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한계를 만날 때 타이어의 능력은 시작된다.'

한국타이어가 새롭게 선보인 광고에 삽입된 문구다. 타이어는 자동차의 나아가는 방향을 잡아주고 위험한 상황에서 급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등 안전한 운행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자동차 운행의 핵심요소가 타이어라면 기업 운영의 핵심요소는 CEO다.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경우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것 모두가 CEO의 역량에 달려있다. 조현식 한국타이어 사장은 그룹의 조타수로서 맡은바 책무를 잘 해내고 있다.

서승화 부회장과 협업

1970년생인 조현식 사장은 홍익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쳤다. 1989년 힐스쿨 포츠타운고, 1995년 시러큐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조 사장은 같은 해 10월 미국 미쯔비시 상사에 입사, 2년 동안 경영 관련 경험을 쌓았다.

조 사장이 한국타이어에 합류한 것은 1997년 6월이었다. 이후 조 사장은 2003년 글로벌 해외영업본부장(상무), 2006년 마케팅본부장(부사장), 2008년 한국지역 본부장(부사장)을 두루 거쳐 2010년 6월 마침내 한국타이어 사장에 오른다.

조 사장이 사장직에 올랐을 때 재계 관계자들은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타이어의 경우 부친인 조양래 회장 시절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 좋은 결과를 내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서승화 부회장 체제로 잘 유지해오던 회사에 갑자기 오너일가가 관여하게 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선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서승화-조현식 체제로 정비된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대부분 전문가들은 당시의 결정이 탁월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경영인의 우산 아래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오랜 기간 경영수업을 받아온 조 사장이 대표이사인 서 부회장과의 협업을 잘 이뤄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동안 글로벌 마케팅 비중을 강화,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도록 이끈 조 사장과 조양래 회장 대신 회사를 이끌어온 서 부회장의 결합으로 한국타이어는 현재 전체 내수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있다.

현장경영… 사내복지 중시

조현식 사장을 사내에서 지켜본 직원들은 그의 경영스타일에 대해 '현장경영'이라는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 중간 관리자들이 올린 보고서만 검토하는 것이 아닌 필요할 경우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말단 직원들까지 직접 접촉하는 등 현장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사장 자신도 평소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현장의 중요성을 피력해왔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부친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공개석상에 나오지 않는 조 사장이지만 직원들과의 소통에는 열심이다. 짬짬이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에 직접 들러 얘기를 나누고 겨울철에는 함께 스키를 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있었던 창립 70주년 행사 때 직원들과 족구시합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내 복지에 열심인 것도 조 사장의 특징이다. 조 사장이 직접 챙긴다는 한국타이어 '동그라미 어린이집'은 지난 2010년 말에 생겼다. 역삼동 회사 본사에서 200m 떨어진 단독주택을 영구임차해 만든 동그라미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본사 고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집 개원 당시 조 사장은 "훌륭한 여직원들이 육아고민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재계 관계자들은 한국타이어가 문을 연 이후 70년간 노사 무분규 전통을 지켜온 배경에도 잘 갖춰진 직원들의 복리후생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조 사장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경복초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4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모터스포츠라는 취미를 공유하며 자주 어울린다고 전한다. 각각 완성차-타이어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두 사람이라 특별한 행사 때마다 서로를 초대하며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권 승계까지 남은 산

사장 승진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서승화 부회장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있는 조현식 사장이지만 후계승계까지는 '지분확보'라는 가장 큰 산이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지닌 여타 그룹사와 달리 모회사인 한국타이어가 지주회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력회사가 지주회사인만큼 지분승계 과정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오너지분이 높은 비상장사 활용 방법이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재 조 사장이 지닌 5.79%의 지분을 늘리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조 사장의 보유지분이 절대량뿐만 아닌 상대적으로도 적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타이어의 최대주주는 조양래 회장으로 15.99%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고, 두번째로 많은 지분을 지니고 있는 것은 조 사장이 아닌 동생 조현범 사장이다. 조 사장의 보유지분은 동생 조현범 사장의 7.10%에 크게 못 미친다. 그 밖에 장녀 조희경 씨와 차녀 조희원 씨가 각각 2.72%, 3.57%의 지분을 지니고 있다.

조현범 사장의 배경과 만만찮은 경영능력도 조현식 사장에게는 부담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2001년 광고홍보팀장, 2004년 마케팅부본부장(상무), 2006년 경영기획본부장(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말 사장직함을 달았다. 기획부터 착공까지 인도네시아 신공장 창설의 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진두지휘 하는 등 그룹 내외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형제가 나란히 부사장 직함을 달고 있을 당시 조현식 사장이 맡고 있던 마케팅본부의 위상이 조현범 부사장의 전략기획본부보다 떨어진다는 시각에서 갖은 추측을 하기도 했다. 2008년 조현범 사장이 재벌가 2~3세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대권승계의 무게추가 조현식 사장에게 기우는 듯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리되고 지난해 말 사장이라는 동일 출발선상에 놓이며 승부는 다시 알 수 없게 됐다.

지난해 글로벌매출 껑충

지난해 조현식 사장은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타이어의 2011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8.8% 감소했지만 글로벌 매출이 6조4,844억원으로 20.9%나 증가했다. 해외 유명 완성차 브랜드에 공급되는 신차용 초고성능 타이어 판매가 전년대비 92%나 증가하는 등 해외 시장에서 초고성능 타이어 매출 비중이 높아졌고 국내에서도 신차용 타이어와 교체용 타이어 부문이 고르게 성장했다.

굳건히 2위 자리를 고수하던 금호타이어가 극심한 노사갈등과 모그룹의 재정난으로 2009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것도 한국타이어에는 호재다. 50%가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며 국내 1위 자리를 수월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2012년 11.5% 증가한 7조2,000억원의 매출, 44.5% 증가한 8,200억원의 영업이익이라는 공격적인 목표액을 제시했다. 중국, 중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타이어인지라 달성 가능성은 충분하다.

194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타이어 전문기업 한국타이어는 전 세계 186개국에 타이어를 수출하며 매출액 기준 세계 7위, 생산량 기준 5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 3세 경영시대에 접어든 한국타이어가 조 사장이라는 바퀴를 달고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