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전투’가 요체, 문재인 바람 변수

4·11 총선에서 부산사상에 공천 신청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13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지역구 공천면접을 마치고 나서 부산지역 출마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재수(부산 북강서갑), 문재인(부산 사상), 최인호(부산 사하갑). 연합뉴스
부산 사하갑·을, 사상, 북강서갑·을, 김해갑·을

문재인 문성근 출마로 민주통합당 바람몰이

새누리당 공천작업 지지부진 '대적' 후보 찾기 고심고심

4ㆍ11 총선 '낙동강 전투'가 막을 올렸다. PK(부산ㆍ경남) 지역이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지역으로 부각된 가운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부산공천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PK 지역에서의 선거 결과가 이번 총선승패의 가늠자가 된다는 점에서 양당은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짜기'에 나섰다. 관건은 '낙동강 벨트'다. 이 지역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 인근에 있어 '노무현 향수'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문성근(오른쪽) 최고위원과 정진우 예비후보가 14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부산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 공천심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선제공격 나선 민주통합당

승패는 부산 사하갑ㆍ을, 사상, 북강서갑ㆍ을, 김해갑ㆍ을, 양산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벨트에 달렸다.

기선은 민주통합당이 잡았다. 새누리당이 전략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민주당은 전세를 가다듬고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부산 유일의 민주당 의원인 조경태(재선) 의원이 남쪽 끝인 사하을,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이 사하갑에 나섰다. 사하구와 연결된 사상에서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낙동강을 놓고 마주하는 북강서을에는 문성근 최고위원이 '맞바람'을 자신하고 있다. 문 최고위원은 정진우 예비후보와 공천경쟁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언론의 관심은 '투(two)문'에 모아지고 있다.

북강서을과 연결된 경남 김해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는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김태호 의원과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곽진업 전 국세청 차장과 공천경쟁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친노진영의 확고한 지지를 업고 있다. 이어 김해와 연결된 경남 양산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서출신인 송인배씨가 단독으로 공천을 신청, 사실상 공천을 확정했다.

최근 일부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문성근 김경수 예비후보 등이 새누리당 예상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같은 '투(two)문'이 진두지휘하는 '선제공격'에 힘입은 영향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지난 2004년 17대 총선 초반 당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후보들이 부산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들을 압도했지만 결과는 17대1(조경태 의원)의 결과로 나타났던 사실을 감안할 때 이같은 우세를 '현상'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 아직은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6일 민주당에 입당한 김두관 경남지사가 "지역바람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 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또 '낙동강 벨트'란 용어에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자칫하면 이 지역의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결집으로 연결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전략부심 새누리당

어쨌거나 민주당이 낙동강 벨트에서 초반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아직 '텃밭'사수를 위한 뚜렷한 '전략'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낙동강 벨트'지역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천작업도 지지부진하다.

특히 문재인 이사장의 부산 출마는 이미 1년 전부터 예상돼왔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중앙당이나 부산시당은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았다는 점은 내부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출신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문재인 이사장이 부산 총선에 투입되면 선거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의원들도 오래 전부터 해왔던 이야기"라면서 "뻔히 예상되는 결과임에도 '설마'하면서 전략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부산시당을 원망했다.

새누리당의 최대 고민은 민주당 약진의 '진원지'로 문재인 이사장이 출마한 부산 사상구 공천이다. 낙동강 벨트는 물론이고 부산ㆍ경남 전체선거, 나아가 총선 전체판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역이다. 특히 문 이사장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란 점을 감안할 때 연말 대선판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이 새누리당을 더욱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당장 문 이사장에 '대적'할만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모든 고민의 출발점이다. 새누리당이 '선거전략'을 고민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길 수 있는 후보가 있으면 내보내면 그만이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선거판'을 키울지, '조용한 선거'를 선택할 지부터 고민인 것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문 이사장의 싹을 자를지, 철저한 지역선거로 치를 것인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으나 '싹을 자를'카드도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허풍'으로 들릴 뿐이다.

그렇다보니 온갖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본인들이 강력 거부해 무산됐지만 김무성(부산 남구을), 김태호(김해 을) 의원 등을 꽂아야 된다는 주장에서부터 홍준표(서울 동대문구 을) 전 대표 전략공천설도 만만찮게 흘러나왔다. 일각에서는 부산에서 태어난 정몽준 전 대표를 투입하면 낙하산 공방도 피할 수 있고 사상 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높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다급해진 새누리당은 사상구에 예비후보를 등록한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부위원장은 물론이고, 현역의원인 장제원 의원의 형인 장제국 동서대학교총장도 물망에 올려놓고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에서 활동해온 지역밀착형 후보를 내세워 '조용한 선거'를 치르자는 주장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새누리당 부산 현역의원들도 '판'을 키우기 보다는 지역일꾼을 내세워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권영세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의 기본 인물 콘셉트는 중산층과 서민을 잘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해당 지역 주민과 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도 그런 측면에서 보고 있다"고 말해 '거물급'투입 가능성을 낮게 봤다.

