나라당은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이익단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한다"고 비판했다. 어떤 의미인가?

"정당은 공공성이 생명이다. 국민들의 공적인 욕구를 실천해 나가는 게 정당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에는 개인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부자, 상류층, 엘리트들의 지위 유지와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국회의원 등 공적인 자리를 사적인 수단으로 많이 사용해 온 측면이 있다."

국민만 보고 과감한 개혁

-박근혜 위원장이 등판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간 비대위의 활동을어떻게 평가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려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위기와 그에 따른 해법은 평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름도 비상대책위원회 아닌가?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방법과 큰 틀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울타리나 범위를 획기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주저하고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들은 안타깝다. 국민만 보고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

김종인위원 재벌개혁 원조

-비대위의 중추인 김종인 위원의 전력을 두고 말들이 많다. 김 위원의 자격 논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최근에 뇌물을 받은 분이라면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면 안 된다. 그런데 사건이 있던 90년대 초에 김종인 위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대통령의 정치자금 등을 경제수석이 조달하고 사용했던 게 비일비재했다. (뇌물 수수 사법처리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김종인 수석에 대한 정치보복 성격이 강했다. 물론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 상황,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고려하면 지금의 파렴치범과 똑같이 보는 것은 억울할 수도 있다. 이분이 앞으로 장관이나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책전문가로서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해 일하겠다는 거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놓고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과 경쟁해야 하는데, 김종인 위원은 이 분야의 원조다."

작년 가장 먼저 재창당 주장

-새누리당 체질개선을 위해 공천자 중 최고학력, 고위층 2세, 판검사, 고위관료 등 대한민국 상위 5%는 3분의 1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공추위 위원장과 부위원장 모두 법조인 출신이라 "도로 법조당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런 지적들을 굉장히 유념하고 잘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아쉬운 점인데, 짧은 시간 내에 인선하다 보니 '그랬으려니'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공천에서는 법조당, 부자 정당, 상류층 정당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은 죽음뿐이다. 만일 그런 길로 간다면 나부터도 가만있지 않겠다."

-한나라당이 15년 만에 새누리당으로 당명 교체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내용물은 그대로인데 간판만 바뀐다고 신장개업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름이든 실체든 다 파격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아직 실체의 변화가 확정된 게 많지는 않다. (당명만 교체된 데 대해서는) 중립이다. 아주 덤덤하다. 흥분이나 긴장이 안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12월 가장 먼저 재창당을 주장했다. 지금 구조로는 안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내 주장은) 안 받아들여졌다. 지금 시점에서 재창당은 늦었다."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원내 1당인 새누리당이 몇 석을 얻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줄곧 110석 안팎이라고 말하고 있다. 변수는 야권의 분열과 방심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새누리당은 110석 정도가 가능할 걸로 본다. 공천 후유증으로 범새누리당 세력이 분열한다면 110석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진정한 대표성 회복해야

-이제 정말 총선 모드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의 총선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한다고 보나?

"아주 단순하다. 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공천해야 한다. 선거 때만 표를 달라고 할 게 아니라. 진정한 대표성을 회복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전략은 공천뿐이다. 정책은 단시일 내에 가시적으로 성과가 드러날 수 없잖은가?"

-총선 불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했기 때문에 18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오는 5월 31일 이후로는 야인으로 돌아간다.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3선을 하는 동안 반성과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불출마를 결정했다. 3선씩이나 하면서 이 정도밖에 당에 변화를 못 줬는가 자성하곤 한다. 배지를 떼면 시민운동적인 정치를 할 것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계각층 민심의 소리를 듣고 취합할까 한다. 포럼, 카페, 인터넷, 타운미팅 등 새로운 방법을 통해 젊은 세대들과 호흡할 생각이다."

-정치적인 큰 그림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집권이 목적이다. 내 자신이 집권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집권 세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하지만 뜻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니까 쉽진 않을 것이다. 웅덩이를 채워야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니까.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에너지를 함께 하려고 한다. 수십 년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공부 원천은 난잡한 독서"

● 서울대 법대·사시 수석 합격 비결은
나경원·조해진과 '82학번 트리오'… 책 갖고 놀았던 경험 '공신' 도움

원희룡 의원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82학번들은 졸업생의 면면이 쟁쟁한데다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대표하는 시대적 상징성 등으로 줄곧 화제와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지난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나경원 전 의원, 조해진 의원, 원희룡 의원은 진작부터 당내 '82학번 법대 트리오'로 유명세를 탔다. 최근 학계는 물론, SNS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도 원 의원과 동기다.

이들 중 나경원 전 의원, 김난도 교수가 도서관파였다면 원희룡 의원은 학생운동 그룹에 속했고, 조국 교수는 언더서클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법대 편집부 피데스에서 활동했다.

원 의원은 8년 동안 운동의 길을 갔다가 1990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해 34회 사법시험(1992년)에 수석 합격했다.

새누리당의 '원조 쇄신파'로 통하는 원희룡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08년 총선까지 3번 연속 서울 양천구 갑에서 배지를 달았고, 2002년에는 당의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맡으며 개혁 색채를 더했다.

원 의원은 "공부를 그렇게 잘했던 비결이 어디에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원 의원은 1982년 대학입학학력고사와 사법시험을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시쳇말로 '공신(공부의 신)'이다.

원 의원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집에서 서점을 하다 망했는데 덕분에 엄청난 독서를 할 수 있었다"며 "난잡한 독서, 다시 말해 책을 갖고 놀았던 어렸을 적 체험이 훗날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이어 "엄청난 양의 독서, 글 속에 빠져들면서 그 안에서 깨우쳐야 할 것들을 스스로 터득했다. 결과적으로 독서 체험 속에서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깨우쳤다"고 '공신'의 비법을 공개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