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왼쪽 세번째)이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코오롱 양궁팀 창단식에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왼쪽 첫번째), 이웅렬 코오롱 회장(왼쪽 두번째)과 함께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구자열 회장 자전거 선호 사업 진출에 큰 동력 제공
정몽구 회장 양궁육성 이바지, 이건희 회장 레슬링 입상경력
'스피드광' 정용진 부회장 바이크동호회 창립 주도

재계 총수들의 스포츠 사랑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레슬링, 축구, 사이클 등을 직접 즐겼던 총수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해당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채 단체장으로 종목 지원에 나서거나 아예 사업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구자열 회장의 자전거사랑

LS네트웍스는 중소기업과의 상생과 동반성장을 위해 자전거 판매업에서 부분 철수한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최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영역까지 침범하며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나선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LS네트웍스의 발표에 사람들의 시선은 에 쏠렸다. LS가 자전거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가장 큰 동력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구 회장이기 때문이다. 테니스, 골프, 스노보드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구 회장이지만 그래도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로 자전거를 꼽는다. 자전거에 대한 사랑이 경영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오른쪽 네번째)은 지난해 12월 대한사이클연맹 소속 국가대표 선수 및 전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직접 914km의 4대강자전거길을 종주 점검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구 회장은 3살 때부터 두발자전거를 탔다. 구 회장은 서울고 시절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뼈에 금이 가는 큰 사고를 겪으면서 아버지 구평회 E1 명예회장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지만 구 회장의 자전거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2002년에는 자전거로 해발 3,000미터 이상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트랜스 알프스' 대회에 도전, 수많은 기권자가 생기는 와중에도 결국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24대(2009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직도 맡고 있는 구 회장은 현재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경기도 안양 LS타워까지 자전거로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잇는 현대가의 양궁사랑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양궁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양궁사랑이다. 정 회장은 2대(1984년)부터 5대(1997년)까지 네 차례나 대한양궁협회장을 연임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다. 자동차 사업 이외의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정 회장의 성향을 감안할 때 30년 가까이 이어온 정 회장의 양궁사랑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아들인 정 부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스포츠광이다. 고교 시절부터 농구, 수영, 테니스, 스키 등을 즐겨왔고 요즘은 주로 등산을 하거나 테니스, 골프를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만능스포츠맨인 정 부회장 또한 부친과 마찬가지로 양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이 현대자동차 부회장 직함을 단 이후 처음으로 맞이했던 공식행사가 2009년 울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전야제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정 부회장의 양궁 실력 또한 상당하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코오롱그룹 양궁팀 창단식에 참석, 이웅렬 코오롱 회장과 함께 활 시위를 당겼다. 태릉선수촌에 가서 종종 활을 쏜다는 정 부회장은 상당한 양궁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레슬링 10단 이건희 회장

우리나라 레슬링의 최대 후원자는 이다. 이 회장은 21대(1982년) 회장에 선출된 이후 1997년 IOC 위원이 돼 24대 회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15년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맡았다.

이 회장이 협회를 맡았던 기간은 한국 레슬링의 최대 전성기였다. 한국 레슬링은 이 기간에 올림픽 7개, 아시안게임 29개, 세계선수권 4개 등 총 40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 회장은 레슬링이 좋은 성적을 일궈내 비인기 종목에서 벗어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일본 조기 유학 시절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흠모했다는 이 회장은 귀국 후 진학한 서울사대부고 시절 레슬링 선수로 2년간 활동했으며 1959년 전국대회에서는 웰터급으로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갖고 있다. 늘 외톨이었던 이 회장은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치열한 목표 의식도 갖게 됐다고 전한다.

이 회장은 2003년 제1회 승단심사에서 레슬링 10단을 받았다.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올림픽 금메달 6단 등 경기 업적과 관련해서는 지도경력을 평가해 최고 8단까지 인정하고 9, 10단의 경우 레슬링이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한 데 크게 공헌한 인물에 수여한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기업인보다는 축구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선임돼 2002한일월드컵 개최를 이끌어낸 정 고문은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직도 수행했다.

정 고문은 널리 알려진 축구 마니아다. 해외출장 때도 항상 축구화부터 챙기며 시차 조절을 위해 축구로 땀을 뺀 뒤 잠자리에 들 정도다. 정 고문이 나온 중앙고 축구부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곳이었다.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가서 응원했는데 정 고문은 이 과정에서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축구를 하는 것뿐 아니라 보는 것도 좋아하는 정 고문은 공이 움직이는 것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 중계방송을 시청하기보다는 선수 전체가 움직이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직접관전을 즐긴다.