'조용한 선거'를 선택할 경우 패배해도 부담은 적겠지만 문 이사장을 지역에 묶어놓지 못하고 인근 지역으로 유세를 다닐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어 전체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부담이 된다. 벌써부터 문 이사장은 인근지역과 '공조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사상구에서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 4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현정부들어 주일대사를 지낸 권철현 전 의원도 의욕을 앞세우고 있다. 권 전 의원은 일단 공천신청은 하지 않고 "당의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요청서'를 당에 제출해둔 상태다. '덩치'가 너무 커버린 권 전 의원의 국회 입성을 현역의원들이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도 감안한 선택이다.

나머지 낙동강 벨트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천 고민도 만만찮다. 일단 낙동강 벨트로 대표되는 서부산 지역의 경우 개발 갈등과 동서격차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이 누적돼 있다. 때문에 '정치꾼'보다는 일을 해봤고, 할 줄 아는 '전문가'들이 나서야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관료'출신들을 일컫는 말이다. 관료출신들에게 '뱃지'를 달아주면 힘도 생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료출신들이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문성근 최고위원이 나선 북강서을에는 새누리당 허태열 의원이 수성을 다짐하고 있으나 공천 여부는 불투명하다. 문 최고위원의 아버지 고(故) 문익환 목사와 통일운동을 함께했던 하태경 (사)열린북한 대표가 비공개로 북강서을에 공천을 신청, 허태열 의원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각됐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문재인 이사장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인 문성근 최고위원을 조기에 꺾을 수 있다면 낙동강 전투에서 예상외의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대성 IOC 위원은 불출마를 선언하고 공천위원으로 활동 중인 현기환 의원의 지역구 사하갑에 비공개로 공천을 신청했다. 문 위원과 하 대표는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대선 전초전

민주당의 PK 총선 결과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권행보와도 연결된다. 문재인 이사장이 이끄는 민주당이 PK 총선에서 약진하면 문 이사장의 '주가'는 급등할 수 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안철수 원장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문 이사장의 주가 급등이 아니라 안 원장의 주가 하락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학습효과'때문이다. 안 원장이 직접 나섰을 때보다 측면지원할 때 더 위력이 있을 것이란 판단인 셈이다. 문 이사장이 승리하면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대권 행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문 이사장은 안 원장과의 협력 필요성에 대해 "대선 과정에서 서로 힘을 합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며, 꼭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면서 "정권교체와 그 이후의 새로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고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문 이사장이 총선에서 당선되면 지금보다 더욱 확실한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분열로 박찬종 전 의원의 지원을 받은 이인제 후보가 부산에서 30%를 득표해 표를 분산시키면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다.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자력으로 30%를 얻으면서 당선됐고,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는 부산에서 13.5%라는 저조한 득표에 그치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완패했다. 부산에서의 득표가 대선결과를 예측하는 일종의 바로미터가 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전례를 놓고 볼 때 '야권후보 문재인'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탐탁치 않은 카드가 분명하다. '문재인 또는 김두관 카드'는 PK지역에서 상당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반(反) 이명박 정서에 노무현 효과'까지 더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16일 민주당에 입당한 김두관 경남지사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윈-윈' 전략으로 나서면 새누리당으로서는 PK 지역을 '갈라먹어야'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문재인 때리기'카드를 물밑으로 준비 중이다. 과거 변호사시절 업무와 연관된 것이란 게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낙동강 벨트 공략에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일정한 성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하는 측에서는 "이번에는 기류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이라는 구심점이 생긴 만큼 야권세력이 충분히 결집할 것이고, 새누리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란 주장이다.

반면 17대 총선 당시 탄핵정국에서도 깨지지 않았던 지형이 이번이라고 크게 다르겠느냐는 주장도 만만찮다. 2004년 총선 당시에도 '낙동강 벨트'가 최대 격전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지층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미풍'에 그쳤다.

야권은 대외적으로 부산 울산 경남지역에서 15석 확보를 자신하고 있지만 10석만 해도 성공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현재 의석의 두배로, 부산에서 3석 이상을 얻어야 가능해지는 숫자다.

이번 총선에서 낙동강 벨트의 성적은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대안세력'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느냐에 달렸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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