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CEO가 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부진(42) 호텔신라 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이자 고(故) 이병철 창업주의 손녀다. 이 사장 위로는 이재용(44) 삼성전자 사장, 아래로는 이서현(39) 제일모직ㆍ제일기획 부사장이 있다.

3남매 중 이 사장은 유일한 '파격 승진'의 주인공이다. 2010년 12월 3일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 때 이 사장은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2009년 1월 호텔신라 전무로 승진한 지 만 2년도 안 돼서 2단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인사 직후 삼성은 "이 사장이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의 수익성 개선 등 사업구조를 고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며 "앞으로 호텔신라의 글로벌 일류화를 추진하고,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 사장과 삼성물산 고문을 겸하면서 시너지효과를 제고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승진 배경을 설명했다.

평범한 학창시절·결혼

대원외고-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인 이부진 사장에게는 고교 시절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삼성에서 이 사장이 다니는 학교에 TV와 에어컨을 새것으로 바꿔줬고, 학생들은 "이부진 덕을 본다"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학생들은 그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이 사장은 소박하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부진 사장은 1995년 2월 삼성복지재단 보육사업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1998년 6월부터 1년간 삼성일본본사 담당 과장으로 일했고, 같은 해 8월에는 평사원이던 임우재씨(현 삼성전기 부사장)와 결혼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오너의 딸이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사장이 지금 지휘봉을 잡고 있는 호텔신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부터. 이 사장은 그해 8월 호텔신라 전사기획 담당 부장으로 입사해 호텔리어가 됐다.

이 사장이 부임한 뒤로 호텔신라는 대대적인 변화의 물결을 맞는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여러 특급 호텔들의 특징을 꼼꼼히 살폈고, 호텔 관련 전문서적도 탐독했다.

일 욕심·승부욕 대단

이 사장은 야무지다.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절대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다. 모 컨설팅회사의 브리핑이 신통치 않자 이 사장은 "열 내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커피도 안 마셨지만 이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일갈했다.

이 사장은 현장 제일주의자다. 사업에 필요한 일이라면 이 사장이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이 사장은 일 욕심이 대단하다. 지고는 못 배기고, 승부욕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사장이 부임한 이후 호텔신라의 성장세는 눈부셨다. 특히 2002년 2,300억 원이던 면세점 매출은 2010년 1조1,000억 원으로 5년 만에 5배 가까이 규모가 늘었다. 또 호텔신라 전체 매출은 2002년 4,200억 원에서 2010년 1조4,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면세점은 매출 기준으로 세계 7위 규모다.

이 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전 롯데쇼핑 사장과 3년간의 혈투 끝에 승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 명품인 루이비통 브랜드를 인천공항 신라면세점에 유치하기 위해 이 사장과 신 전 사장이 직접 나선 터라 승리의 의미는 남달랐다. 신라면세점은 2010년 11월 루이비통을 품에 안았다.

겸직은 계열분리 수순?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이 사장에게 삼성에버랜드 사장과 삼성물산 고문을 겸직하게 한 것을 두고 '전략적인' 해석을 한다. 이는 계열분리의 수순으로 이 사장이 호텔, 식ㆍ음료, 면세점, 유통 등 그룹 내 서비스 부문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런 예상처럼 계열분리가 현실화된다면 이 사장에게는 두 고모가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삼성에서 계열분리된 뒤 회사를 키우는 데 앞장섰다.

2010년 1월 초 이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 관련 전시회에서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더 배워야 해요. 아직 어리니까 내가 손을 잡고 다니는 거예요." 농담 같지만 두 딸의 든든한 배경이 되겠다는 이 회장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회장의 세 자녀 중 능력만 보면 이 사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사장에게는 "아버지의 후광 덕에 승승장구한다"는 탐탁지 않은 시선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호텔신라의 자회사인 '보나비'가 제과업체인 '아티제'를 운영하자 "그룹의 든든한 네트워크에 기대 무임승차했다"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침해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호텔신라가 지난 1월 "아티제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도 이런 지적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사장은 평소 "성장 없는 혁신은 없고, 혁신 없이 성장은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이 혁신과 성장을 통해 진정한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