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부산 사상구 20대 후보 손수조의 도전'초중고 12년 반장'이 최대 경력남동생과 하루 500~1,000명 만나서민 이미지·참신성이 무기'한국판 후쿠다 에리코' 노려

원래 꿈은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길이 '평범한' 직장인. 대학 졸업 후 1년간 서울의 한 홍보대행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돈은 3,000만원.

그러나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 결심을 굳혔다. '역시 돈 버는 일은 내 적성에 안 맞아. 초년 직장인 1년 정도의 연봉이면 도전할 만해. 한 번 해보는 거야.'

'연봉 3,000만 원으로 선거 뽀개기'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손수조(27) 후보가 새누리당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다. 공천이 확정된 손 후보는 오는 4월 11일에 치러지는 제19대 총선을 통해 금배지에 도전한다.

손 후보의 본선 상대는 문재인(59)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문 상임고문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다. 또 나이나 경험으로 보면 손 후보의 아버지(52)뻘이 되고도 남는다. 손 후보는 그러나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필승을 자신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손수조 후보의 당찬 모습이 아름답다"면서 "져도 좋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길 것으로 기대하고 공천했다"며 손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손수조 후보가 부산 지역구에서 야채를 파는 트럭 앞에서 한 주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손 후보가 총선 출마를 위해 손에 쥔 돈은 모두 3,000만원으로, 2008년 18대 총선 때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공식' 평균비용 1억200만 원의 3분의 1도 안 된다.

손 후보는 그러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손 후보는 아침은 집에서 점심은 햄버거나 김밥 등으로 때운다. 남동생(25)이 운전수 겸 수행비서, 사진사 겸 참모 역할을 맡는다.

다리품 그리고 수첩

손 후보에게 선거운동원은 동생 한 명뿐이다. 그렇다고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손 후보는 매일 한 동네씩, 모든 상가를 훑는다.

손 후보는 하루 평균 500~1,000명을 만난다. 2, 3일에 5만원 정도 들어가는 기름값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다리품을 판다. 손 후보는 지역구 행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찾아가 인사한다. 어쩌다 행사에서 운 좋게 간식이라도 먹게 되면 "한끼는 벌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뤼어만
아침 일찍 시작된 선거운동은 밤 늦은 시간에야 마감된다. 파김치가 돼 집에 들어오지만 곧바로 잠자리에 들 수 없다.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과 선거일기를 정리하고 난 새벽 2, 3시는 돼야 비로소 누울 수 있다.

손 후보의 왼손에는 늘 수첩이 쥐어져 있다. 시장 상인, 지역 주민들을 만날 때면 수첩을 펴고 볼펜으로 적기 시작한다. 때로는 걸어가면서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메모하기도 한다.

"저는 사상구의 대표적인 학교인 덕포여중과 주례여고의 학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간 빠지지 않고 반장을 맡으며 동기들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치신인' 손수조가 내세우는 경력이자 출사표다.

왜 손수조인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의 사상구 출격이 확정되자 새누리당은 대항마 찾기에 고심했다. 그런 가운데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조윤형
손수조 후보가 '참신성'을 앞세워 부각됐으나 일부에서는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라는 선거전략이 말이 되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상구 현역으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도 대놓고 못마땅해 했다. 한때 설동근 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의 전략공천이 거론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위원장과 정홍원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은 이심전심으로 손 후보를 사상구에 낙점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달 후보 면접 직후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손 후보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손 후보가 동갑내기인 이준석 비상대책위원과는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발탁 이유라는 해석도 있다. 이 위원은 과학고-하버드대 출신의 엘리트이다 보니 서민들에게 '감동'이 적다는 것이다. 반면 손 후보는 지극히 평범한 이력을 갖고 있다.

손 후보의 발탁을 두고 '정치적인' 분석도 있다. 사상구는 '표면적으로' 보면 전국 246개 지역구 가운데 1개일 뿐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대선 구도와도 직결되는 곳이 사상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호적수로 떠오르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이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당이 오랜 고민 끝에 "굳이 사상구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손 후보가 거물을 잡아준다면 더 바랄 나위 없지만, 설사 진다 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주장이다.

김상현
한정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손 후보는 새누리당이 외치는 쇄신, 서민, 젊음 등의 이미지와 대체로 부합되는 인물"이라고 전제한 뒤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후보에 맞서 거물을 내세워 패한다면 새누리당으로서는 내상이 깊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굳이 판을 키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판 후쿠다 에리코?

