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드디어 숙원사업 맥주시장 도전장

대형마트 맥주 코너. 3조 5000억원대 맥주 시장에 롯데그룹이 진입을 선언했다. 이종철기자
충주에 공장건립 예정 2017년 제품생산 목표
막강한 자금력+유통망 아사히맥주 수입이 첫발 제조비법 '성공 무기'로

1~2년내 10%점유 자신… 아사히와 제휴땐 더 빠를듯
"소비자 입맛 길들여져 끼어들기 힘들것" 시각도… '선언'후 주가 하락도 방증

매출 규모가 3조 5,000억원대인 맥주시장. 최근 수입 맥주가 한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롯데그룹이 맥주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충주에 맥주 공장을 지을 예정인 롯데그룹이 과연 오비와 하이트가 양분한 맥주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롯데그룹은 이미 소주와 와인, 양주를 제조ㆍ판매하고 있어 맥주까지 생산하면 종합주류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 막강한 자금과 유통망을 갖추고 있어 오비와 하이트의 양강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맥주 소비자가 쉽사리 입맛을 바꾸지 않아 제아무리 롯데라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포춘코리아 3월호는 '롯데의 맥주시장 도전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은 맥주 사업을 숙원사업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맥주 사업은 롯데그룹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아버지에 이어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도 맥주 사업에 대한 야망을 가졌다. 아버지처럼 아들도 간혹 지인에게 맥주 사업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롯데칠성음료와 충주시가 1월 18일 맥주 공장 건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국세청에 주류제조 면허를 신청한 롯데칠성음료는 2015년부터 공장을 건설해 2017년부터 맥주를 생산할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1999년 진로쿠어스 맥주 입찰에 참여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인수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스스로 인수를 포기한 셈이다. 2009년엔 오비맥주 인수전에 나섰지만 인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그러나 맥주 사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롯데칠성음료는 2004년 일본 아사히와 합작해 롯데아사히주류를 만들어 아사히 맥주를 수입해서 판해했다. 롯데가 맥주 생산을 포기했다는 소문도 들렸지만 아사히 맥주 수입ㆍ판매는 맥주 사업에 대한 첫발과 같았다.

아사히 맥주는 판매량이 조금씩 늘더니 2010년 100만 상자를 돌파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일본 아사히 맥주 오키타 히토시 회장을 초대해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취재진에게 "1~~2년 내에 반드시 맥주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대로 롯데그룹은 올해 1월 18일 맥주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롯데칠성음료는 충주시와 맥주 공장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롯데칠성음료는 7,000억원을 들여 충주시 신사업단지 안에 9만 9,000㎡ 규모로 맥주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예정대로라면 2017년엔 충주 공장에서 연간 50만 ㎘ 규모로 맥주를 생산한다.

