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베이커리 사업을 속속 정리하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 급기야 대통령까지 관련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등 문제가 커지자 아예 사업철수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모양새다. 그러나 사업철수로 꺼질 줄 알았던 논란의 불길은 기업형 슈퍼마켓(Super Supermarket, 이하 SSM)으로 옮겨붙었다. 공교롭게도 '대기업 빵집'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던 롯데와 신세계가 SSM 논란에서도 중심에 서게 됐다.

롯데, 베이커리사업 철수

롯데가 마침내 빵집 논란에서 빠져나왔다. 장선윤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블리스는 베이커리 전문점인 '포숑'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블리스 관계자는 "이번 동반성장을 위한 정부 정책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국민 여론에 적극 부응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철수 이유를 설명했다.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비난여론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의 결단을 시작으로 재벌가 딸들이 속속 베이커리 사업 철수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장 대표의 사업철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직접적으로 관련 사업에 투자하지 않았던 이 대표와 달리 장 대표 블리스 지분의 70%를 보유,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 백화점 등에서 활동하던 장 대표가 처음으로 시작한 자기사업이자 경영능력을 보여줄 유일한 승부처였다는 점도 사업철수의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장 대표가 포숑의 국내영업권을 땄을 때 업계에서는 오너일가 자제 띄워주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고려당의 계약 만료 이후 신생회사인 블리스가 별다른 검증도 없이 그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이자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차녀인 장 대표의 존재가 블리스의 백화점 입점이라는 특혜를 낳았다는 내용이다.

현재 포숑은 롯데백화점 서울 소공동 본점, 잠실점 등에서 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설립 초기 12개로 시작했으나 5개 매장은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나머지 7개도 프랑스 본사와의 계약관계 등 남은 문제들만 해결한 뒤 완전히 철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비난 여론에서 벗어날 계획이다. 그러나 베이커리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장 대표의 남편 양성욱씨의 물티슈 사업 또한 논란의 중심에 있어 불씨는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남은 신세계 '억울'

롯데까지 베이커리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논란이 됐던 대기업 중 마지막으로 남은 신세계만 전전긍긍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만큼 비난여론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녀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지분 40%를 보유 중인 조선호텔베이커리는 데이앤데이와 달로와요라는 베이커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이앤데이는 이마트 118개 매장에 달로와요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등 10개 점포에 입점해 있다.

정 부사장은 장선윤 대표보다 더 난감한 상황이다. 롯데의 포숑이 설립 이후 적자만 내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조선호텔베이커리는 이미 그룹 매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여론에 밀려 알짜 사업을 접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사업 기간이 1~2년밖에 안 되는 다른 곳과 달리 우리는 15년 이상 베이커리 사업을 해왔다"며 "백화점과 이마트에서만 영업하고 있으므로 골목상권의 사업영역을 침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사업 유지 입장을 밝혔다.

기업형 슈퍼마켓 '논란'

연이은 베이커리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리는 대기업들은 이로써 골목상권 침해를 향한 비난이 잦아들기를 바랐겠지만 논란의 불길은 다른 곳으로 옮겨붙었다. 이번 대상은 SSM이었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이 동네 빵집들을 고사시키고 있다'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기업들의 베이커리 사업으로 '동네 빵집'들이 받은 영향은 극히 미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빵집이 대부분 계열 백화점이나 호텔, 빌딩 내에 입점해 있어 골목상권 침해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텔신라의 아티제는 삼성전자 공장과 오피스 빌딩 위주로 매장을 운영해 왔다. 롯데의 포숑 역시 롯데백화점 내에만 위치해 있으며 현대차가 운영하는 오젠은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와 서울 양재동 본사 두 군데밖에 없다.

그러나 SSM은 위상 자체가 다르다. 일단 점포 수도 월등히 많을뿐더러 골목상권에 미치는 영향 또한 베이커리 사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대형마트와 달리 비교적 좁은 매장에 접근성이 뛰어난 SSM은 엄청난 속도로 주변 상권을 잠식해나간다.

최근 대기업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 인수합병을 통해 SSM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영세 슈퍼마켓 점주들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SSM으로 재점화된 논란의 중심에는 또다시 신세계와 롯데가 자리잡았다.

신세계, SM마트 인수합병

신세계 산하의 이마트는 최근 '인수합병(M&A)을 통한 우회확장'이라는 방법으로 SSM 사업 규모를 키우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 17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SM마트와의 기업결합에 대한 최종 승인을 받았다. 이마트는 작년 12월 SM마트의 주식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SM마트는 현재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300평 안팎의 중형 슈퍼마켓 매장 28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인수하는 SM마트 28개를 합칠 경우 이마트의 SSM 점포 수는 총 100개(기존 이마트에브리데이 19개, 킴스클럽마트 53개 포함)가 된다.

