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좌), 박정희
바야흐로 총선의 계절이다. 아직은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겨울이지만, 여의도 입성을 꿈꾸는 정치인들의 마음은 벌써 4월에 가 있다. 4월 11일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열린다.

금배지를 노리는 '예비 국회의원'들 중에는 정치인 2세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이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단 이름은 알렸지만,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총선에 뛰어들었다. 2세 정치인들에게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정치인 2세들의 대를 이은 정치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부친의 지역구를 그대로 물려받는 경우는 '봉건주의적 세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통합당 한 관계자는 "세습이라는 말 자체가 우습지만 종종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8대 국회를 기준으로, 부모나 형 등에 이어 국회의원이 된 경우만도 20명에 이른다. 여야를 나눠서 보면 여당에 정치인 2, 3세이자, 2, 3세대 정치인이 많다. 야권에는 아무래도 재야, 운동권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대를 이어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부전자전의 본가(本家) 새누리당

현역 거물 정치인 중 상당수도 아버지에 이어 2, 3세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부친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정치적 DNA'를 물려받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근혜(60)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다. 지난해 12월 '구원투수' 자격으로 마운드에 오른 박 위원장은 최근 들어 당의 쇄신에 앞장서며 기존 보수 이미지에 개혁 색채를 가미하고 있다. 박 위원장의 경우는 부전자전이 아니라 '부전여전(父傳女傳)'인 셈이다.

기업인이자 정치인인 정몽준(61) 의원의 부친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정 명예회장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2년 대선에는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6선을 자랑하는 정몽준 의원은 새누리당의 예비 대선후보 중 한 명으로 분류된다. 정 의원은 그러나 다른 대선주자들과 달리 19대에도 총선(서울 동작 을)에 나서 7선 배지에 도전한다.

4선의 김무성(61) 새누리당 의원은 고 김용주 전 의원의 아들이자, 최치환 전 의원의 사위다. 김 의원은 아버지에 이어 원내대표(구 원내총무)를 지낸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 남구 을 출마가 예상된다.

선수(選手ㆍ4선)에 비해 나이는 젊은 남경필(47) 새누리당 의원은 고 남평우 전 의원의 아들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낸 남 의원은 줄기차게 쇄신을 부르짖으며 당 개혁의 선봉에 서 있다. 수원 팔달구가 지역구인 남 의원은 5선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한 정진석(52) 전 의원(3선)은 새누리당 간판으로 충남 공주ㆍ연기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의원의 아버지는 6선의 고 정석모 전 의원이다.

대구 동구 을이 지역구인 유승민(54)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아버지는 대구에서 재선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이다. 유 전 의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충북지사 출신인 정우택(59) 전 의원은 청주 상당구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금배지 탈환에 나섰다. 정 전 의원의 아버지는 5선을 지낸 고 정운갑 전 의원이다.

이종구(62) 의원은 부친은 6선에 빛나는 고 이중재 전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김영삼-김대중 시대' 때 야권의 중진으로 존재감이 매우 컸던 인물이다. 이 의원은 19대 총선에서도 강남구 갑에 출마, 3선에 도전한다.

(위·좌부터)최규성, 이경숙, 김두관, 김두수
김태환(69) 의원도 대표적인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김 의원의 부친은 고 김동석 전 의원(4선)이고, 형은 5선을 지낸 고 김윤환 전 의원이다. 김 의원은 구미 을에서 3선 등정에 나선다.

고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인 김세연(40) 의원은 현재 비상대책위원으로 맹활약 중이다. 김 의원은 18대 때 부산 금정구에서 36세로 금배지를 달아 최연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 의원의 장인은 한승수 전 총리다.

서울 송파구 을이 지역구인 유일호(57) 의원의 부친은 고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 장제원(45) 의원의 부친은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장 의원은 "당 쇄신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일찌감치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고 김두한 전 의원의 딸인 김을동(67) 의원은 할아버지인 김좌진 장군 계승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 의원은 서울 송파구 병에서 지역구 개척에 나섰다.

민주통합당과 자유선진당의 부전자전들

김성곤(62) 민주통합당 의원은 부친인 고 김상영 전 의원에 이어 야권을 대표하는 부자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특유의 성실함을 앞세워 여수시 갑에서 4선을 준비하고 있다.

이종걸(55) 민주통합당 의원은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다. 이 의원의 조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이고, 작은할아버지는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 선생이다. 또 이종찬 국민의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은 이 의원의 사촌형님이다.

이 의원은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경선 예선 탈락의 충격을 털고 재기를 모색 중이다. 안양시 만안구 출마가 유력한 이 의원이 이번에도 배지를 단다면 4선이 된다.

