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국세청 직원들의 횡포를 고발합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무혐의로 끝난 의 로비 의혹사건이 여전히 뒷말을 남기고 있다. 한 전청장의 로비의혹 사건은 2009년 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지난해 9월 무혐의로 결론났다.

당시 한 전 청장의 로비 의혹은 대략 세 가지. 전군표 전 청장에 대한 그림 로비 의혹을 비롯해 정권 실세를 향한 국세청장 유임 로비 의혹, 그리고 주류업체로부터 받은 로비 의혹이다.

한 전청장은 사건이 터지자 미국으로 출국해 1년3개월간 머물렀다. 그 기간에 국세청 모 지방청장의 주선으로 주정 3사와 고문 계약을 체결하고 약 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방청장은 한 전 청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A씨다. A씨는 한 전 청장이 국세청장에서 물러나기 직전에 모 지방 국세청장으로 영전했다. 과장에서 국장으로 승진한 후 다시 6개월 만에 지방청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바람에 국세청 주변에서는 여러 말들이 나왔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한 전 청장의 비리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대가로 초고속 승진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한 전 청장은 그림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청장직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2008년 12월 A씨를 지방청장으로 승진시켰고 자신은 다음해 1월 국세청을 떠났다.

한번 국세청은 영원한 국세청

한 전 청장이 미국에 나가있는 동안, 정치권에서는 A씨를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여러 언론사가 A씨의 입을 열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는 침묵을 지켰다. A씨는 지방청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한 전 청장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A씨의 동향을 추적해온 주간한국은 최근 그가 현직에서 잘 나갈 때 뒤를 봐줬던 주류업체들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 제보를 경기도 지역에서 주류유통업체를 운영했던 K씨를 만나 확인할 수 있었다.

K씨에 따르면 국세청 직원들과 주류업체들 간에는 매우 뿌리 깊은 검은 커넥션이 존재하며 이 추악한 거래에 A씨도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K씨는 "A씨가 경기도 모 지역 주류협회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아 주류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투자금을 댄 업체들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금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막을 알기 위해서는 국세청 직원들과 업체들 간의 유착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K씨는 '업계를 떠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점을 전제로, 국세청 직원들에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함께 울분을 토했다. "계속 주류유통업을 하고 있다면 보복이 두려워 말도 못 꺼냈을 것"이라고도 했다.

K씨와 함께 만난 L씨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L씨는 "국세청 전직 직원들도 손을 벌린다"면서 "만약 업체 관계자들이 전직이라고 쉽게 상대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귀띔했다. 권력에는 전관예우가 따르는 법인지, 국세청 직원 중 누군가가 그만 두면 그 직원에게 편의를 봐주도록 하는 관행이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보다 더 심하다는 것. 예컨대 퇴직 직원이 세운, 혹은 근무하는 세무법인에 일을 몰아주게 한다든지, 그들에게 세무관련 자리를 만들어주도록 종용한다는 것이다. 만약 전직 직원들에 대해 '대우'를 주지 않으면 후배들이 반드시 불이익을 준다고 L씨는 주장했다.

A씨와 주류업체의 악연

A씨도 같은 이유로 주류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이력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A씨는 현직에 몸담고 있을 당시 주류업체 세무조사를 담당했다. 한때 주류업체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에 적발돼 거액을 추징당한 크고 작은 주류업체가 여러 곳이라는 것. 주정 3사를 한 전 청장과 연결시켜 7,000만원의 고문료를 받게 한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K씨는 "A씨는 한 전 청장의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주류업체는 공포에 떨었다"며 "업계에 도는 소문을 들어보면 한 전 청장의 비리에 주류업계가 연루된 것도 모두 A씨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K씨에 따르면 A씨는 ○○주정회사를 차린 뒤 경기지역 모 주류협회에 속한 주류업체들에 투자를 요구했다. 업체를 세운 A씨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표이사로 세우고, 자신은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했다는 것이 K씨의 설명이다.

K씨는 "업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A씨가 어떤 인물인지, 국세청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는지 알 것"이라며 "그가 이제 와서 어떻게 왜 주정회사를 세웠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청장의 로비의혹이 무혐의로 끝나 홀가분한 상태가 됐고, 더 이상 검찰이든 언론이든 지켜보는 곳이 없으니 대놓고 업체들로부터 뜯어내 알짜배기 주정회사를 차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주정회사와 자신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A씨는 ○○주정회사를 운영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 회사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는 현재 하는 일이 따로 있는데 (내가)그 회사를 운영할 이유가 어디 있느나"라며 "○○주정회사는 주변인들의 부탁으로 그저 고문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또 "○○주정회사는 규모도 작고 별 볼일 없는 회사다. 그런 회사에 나는 그저 이름만 고문으로 올려놓고 있다"며 "대표이사도 다른 사람이고 투자자들도 나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경기도 모 지역의 주정회사로, 작고 별 볼일 없는 회사라는 A씨의 주장과 달리 모 주류협회에서 적지 않은 자본금을 출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역 주류업체들의 유통ㆍ판매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률 전 청장 비리 의혹 끝내 미스터리로

의 비리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끝내 정권 핵심부와 관련된 의혹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당시 검찰은 그림로비 등 개인비리를 밝히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한 전 청장이 고가의 그림을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상납한 혐의(뇌물 공여)를 적용하면서도 대가성 등 구체적인 청탁 내용은 규명하지 못했다.

야권에서는 이명박(MB)정부의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로 간주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 수사는 궁금증만 남기고 수사를 마무리해 '면피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검찰은 또 한 전 청장이 연임을 위해 여권 실세 등에게 골프접대를 했다는 의혹과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 의혹이 불거진 도곡동 땅 논란에 대해선 "사실 확인이 안 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골프접대 및 도곡동 땅 의혹을 제기한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도곡동 땅 전표를 봤다고 하지만 진술만 있을 뿐 입증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 전 청장이 안 전 국장을 통해 이상득 의원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안 전 국장의 당시 국회 출입기록을 확보했지만 의원회관에 들어간 뒤 부의장실에 실제로 들어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을 만났다"는 안 전 국장의 진술과 실제 출입한 기록이 있었지만 나중에 이 의원이 서면으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자 이 답변만을 근거로 의혹을 덮은 것이다.

그래서 검찰 안팎에선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검찰은 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불러온 태광실업세무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한 전 청장의 직권 남용 의혹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조사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검찰은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준 한 전 청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이 역시 찜찜함을 남기고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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