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사기의 달인이 인수한 코스닥 우량업체는 불과 1년 6개월 만에 상장 폐지됐다. 잘 나가던 회사가 망하자 직원들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금융 사기꾼은 회사 돈 80억원을 가로채 호의호식했다.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는 지난 3일 회사 자금을 마구잡이로 빼돌려 회사에 수백억원대 피해를 준 황모(53) 중앙바이오텍 전 회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일당인 김모(50) 중앙바이오텍 전 대표이사는 징역 2년 선고를 받았다.

업계 2위권 우량기업

중앙바이오텍은 동물용 의약품과 사료첨가제를 제조하는 회사로 시장에서 줄곧 2위권을 지켰다. 부채가 없는 탄탄한 기업이었던 중앙바이오텍은 외환 위기 시절에도 부채 없이 수익을 냈고, 2000년 8월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건실한 우량기업이었다. 경기 안산에 공장을 마련했고 서울에 사옥까지 갖췄다. 잘 나가던 중앙바이오텍은 2008년 9월 황씨 일당이 경영권을 쥐면서 지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채시장에서 빌린 돈으로 경영권을 장악한 황씨는 측근을 대표이사와 이사로 임명하고 나서 회사 돈을 횡령하고 사옥과 공장을 담보로 차입해 회사를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 황씨가 흥청망청 회사 돈을 축내는 동안 회사는 매출이 곤두박질쳤고 결국 2010년 4월 13일 상장이 폐지됐다. 사기 혐의로 수배를 받았던 황씨는 지난해 1월 경찰에 체포됐고, 금품을 받고 분식결산을 해준 회계사는 4월에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2005년 대학교수에 접근

황씨 일당을 검거한 검경 발표를 보면 이들의 사기 행각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경기도에 있는 모대학 산하 ○○○○문화재단 김모 교수를 상대로 황씨는 텍사스 주립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미국 유학파로 행세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일본계 금융기관 재무 담당으로 일했다는 속였다. 나아가 황씨는 "서○○ 의원, 서울시장 동생 등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며 "충주에 있는 리조트 주인인데 한 달 용돈만 5,000만원"이라고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자신의 거짓말이 어느정도 먹혔다고 판단한 황씨는 "리조트 사업과 서울 마포구 개발사업으로 자금이 부족한데 몇 개월만 돈을 빌려주면 수익금을 크게 불려서 갚겠다"고 김 교수를 꼬드겼다. 황씨는 유학은커녕 사기 전과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지만 김 교수는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4억 2,000만원을 넘겨주었다. 김 교수는 약속시한이 넘어가자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기도 했으나 "큰돈을 벌어 갚겠다"는 말에 속아 돈을 더 건넸다. 그렇게 쌓인 피해액은 무려 10억원.

전환사채 발행해 횡령

김 교수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황씨는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으로 2008년 9월 중앙바이오텍 경영권을 인수했다. 황씨 패거리는 사채업자에게서 빌린 돈을 중앙바이오텍 계좌에 입금한 날 다시 꺼내 사채업자에게 돌려줬다. 결국 사채로 경영권을 인수한 바로 그날 회사 주인이 되자 회사 돈으로 사채를 갚은 것이다. 이틀 뒤에는 사채를 이용해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또 회사 돈을 가로챘다.

황씨는 중앙바이오텍 자회사였던 마리아 바이오텍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렸고, 회사를 인수한 지 한 달 만인 10월에는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에 담보도 없이 43억원을 빌려주는 수법으로 회사 돈을 가로챘다. 법인카드로 달마다 1억 5,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쓴 황씨는 중앙바이오텍 서울 사옥과 안산 공장을 담보로 빌린 돈을 모업체에 빌려줬다. 중앙바이오텍으로부터 담보를 받은 업체는 태국에 골프장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황씨 패거리를 수사한 검찰 관계자는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렇게 돈을 빌려주겠느냐"면서 "회사 돈을 빌려주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결국 그 돈을 횡령했을 것이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밖에 황씨는 외상 매출금을 빼돌리는가 하면 회사 명의로 어음을 남발했다. 어음 만기일에 소지인이 지급을 요청하면 어음이 위조되거나 변조됐다며 오히려 소지인을 고소하기도 했다. 중앙바이오텍에서 회사 돈을 빼돌릴 만큼 빼돌린 황씨 패거리는 마지막으로 회사 주식을 매각하려다 실패하자 도망쳤다. 황씨가 도망을 다니는 동안 빈 껍데기만 남은 회사는 무너졌다.

상장폐지로 소액주주 피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지난해 7월 중앙바이오텍 자금을 빼돌리고 분식 회계한 황씨 일당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횡령 혐의로 기소했고, 서울중앙지법은 범죄 사실을 인정해 황씨에게 징역 5년, 김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각종 사기에 따른 피해액이 큰 데다 개인 피해자인 김 교수에게 경제적 손실을 넘어 직장에서 명예와 신용 실추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점 등을 고려해 황씨에게 실형을 통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동물 의약품 업체인 중앙바이오텍 경영에는 관심이 없음에도 자본도 없이 인수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죄질이 나쁜 점과 배임ㆍ횡령 등으로 중앙바이오텍이 코스닥에서 상장 폐지되면서 소액 주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