현재 이마트 측은 인수 가격이나 향후 운영방향에 대해 쉬쉬하는 상태다. 공시의무가 없다고 하지만 그간 영업실적을 매달 공개해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석연치 않은 반응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인수도 최종 기업결합 승인이 내려진 열흘 후에야 알려졌고 이 또한 공정거래위원회 쪽에서 흘러나왔다는 후문이다.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신세계의 수장인 정용진 부회장의 기존 입장에 기인한다. 지난 2010년 정 부회장은 무분별한 SSM 출점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킴스클럽마트 54개를 인수하면서 '말뿐인 상생이었냐'라는 비난에 부딪혔었다.

1위 롯데, CS유통 품어

SSM 업계에서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 또한 사업확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2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쇼핑의 CS유통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굿모닝마트 송강점을 6개월 내 제3자에게 매각하는 조건이다.

이번에 롯데쇼핑이 인수하는 CS마트는 총 211개(직영점 굿모닝마트 35개, 임의가맹점 하모니마트 17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롯데쇼핑이 운영 중인 전국 315개(직영점 275개, 가맹점 40개)의 SSM 매장까지 합치면 526개로 크게 늘어난다. SSM 업계 2위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248개)나 GS슈퍼마켓(209개)과도 격차를 크게 벌렸다. 이중 임의가맹점으로 운영되는 176개 점포를 제외하더라도 2위보다 100개 이상 앞서는 수치다.

킴스클럽을 단번에 품에 안은 이마트와 달리 롯데쇼핑은 CS마트 인수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적지 않은 마찰을 빚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쇼핑의 독점적 시장지배가 염려된다며 승인을 미뤄왔다. 이번 승인이 조건부이긴 하지만 그 조건이 매장 하나의 매각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의 SSM 사업확장을 눈감아줬다고도 해석되는 이유다.

동네슈퍼 '우린 어떡해'

대기업의 SSM 사업확장에 골목상권은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다. 수도권의 웬만한 동네에서는 이미 SSM이 영세 슈퍼마켓들을 밀어낸 지 오래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06년 9만6,000개에 달했던 매장 면적 150㎡ 이하의 영세 슈퍼마켓은 매년 4~5천개씩 문을 닫고 있다. 정확한 최근 수치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2010년에는 7만5,000개까지 줄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통시장도 급격히 줄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조사한 결과 지난 2003년 1,700개에 육박했던 전국의 전통 시장은 7년 만에 178개가 철수하며 1,500여 개만 남았다. 같은 기간 SSM은 234개에서 928개로 무려 694개나 늘었고 지난해에는 마침내 1,045개를 기록 했다. SSM 매출 또한 2003년 2조6,000억원에서 009년 4조2,000억원, 2010년 5조원 그리고 지난해에는 6조1,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꼼수로 SSM을 대거 늘려 영세 슈퍼나 전통시장의 피해가 크다"며 "빵집에서 철수하는 것처럼 SSM도 철수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겠냐"라고 전했다. 이어 "시위도 하고 사업조정도 신청해봤지만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며 "우리 같은 영세업자는 근처에 SSM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일각에서는 신세계, 롯데의 최근 행보처럼 M&A를 통해 슈퍼마켓의 이름만 바꾸는 것은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상권 자체는 변화된 것이 없기 때문에 중소상인이 체감하는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잇따른 M&A를 통해 독과점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상대적으로 많은 자본을 지닌 대기업의 물량공세가 이어지면 영세 슈퍼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까닭에 여전히 논란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롯데, 이번엔 장례사업까지?

(유)헤븐, 전주역 인근에 장례식장 건축 추진$배후에 토지주 롯데쇼핑 지목

롯데쇼핑이 소유하고 있는 옛 대한통운 부지에 장례식장 신축이 추진되면서 그 배경에 롯데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베이커리 사업, SSM 등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롯데가 대표적 소상권인 장례업에까지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최근 전주 동부지역에 장례식장 신축을 놓고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전주의 관문인 전주역 인근에 장례식장이 생기면 지역의 품위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해당 주민들의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롯데쇼핑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롯데가 장례사업에 까지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강력하자 허가권자인 덕진구청이 건축주인 롯데쇼핑 측에 사업변경을 요청한 것도 이같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개연성도 충분하다. 장례식장 신축 예정지인 옛 대한통운 부지는 지난 2006년 롯데쇼핑에 넘어갔다. 그러나 100억원이라는 매입대금에도 불구 롯데쇼핑은 이를 수년간 방치해왔고 그동안 토지 가치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번에 장례식장 건축을 준비 중인 (유)헤븐은 이 부지를 롯데로부터 7년 계약조건으로 임대받고 덕진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기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크지 않은 규모의 (유)헤븐이 80억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건축비와 월 임대료를 부담하면서 장례식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후에 있는 롯데그룹이 (유)헤븐을 내세워 장례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이로 인해 주민들이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에 와서 항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례식장의 사업자는 (유)헤븐이고 우리는 단순히 토지주일 뿐"이라고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롯데쇼핑 관계자도 "장례업 진출은 없다"라고 못 박았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