7선을 자랑하는 조순형(77) 자유선진당 의원(비례대표)의 부친은 고 조병옥 박사, 형은 고 조윤형 전 의원이다. 조 박사는 제4대 대통령선거 후보를 지냈고, 조 전 의원은 6선 출신이다. 조순형 의원은 19대 총선에도 출마에 무게를 두고는 있으나 최종 결정은 하지 못한 상태다.

같은 당의 이영애(64) 의원(비례대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외조부는 고 진직현 전 의원, 부친은 고 이경호 전 의원, 남편은 김찬진 전 의원이다. 이 의원은 그러나 이번 총선에는 나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김현철 최제완 정호준 "이번에는 우리도 꼭 단다"

경남 거제 출마를 선언한 김현철(53)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이다. 김 부소장은 17대와 18대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공천을 신청했지만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김 소장은 "이번에는 반드시"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좌 형우, 우 동영'으로 불렸던 최형우 전 의원의 아들인 최제완(41)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부산 연제구에 나선다. 18대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들었던 최 전 부대변인은 이번에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곳의 현역은 같은 당의 박대해 의원이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아들로 18대 때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던 김성동(58)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구 돌파를 선언했다. 서울 마포구 을의 현역은 강용석 의원(무소속)이지만, 성희롱 파문 등으로 출당됐다.

마포 을은 강 현 의원을 비롯해 정청래 전 의원과 김유정 현 의원(이상 민주통합당) 등이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서울뿐 아니라 전국 최고의 격전지로 꼽힌다.

서울 중구 출마를 결심한 정호준(41) 전 청와대 행정관은 고 정일형 전 의원(8선)의 손자이자,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5선)의 아들이다. 정 전 행정관은 2004년 17대 때는 낙선의 고배를 들었고, 18대 때는 전략공천이라는 당의 방침에 따라 뜻을 접었다. 정 의원이 당내 예선전을 통과한다면 '맹주'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과 일전도 예상된다.

17대 때 마포구 갑에서 배지를 달았던 노웅래(55) 전 민주통합당 의원의 부친은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이다. MBC 기자 출신이기도 한 노 전 의원이 예선전에서 승리해 본선진출티켓을 손에 넣는다면 17대 때 맞붙었던 강승규 새누리당 의원과 재대결이 유력하다.

서울 서대문구 을에서는 김영호(45) 전 민주당 정책위부의장이 '강호' 정두언 의원을 상대로 3번째 도전장을 냈다. 김 전 부의장은 2차례 낙선한 뒤로도 실망하지 않고 착실하게 밭을 갈아 왔다. 김 전 부의장의 아버지는 고 김대중 대통령을 "형님"이라고 불렀던 김상현 전 의원이다.

이재한(49) 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아버지의 지역구인 충북 보은ㆍ옥천ㆍ영동에 출마한다. 이 전 부회장의 부친은 이용희 현 의원이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자유선진당으로 옮겼다. 그러나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기 위해 숱한 비난을 무릅쓰고 다시 민주통합당으로 돌아왔다.

구성재(52) 전 조선일보 대구취재본부장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구자춘 전 의원(13, 14대)의 아들이다. 구 전 본부장은 무소속으로 대구 달성에서 도전장을 냈다.

고성국 정치학 박사는 "부자 정치인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이 아닌,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도 정치인 2, 3세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 박사는 이어 "신인들로서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최근까지 부친이 현장에서 정치를 했다면 조직이 살아 있기 때문에 엄청난 자산"이라면서도 "다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누구의 아들'일수록 더 엄격하게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주통합당 최규성-이경숙, 헌정 사상 첫 '부부 금배지'

민주통합당 최규성(전북 김제ㆍ완주, 재선) 의원과 이경숙 전 의원(17대)은 지난 17대 때 열린우리당 돌풍과 함께 헌정 사상 최초로 부부 국회의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최 의원은 19대 때 같은 지역에서 3선에 도전하고, 비례대표 출신인 이 전 의원은 서울 영등포구 을에 출사표를 냈다. 이곳의 현역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자 사무총장인 권영세 의원이다.

형제 정치인도 부자 정치인 못지않게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이다. 정치 입문은 13대 때 배지를 단 이상득 의원이 먼저였고, 14, 15대 때는 형제가 나란히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18대 때 서울 성북구 을에서 당선된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의 형은 김의재 전 의원(15대)이다. 또 새누리당의 홍일표(56ㆍ인천 남구 갑) 의원과 홍문표(65) 전 의원은 8촌 형제다.

김두관 경남지사의 동생인 김두수(48) 전 민주당 제2사무부총장은 경기 일산서구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김 전 부총장은 17, 18대 때는 경남 하동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장인은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이고, 이혜훈 의원(서울 서초구 갑) 의원의 시아버지는 김태호 전 의원, 이범래(서울 구로구 갑) 의원의 장인은 6선의 이충환 전 의원이다. 민주통합당 조배숙(전북 익산시 을) 의원의 형부는 13, 14대 의원을 지낸 오탄 전 의원이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