롯데그룹이 맥주 시장 진출을 선언하자 맥주 업계는 술렁거렸다. 재계 5위 규모인 롯데그룹이 오래 전부터 맥주 시장 진출을 계획해온 터라 상황에 따라 맥주 시장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자본력과 유통망이 강한 롯데가 맥주 시장에서 공룡으로 급성장하면 양강 체제가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협력 관계인 일본 아사히 맥주가 고급 맥주 제조 기술을 전수한다면 천하의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롯데그룹이 맥주 공장을 짓기도 전부터 맥주 시장에 무한 경쟁이 벌어질 거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하이트맥주는 최근 신제품이 소비자에게서 외면을 받아 지난해 오비맥주에게 판매 1위 자리를 내줬다. 신제품 출시와 기존 제품 마케팅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롯데그룹이 맥주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포춘코리아와 인터뷰한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예정대로 맥주 생산 공장이 만들어진다면 2017년부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롯데그룹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위스키 시장에서 15년째 사업을 해왔다. 2009년에 두산주류를 인수한 덕분에 소주 시장에서 유통 노하우도 쌓았다. 오비맥주 인수에 실패한 이후 주춤했지만 맥주 시장 독자 진출을 선언할 역량을 갖췄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이트맥주가 볼 때 롯데그룹이 갖춘 자금력과 유통망, 그리고 아사히 맥주의 제조 비법이 롯데맥주에 집중되면 양강 구도인 맥주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에는 일단 신규 사업에 진출하면 최단기간에 강자로 부상하려는 독특한 기업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롯데그룹이 맥주 시장에서 총력전을 펼친다면 1~2년 내에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롯데맥주의 뒤에 아사히 맥주가 있다는 사실도 기존 업체로선 껄끄럽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아사히맥주와 손잡을 경우 품질에서도 기존 맥주에 뒤지지 않을 수 있다. 롯데가 일본 아사히 맥주와 기술 제휴를 맺고 맥주 시장에 진출한다면 기존 양대 기업을 견제하기에 충분하다"면서 "롯데가 아사히 맥주와 어떤 식으로 제휴를 맺고 어떤 맛을 가진 맥주를 내놓느냐에 따라 시장 안착이 빨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롯데칠성음료와 아사히 맥주가 공동 출자한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ㆍ판매하는 아사히 맥주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해 연 평균 54%씩 판매가 늘었다. 아사히 맥주는 지난해 약 120만 상자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만 팔리던 아사히 맥주는 롯데칠성음료의 유통망을 활용해 최근 판매되는 곳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맥주 시장 진출이 찻잔 속에 태풍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맥주 소비자는 입맛이 까다로워 쉽사리 새로운 맥주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이 막강한 유통망을 갖췄다지만 후발 업체로서 기존 도매 유통망의 벽을 뚫기란 쉽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다. 맥주 시장 진출을 선언한 롯데그룹의 영향력이 미약할 걸로 예상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길들여진 소비자들 입맛을 잡는 건 쉽지 않다. 시장점유율을 1%포인트 올리는 데 최소 300억~40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이 소요된다. 롯데가 만들 맥주가 하이트와 오비를 단기간에 뛰어넘기란 어렵다"고 설명했다. 롯데가 새로 만들 맥주를 출시하기 전에 하이트 맥주와 오비 맥주가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다. 현재 맥주 시장에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 10종류가 자웅을 겨루고 있다. 롯데가 11번째 맥주를 내놓는다고 그걸 소비자가 선택하리란 보장은 없다.

롯데칠성음료가 맥주 시장 진출을 선언한 1월 18일 주가는 129만 2,000원이었다. 3월 1일 현재 주가 125만 6,000원. 종합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맥주 시장 진출이 주가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트레이드증권 박종록 연구원은 "맥주 시장에 본격 진입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결과물을 받아 들기까지 시간도 걸린다. 시장점유율 0% 상태에서 10~20%를 만들려면 대규모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 시장 진출이 롯데칠성음료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롯데그룹은 15년 동안 위스키 사업을 해왔지만 2위와 차이가 큰 만년 3위다. 유통업에선 강자로 군림해왔지만 주류 업계에서 성공하란 보장이 없는 셈이다. 두산주류를 인수해 소주 시장에선 안착했지만 맥주 시장에서 독자 생존한다는 게 쉽진 않다. KTB투자증권 김민정 연구원은 "롯데가 맥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마련한 최고 시나리오는 오비맥주를 싸게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인수합병이 여의치 않았다. 오비맥주가 2009년 KKR에 인수될 당시 몸값이 2조 3,000억원이었는데 지금 시장에 나오면 3조원 가량으로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래서 직접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삼성증권 양일우 애널리스트는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맥주 사업이 음료 사업보다 수익성이 높고 소주 사업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해 긍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뜻이다. 양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우려와 달리 초기 시장 진입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대형마트, 편의점 등 소매유통의 17~20% 점유율을 보유한 롯데그룹 내 유통 계열사를 활용하면 가정용 맥주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유통업계 공룡 롯데가 맥주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주류 업계는 저마다 롯데를 경계하면서도 롯데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반신반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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