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격전지 르포-‘민주통합당의 심장’ 광주

이정현 새누리당 광주 서구 을 후보가 한 행사장을 방문해 여성 유권자와 이야기를 나누 고 있다. 이정현 후보 제공
“투표는 반드시 하되 당만 보고 찍지는 맙시다”


“노란 깃발만 꽂으면 당선”은 옛말…’정당 바람’ 퇴색

4ㆍ11 총선이 목전임에도 광주는 차분하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잇달아 당선시킨, ‘민주통합당의 심장’ 광주이지만 의외로 조용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시민들은 “이제는 그만큼 정당 바람이 퇴색됐다는 증거 아니겠냐”고 설명한다.

지난 21일 오후 광주시 서구 광천동 종합버스터미널. 광천동 터미널은 광주 인근 시ㆍ군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전국 모든 노선이 운영되는 곳으로 호남의 관문이자 광주의 얼굴 격이다.

골재상을 운영하는 김동수(42ㆍ광주시 서구 염주동)씨를 터미널 주차장에서 만났다. 총선을 앞둔 요즘 광주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김씨는 “아마도 이게 정답일 것”이라고 운을 뗀 뒤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DJ의 분신'으로 불리는 최경환 민주통합당 광주 북구 을 예비후보가 등 교 중이던 광주 국제고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경환 예비후보 제공
“동네 친구들과 만나 소주를 마실 때면 ‘투표는 하되 당만 보고 찍지는 말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래도 광주인데 민주통합당 간판을 다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겠지만 예전처럼 일방적인 승부는 안 될 겁니다.”

김씨는 이어 “그것은 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씨가 말한 ‘애들’이란 이제 막 유권자가 된 20세 안팎의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전남대 2학년인 이모(여ㆍ20)씨는 “당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투표는 할 것이고, 인물 보고 제대로 찍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광주에는 8개 지역구가 있고, 국회의원 8명 모두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민주통합당의 텃밭이자 철옹성이다. 최근 4차례 총선, 27개 의석 중 25개를 민주당이 가져갔다. 무소속 당선자는 16대와 18대 때 강운태 후보(현 광주시장)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민주통합당의 아성이 흔들리는 듯한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광주 서구청장 선거에서 잇달아 무소속 후보가 민주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게 좋은 예다.

“민주당이 해준 게 뭐 있어?”

최경주 민주통합당 광주 북구 을 예비후보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대학생 취업률 제고를 이루겠다"고공언했다. 사진은 노무현전대통령의 부인권 양숙 여사 사진을 배경으로 한 최 예비후보. 최경주 예비후보 제공
광주시민들이 민주통합당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애증’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광주이기에 민주통합당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노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됐던 시절의 정서도 아니다. 민주통합당 현역의원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기껏 찍어줬더니 광주에 해준 게 뭐 있냐”는 것이다.

광주 남구에서 요식업을 하는 오모(42)씨는 “서구 갑과 을, 북구 갑과 을은 (판세를) 잘 모르겠다는 게 대체적인 생각인 것 같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서 최소한 절반은 갈아치워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서구 갑 을과 북구 을이 최대 격전지라는 데는 여러 예비후보들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한 예비후보는 “시민들을 만나보면 물갈이 여론이 매우 높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못 믿겠다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강모(53)씨는 “솔직히 선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니다”며 “선거 때만 지역구에 있다가 4년 내내 코빼기도 안 비치는 사람들은 다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내현 민주통합당 광주 북구 을 예비후보(왼쪽)가 지난달 손학규 전 민 주당 대표의 무등산 산행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내현 예비후보 제공
“친노? 도로 열린우리당은 안 되지”

그렇다고 구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곧바로 친노 그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친노 그룹의 전면 부상에 대한 거부감이나 방어심리도 상당하다. 민주통합당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대기업에 다니다 3년 전 퇴직한 김모(55ㆍ광주시 북구 운암동)씨는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지만 돌아온 게 뭐였냐”고 반문한 뒤 “최근 당대표나 최고위원 선거를 보니 전부 친노더라”며 시큰둥해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던 2004년에 치러진 18대 총선 때 광주는 열린우리당에 완승을 선물했다. 7개 의석 모두 열린우리당이 차지했고, 특히 만 40세의 무명 정치신인 강기정 후보는 6선의 거물 김상현 의원을 누르고 배지를 달았다. 그만큼 열린우리당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지원은 뜨거웠다.

하지만 ‘100년 정당’을 자부하던 열린우리당은 2007년 대선 패배 후 존재감이 미약해졌고, 결국 2008년 2월 민주당과 통합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광주에서 열린우리당 이야기를 꺼내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재균 민주통합당 광주 북구 을 예비후보(오른쪽)가 지난 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무등산 산행 행사에 참석해 지 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재균 예비후보 제공
한 현직 시의원도 “최고위원 6명 중 광주 출신은 한 명도 없을뿐더러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당 요직도 친노 그룹이 장악한 것 아니냐”면서 “친노 일색이라면 열린우리당과 다를 게 없지 않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물이 되든, 생활정치를 하든!”

“광주에 도대체 국회의원 누가 있소?” 22일 오전 광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양동시장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이렇게 되물었다. “총선이 코앞인데 광주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요즘에 ‘광주 하면’ 생각나는 국회의원이 있긴 해? 거물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 중앙에서 거물이 못 될 바에야 고향에서 생활정치라도 제대로 잘하든지. 민주당 의원들이 예산 제대로 챙겨서 광주에 도움 준다는 말은 별로 못 들어본 것 같아. 이도 저도 아니라니까.”