새누리당은 지난 1월 13일 손 후보가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친 이후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손 후보가 서민적 이미지, 참신성, 기발함 등 젊은 정치신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덕목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손 후보가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젊은 여성 정치인 후쿠다 에리코(福田衣里子ㆍ32)와 비교되고 있다. 후쿠다는 2009년 8월 일본 중의원 선거 때 제1야당이던 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전 방위상을 잡았다. '거물' 규마는 10선을 노리던 중이었다.

손 후보와 후쿠다는 '외모'도 비슷해 보인다. 손 후보는 키가 155㎝, 후쿠다는 150㎝로 여성 치고도 아담한 체구다. 손 후보는 정계 입문 전 홍보대행사 1년이 직장생활의 전부고, 후쿠다도 빵집 아르바이트가 고작이다.

김영삼
두 사람의 선거운동 방식도 비슷하다. 손 후보는 매일 한 동네씩 훑는 방식을 택했고, 후쿠다도 선거운동기간 차보다는 발로 지역구를 누볐다. 두 사람 다 '뚜벅이 전략'이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두 사람을 닮은꼴로 규정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2009년 일본 선거는 야당이 수구 여당의 독재를 타파한 '혁명'이었고, 후쿠다는 여당을 무너뜨리기 위해 출격한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거대 여당 후보로 나선 손 후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꿈은 이뤄질까

'낙동강 벨트'로 불리는 사상구가 부산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라는 데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손 후보의 공천이 확정된 지난 5일 부산 국제신문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양자 가상대결)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가 54.7%, 손수조 후보가 28.8%를 얻었다. 문 후보는 연령별 지지도에서 20~50대에서 손 후보를 압도했다.

같은 날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도 47.1%의 문 후보가 34.2%에 그친 손 후보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국제신문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간격이 훨씬 좁혀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선거까지는 한 달이 남은 만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사상구는 공단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호남 등 타향 출신 유권자들이 부산 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더구나 최근 들어 반(反) 새누리당 정서가 강해지고 있어 문 후보가 현재의 지지율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로 우세하다.

그렇지만 '예비'라는 꼬리표를 떼고 선거전에 나선 손 후보의 역전 가능성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면 '박근혜 바람'이 불 것이고, 그럴 경우 손 후보가 수직 상승할 거라는 시나리오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손 후보는 씩씩하다. 아니, 씩씩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사상의 딸'로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뿐이다. 손 후보는 지난 6일 새벽 4시13분 자신의 블로그에 3월 5일자 '선거일기'를 올렸다.

"컴퓨터도 과부하라는 게 있고, 도로에도 병목현상이라는 게 있고. 오늘 저는 정말 딱 이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동생이랑 둘이 뛴다'는 의미는 전략팀, 미디어팀, 홍보팀, SNS(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팀, 스케줄 담당, 사진기사, 운전기사, 사무장, 사무원 등을 둘이서 한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앞으로도 밖으로는 계속 동생이랑 둘이서 뛸 테지만, 사무실 내에 이런 부분(미디어 응대, 전화 응대 등)은 이제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꾸벅)"

20대 국회의원 누가 있었나

, 1954년 26세에 국회의원 당선
·도 28세에
세계 최연소기록 19세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가 오는 4ㆍ11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다면 역대 2번째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세우게 된다.

1호는 1954년 만 26세의 나이로 3대 국회에 등원한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26세에 처음으로 배지를 단 뒤 8선 의원이라는 대기록을 남겼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며 꿈에 그리던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1954년 선거 당시 고무신 공장을 운영하던 김 전 대통령의 장인이 사위를 위해 흰 고무신 1만 켤레를 지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선거법에 저촉될 것을 우려했던 김 전 대통령은 고무신을 모두 되돌려 보냈다. 당시 흰 고무신은 최고급 신발이었다.

김 전 대통령에 이어 고 전 의원과 전 의원이 만 28세 금배지 기록을 갖고 있다. 제4대 대선 후보를 지낸 고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조 전 의원은 만 28세이던 1960년 제5대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6선 의원을 지냈다. 조 전 의원의 동생은 7선을 자랑하는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전 의원도 만 28세이던 1963년 제6대 국회에 등원한 것을 시작으로 총 6차례 배지를 달았다. 김 전 의원은 그러나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끝으로 여의도에서 멀어졌다.

최연소 국회의원 '세계기록'은 독일의 안나 (29ㆍ여)이 보유하고 있다. 은 만 19세이던 2002년 녹색당 비례대표로 독일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은 국회의원이 된 뒤 대학에 입학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뿌렸다.

은 10대 초반부터 그린피스 환경보호 지킴이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고, 15세 때 녹색당에 당원으로 가입한 뒤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은 "항상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이것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것을 하나씩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어떤 자리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