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당대표 흥행 성공 자신감으로 총선 지역구 공천에도 도입, 그러나 성공 여부는 불투명

민주통합당 한명숙(오른쪽) 대표가 지난 6일 4·11 총선 후보자 공천에 모바일 투표를 이용한 국민경선을 실시할 수 있도록 조속히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명숙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바일 투표는 국민의 요구이자,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정치를 쇄신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연합뉴스
어르신들 많은 지역구 순수 참여자 수에 의문
조직·동원 선거 변질 우려

당내 지도부 중진 신예도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
호남 지역 의원들은 '인위적인 물갈이' 거부감

대성공이었다.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80만 명이 참여했다. 80만 명이라면 어지간한 대도시 인구에 버금가는 엄청난 숫자다. 한국 정당 사상 단연 최대 규모였다.

내용도 알찼다. 참여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조직선거, 동원선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고, 판세를 예상하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지난달 15일 성대하게 막을 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이 그랬다.

박지원
당대표 경선 흥행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민주통합당이 4ㆍ11 총선 후보도 같은 방식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공천권을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는 한명숙 대표의 공언대로다. 민주통합당은 완전국민경선을 통해 내달 16일까지 지역구별 후보를 선출한다.

경선 방법은 모바일 투표와 현장 투표로 나뉜다. 선거인 자격은 총선이 치러지는 오는 4월 11일 현재 만 19세 이상의 국민으로 오는 29일까지 중앙당 전화, 당 홈페이지, 스마트폰을 통해 접수할 수 있다,

모바일 투표는 ARS 방식을 통해 2일간 이뤄지며 첫날 3회, 이튿날 2회 등 총 5회가 실시된다. 현장 투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날짜와 장소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민주통합당은 "당대표에 이어 후보 선출에서도 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완전국민경선, 특히 모바일 투표에 대한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제1야당 당대표 선출이야 대선에 버금가는 행사인 만큼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245개나 되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데 순수하게 참여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며 "당초 취지와 달리 조직 선거, 동원 선거가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영진
시큰둥한 당 지도부

한명숙 대표를 제외한 민주통합당 지도부들조차 모바일 투표에 대해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라는 게 당에 정통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대도시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 특히 농어촌 지역의 경우 어르신들에게 모바일 투표라는 게 얼마나 낯설겠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주통합당은 선거인들의 판단이 용이하도록 공천심사위원회가 지역구별로 예비후보를 2명으로 압축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1대1 구도 속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또 민주통합당은 형평성 확보를 위해 여성이나 정치신인에게는 20%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정치신인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현역 의원, 전직 의원 등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예비후보들이 기득권을 누리게 될 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수도권에 출마하는 한 예비후보는 "전화로 투표를 진행하면 아무래도 낯익은 인물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 않겠냐"면서 "조직력과 인지도에서 열세인 신인들에게는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중진들 "우리가 유리하다고?"

이름값 면에서는 중진들이 단연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모바일 투표든 현장 투표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농어촌에서는 중진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승산이 높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지역민들과 밀착돼 있는 토박이들이 '바닥 민심'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의원은 선거 때는 지역구에 내려가서 활동하지만 나머지 대부분 기간 동안에는 서울에 머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완전국민경선이 꼭 중진들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현재 민주통합당의 아성인 호남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3선 이상의 중진 의원으로는 (5선ㆍ광주 서구 을) (3선ㆍ함평 영광 장성) 강봉균(3선ㆍ군산) 이강래(3선ㆍ남원 순창) 조배숙(3선ㆍ익산 을) 의원 등이 있다.

정세균
4선의 (서울 종로), 3선의 김효석(서울 강서구 을), 3선의 유선호(서울 중구), 3선의 정동영(서울 강남구 을) 의원 등은 공천 심사 전에 호남을 떠나 서울행을 택했다.

모바일 투표는 호남 물갈이용?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 중 상당수는 모바일 투표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농어촌이 많은 지역 특성상 모바일 투표가 자칫 호남 물갈이용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다.

목포에 출마하는 최고위원(재선)은 "농어촌 지역은 노인 인구가 40%가 넘고, 정보 격차가 심한 50대 이상은 70%에 육박한다"며 모바일 투표 도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실제로 박 최고위원은 모바일 투표의 충격적인 위력을 실감했다. 지난달 당대표 경선 직전만 해도 박 최고위원은 한 대표와 1, 2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4위에 그쳤다. "그나마 후보 9명 중 4위를 한 것도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전남 고흥ㆍ보성에서 5선을 지낸 박상천(74) 의원은 지난 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나이가 많아져 몇 달 전부터 가족들에게 불출마를 권유 받았다"며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총선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인위적 물갈이는 선거를 통한 국민의 심판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몇 사람이 앉아서 물갈이를 하겠다는 것은 오만하고 비민주적인 발상"이라며 일방적인 호남 물갈이론을 크게 경계했다.

한때 당의 어른인 박 의원의 일갈에 호남 지역 여러 의원들이 박수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