주부 이모(40ㆍ광주시 남구 봉선동)씨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를 하겠다고 별렀다. 이씨는 민주통합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송갑석 민주통합당 광주 서구 갑 예비후보가 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유권 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송갑석 예비후보 제공
“그동안 광주는 ‘시멘트 바닥’이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민주당에 몰표를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아무런 혜택도 없었어요. 아이들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라도 이번에는 꼭 투표를 할 것이고, 제대로 된 인물한테 표를 줄 겁니다.”

“투표할 후보를 마음속으로 정했냐”고 묻자 이씨는 “사람은 많은데 아직까지 썩 마음에 든 사람은 없다. 다 그만그만한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좀더 괜찮은 사람을 고를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역대 총선 결과

총선 총 의석 결과

15대 6 새정치국민회의 싹쓸이

16대 6 민주당 5석, 무소속 1석

17대 7 열린우리당 싹쓸이

18대 8 민주당 7석, 무소속 1석

●18대 국회 광주지역 국회의원

지역구 의원(나이) 주요경력

동구 박주선(63) 대통령 법무비서관, 재선

서구 갑 조영택(61) 국무조정실장, 초선

서구 을 김영진(65) 농림부 장관, 5선

남구 장병완(60) 기획예산처 장관, 초선

북구 갑 강기정(48) 당대표 비서실장, 재선

북구 을 김재균(60) 민선 2, 3기 구청장, 초선

광산구 갑 김동철(57) 국세청장, 청와대 비서관, 재선

광산구 을 이용섭(61) 행자부 장관, 초선

광주 예비후보들 “우리도 변화 욕구를 느낍니다.”

광주 8개 선거구 가운데 동구, 서구 갑 을, 북구 갑 을, 광산 갑 등 6곳은 격전지로 분류된다. 이는 시민들의 생각이나 예비후보들의 생각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됐다.

특히 그중에서도 서구 갑 을과 북구 을은 경쟁을 넘어 전쟁이다. 서구 갑과 북구 을은 민주통합당 당내 경쟁이 치열하고, 서구 을은 민주통합당 당내 경쟁과 함께 여야 맞대결이 뜨겁다.

전대협 의장 출신인 송갑석(46)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는 서 갑에 도전장을 냈다. 송 예비후보는 지난 10~12일 광주전남 11개 언론사가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9.9%를 얻어 현역인 조영택(61) 민주통합당 의원(17.2%)을 앞섰다.

여론조사 결과 발표 직후 사전 정보 유출 등으로 결과가 왜곡됐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송 예비후보는 현역 의원을 앞섰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돼 있다.

송 예비후보는 “광주지역 의원들에 대한 민심의 평가는 냉혹하다”고 전제한 뒤 “그것은 일꾼도 아니었고, 중앙정치에서 개혁성을 드러내지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의 입’이었던 이정현(54) 새누리당 의원은 ‘콘크리트’ 깨뜨리기에 여념이 없다.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진출한 이 의원은 일찌감치 광주 서 을에서 출사표를 밝혔다. 이 지역의 현역은 5선을 자랑하는 김영진(65) 민주통합당 의원.

새해 첫날부터 밭갈이에 나선 이 의원은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발걸음이 더욱 분주해졌다. 24시간 갖고는 하루가 모자란 이 의원에게 천천히 걸어 다닌다는 건 사치다. 차에서 내리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이 의원은 “27년 동안 민주당 일색이었던 광주가 이번에는 민주당을 정신차리게 해야 한다”며 “시민들을 만나보면 ‘바꿔보자’는 변화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지난 4년 간 의정활동을 통해 호남예산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며 “노란 땅에서 파란 새싹 하나 키워달라”고 호소했다. 이 의원은 자신이 직접 고안한 노란색 바탕에 파란 싹이 그려진 넥타이를 메고 다닌다.

북 을에서는 같은 여론조사에서 조선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최경주(52) 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호남본부장이 13.7%로 1위에 오른 가운데 민선 2, 3기 북구청장 출신의 김재균(60) 현 의원이 12.8%, 광주고검장을 지낸 임내현(60) 정봉주 구명위원회 부위원장이 10%,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정책특보였던 최경환(53)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이 9.8%를 얻었다.

방어전에 나선 김재균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위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면서 “직접 주민들을 만나보면 ‘힘내서 이기시라’는 격려를 많이 듣는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깜짝 1위’에 오른 최경주 예비후보는 “산학 협력체제를 구축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대학생 취업률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최 예비후보는 또 “현장과 밀착된 인력 양성 및 기술 지원 체계를 정착시키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대학생들의 취업률이 올라가는 것은 스웨덴과 핀란드 등에서 이미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당 법률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 예비후보는 “지난 번 여론조사 때는 예비후보들의 직함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결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임 예비후보는 이어 “전직 고위검찰이라는 타이틀이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며 “6년 동안 당에서 묵묵히 일해왔을 뿐 아니라 지금은 정봉주 구명위원회 부위원장, BBK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DJ의 분신’으로 통하는 최경환 예비후보는 “최고위원 후보조차 내지 못한 지역이 바로 광주”라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득권에 안주해 있는 광주 국회의원들에 대한 물갈이 여론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예비후보는 또 “김대중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은 금귀월래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여의도에 간다면 그 원칙을 잘 지키면서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겠다”고 다짐했다. 금귀월래(金歸月來)란 ‘금요일 오후에 지역구에 내려갔다가 월요일 아침에 여의도로 올라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