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싸움으로 비밀까지 누설될까 우려

이건희 회장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고 이 회장의 차녀 이숙희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낸 차명재산 분할 청구소송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이 전 회장과 이숙희씨 측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는 지난 15일 "법원에 명의로 실명 전환된 주식과 관련한 증거자료 조사를 신청했다"며 "이는 소송대상 범위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화우 측에 따르면 앞으로 두 사람의 몫인 3조 원대의 주식 전체는 물론이고, 법원의 증거 조사로 드러나는 새로운 재산에 대해서도 소송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두 사람은 소장에서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한 2조3,000억 원, 7,000억 원대의 차명재산 가운데 각각 7,100억 원과 1,981억 원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가의 뒤늦은 재산 다툼이 어떻게 마무리될지에 대해 온갖 분석과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우선 이 전 회장이 별안간 왜 을 상대로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맹희 전 회장
삼성그룹은 공식적으로 소송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미 삼성이 소송 전부터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고 여러 차례 협상을 했지만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양측 모두 전면전으로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우세하다. 형제들이 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삼성 철저한 반격 준비

삼성은 이 전 회장과 이숙희씨가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가족 간의 합의로 조용히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초반에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성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은 상속분쟁이 확전될 경우 기업 이미지 손실을 우려,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렸지만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자 이제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소송이 7,100억 원과 1,900억 원대의 거액이 걸린 상속소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은 적극적이고 치밀한 방어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그룹 법무팀을 통해 소송에 맞설 변호사 선임 등 본격적인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삼성은 최근 의 지시로 그룹 법무팀 등이 소송에 대한 법률적인 검토 수준을 넘어 외부 변호사 선임 등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카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몇 번의 공방이 오간 뒤에 결국 극적 타협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은 "25년 전에 상속문제는 끝났고, 앞으로 더 이상의 논쟁은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에 따라 삼성에 대한 세간의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차제에 문제를 확실히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국내 대형 로펌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최근 그룹으로 복귀한 이종왕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실장)도 소송에 관여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소송을 담당할 로펌으로는 '광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광장'은 애플을 상대한 로펌이고, 지금까지 삼성과 함께 일해오면서 능력이 검증됐다는 게 삼성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광장'은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때도 삼성중공업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소송 움직이는 배후 있나

삼성은 이 전 회장이 상속회복청구권의 소멸 시효를 감안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2008년 4월에 삼성 특검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차명주식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에 3년이라는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것이 삼성 측의 반론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작년 6월 측으로부터 받은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이라는 문서를 통해 차명재산의 존재를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회장 측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일부에서는 이번 송사와 관련, '사건'을 움직이는 실체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전 회장은 지금까지 수면 위로 거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래 전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지금까지 유산 문제와 관련해 한번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는데 이제 와 새삼스럽게 문제를 제기할 만한 이유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이번 소송의 실질적인 주체는 이 전 회장과 이숙희씨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재계의 한 인사는 "소송 뒤에 이재현 CJ 회장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며 "사전에 변호사와 접촉해 소송 문제를 상의한 것은 이 전 회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이재현 회장 측 사람이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처음 소송을 냈을 때도 비슷한 추측이 있었다"며 "베이징 대저택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가 새삼 소송을 건 이유가 석연치 않다. 적지 않은 나이이고 직접 운영하는 기업체도 없는데 왜 이제와 소송을 내겠나. 분명히 누군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CJ가 최근 경영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소송의 한 이유로 꼽힌다. CJ는 홈쇼핑이나 대형 마트 등에 납품되는 식품 사업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신규사업들은 불안해 보인다. CJ가 야심차게 시작한 CJ E&M 주가가 한순간 반토막난 것이 좋은 예다.

이숙희씨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최근 이숙희씨의 남편인 구자학 회장의 아워홈 경영사정이 썩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병철 회장을 기준으로 3세 경영자들이 이번 소송의 배후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이 제기한 소송은 고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 중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 발표시 나온 내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 제한된 정보를 통해 파악한 일부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화우 측이 법원의 증거조사를 요청했는데, 이를 통해 이 증자나 이익배당을 통해 추가로 챙긴 돈이 있는지, 특검 수사 전에 현금화한 주식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 차명재산의 전모를 밝혀내 소송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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