구자열 LS전선 회장
바이크 즐겨탔던 정용진 부회장, 박정원 회장

은 한때 바이크를 즐겨탔던 것으로 유명하다. 1998년 모터사이클링에 입문한 정 부회장은 1999년 BMW 모터사이클 동호회인 'BMW MCK'를 주도적으로 창설, 2000~2003년 2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 동호회 '호그(HOG)'의 회원으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활동 당시 정 부회장은 동호회 사람들과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1,000km를 달린 적도 있을 정도로 열성회원이었다.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나선 이후 바이크를 타지 않고 있지만 함께 호그를 했던 이들은 여전히 정 부회장과 함께 달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정 부회장 이외의 재계 바이크 마니아로는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을 꼽을 수 있다. 박 회장 또한 정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인 '호그'의 회원이다. 1년에 한 두 차례 마음이 맞는 동호회원들과 투어를 다니기도 한다. 호그 관계자는 "박 회장은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할 정도로 할리를 아낀다"고 전했다.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박 회장과 정 부회장은 호그에서 가끔 만나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3세들은 '승마 국가대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재계 인사들이 스포츠를 좋아하고 실제로 수준급이라고 할지라도 직접 선수로 뛰는 이들과는 아무래도 실력 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3세들 중에는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약했던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모두 선수로 활약했던 분야가 승마라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직접 승마단을 만들 정도로 승마 애호가였던 부친 이건희 회장 덕분에 어릴 적부터 말을 접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이 회장 전용 승마장에서 말을 탔던 이 사장은 장애물과 마장마술 모두에 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이 사장은 승마선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1989년 열린 제2회 아시아승마선수권대회 장애물 단체전에 출전한 이 사장은 결국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삼성 국제마장마술대회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전성기를 보내던 이 사장은 1991년 낙마사고로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이 사장은 그 사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씨는 최근 승마 부문 한국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김 씨는 지난달 미국 웨스트팜비치에서 열린 WC 선샤인 챌린지 국제 마장마술 그랑프리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최상위급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그랑프리 스페셜' 종목에서 김 씨가 기록한 3위는 서정균 갤러리아 승마단 감독이 1988년 CDI아헨대회 기록한 6위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김 씨는 앞서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88cm 장신에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쌓으며 전국 승마대회를 휩쓸었던 김 씨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꼽혀왔다.

LG家 야구광·롯데家 한일 양국 구단 운영

■10대 그룹의 격전지 '프로야구'

재계 총수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스포츠 중 하나는 프로야구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탓에 기업 홍보 효과가 큰 데다 아낌없는 지원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총수 개인의 이미지까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흥미롭게도 총 8개 구단 중 7개가 10대그룹 산하에 있어 묘한 경쟁심을 자극한다. 재계를 넘어 야구계에서도 10대그룹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라이온즈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잠실구장 원정팀에 마련된 본부석 왼쪽 아래가 이 사장의 지정석이다. 이 사장은 청소년 시절부터 잠실경기가 있을 때면 매일 보러와 경기 후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등 야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삼성라이온즈의 페넌트레이스 우승 소식을 듣자마자 류중일 감독에게 직접 우승축하 전화를 하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또한 기아타이거즈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기아타이거즈가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낸 이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정 부회장은 300억원에 이르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 8개 구단 중 최초로 전용구장을 신축했다. 야구장외 별도 연습구장이 없는 것을 감안, 150억원을 투자해 전용연습구장을 신축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핸드볼의 최대 후원자인 최태원 SK 회장은 야구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문학구장에서 야구 모자를 쓰고 응원 수건을 양손에 든 최 회장의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힐 정도다. 특이한 것은 본부석이나 VIP석이 아닌 일반석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응원하는 것을 즐긴다는 점이다. 2010년 SK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을 때 축승연에 참석한 최 회장은 선수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폭탄주를 권하기도 하는 등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크다.

10대그룹 중 온 가족이 야구사랑에 빠져 있는 곳은 LG다.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하여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삼형제는 모두 내로라하는 야구광이다. MBC청룡을 인수하며 야구단 운영에 뛰어든 구본무 회장, 낙후지역에 있는 학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구본능 회장, 여전히 사회인 야구에서 투수로 활약 중인 구본준 회장의 지원으로 LG트윈스는 성적과 무관하게 신바람 야구를 해오고 있다.

롯데의 신격호-신동빈 부자는 한일 양국에서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야구경영 전반을 맡고 있는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일본의 선진 야구 문화를 한국에 들여오고 한국 선수들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돕는 등 야구를 통한 양국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로이스터 감독 경질과 이대호의 7억원 연봉 요구 거절 등으로 팬들의 빈축을 샀지만 여전히 구단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세 시즌 동안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한화이글스는 검찰 수사와 M&A 등으로 침체돼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야구단 지원에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김 회장인지라 한화이글스 또한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구장이 없는 데다 스카우트 인력도 가장 적다. 차라리 야구단을 매각하라는 팬들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지난해 대표이사ㆍ단장 동시 교체, 코칭스태프 전면 개편 등 초강수를 두며 한화 야구 부활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두산가의 야구사랑도 LG가에 못지 않다. OB베어스 창단 구단주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과 동생인 박용만 회장,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은 잠실경기 때마다 구장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박용곤 회장은 80세 고령임에도 정규시즌 130경기 중 평균 60경기 이상을 관람할 정도로 열성적인 야구팬이다. 트위터를 통해 두산베어스 팬들과 소통을 즐기는 박용만 회장, 해박한 야구지식을 자랑하는 박정원 회장 또한 야구사랑으로는 빼놓을 수 없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