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김 택 진 대표대학때부터 두각 1997년 자본금 1억 창업첫작품 '리니지' 돌풍 전세계 70개국 진출'천재' 윤송이 부사장과 결혼으로 세간의 화제최근 주춤한 사업 스마트기기로 재도약 기대

엔씨소프트 김 택 진 대표
'10대 주식부호 중 유일한 벤처사업가'

지난 9일 재계전문사이트 재벌닷컴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국 증시 사상 최초로 10조원대의 주식거부가 됐다고 발표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많은 지분을 지니고 있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것이 이 회장을 10조 거부로 만들어주었다.

이날 세간의 입소문을 탄 또 한 명의 주식부호는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였다. 나머지 부호들이 대부분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지금에 이른 재계 2~3세였던데 반해 김 대표는 젊은 나이에 벤처기업을 차려 자신의 힘으로 신흥 부호 대열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벤처 1세대로 온라인게임 돌풍 주역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대일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85학번)을 졸업했다. 김 대표는 서울대 재학 중인 1989년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함께 국내 대표 문서편집용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을 개발, 소프트개발자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한글타자 연습 소프트웨어 '한메타자교사'를 개발한 것도 김 대표였다. 대학 졸업 후 병역특례연구원으로 입사한 현대전자에서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인 '아미넷'을 만들며 경험을 쌓은 김 대표는 서울대 박사학위를 밟던 도중 1997년 자본금 1억원을 들고 엔씨소프트를 설립, 동료 16명과 함께 온라인게임 시장에 뛰어들게 됐다.

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
창업 이듬해인 1998년 9월, 김 대표가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 '리니지'였다. 리니지의 회원 수는 유료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3개월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고 2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700만명을 넘어섰다. 당시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초고속통신망과 급속도로 확산되는 PC방 붐이 리니지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리니지 돌풍은 고스란히 엔씨소프트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1997년 창업 첫해 기록한 5억원의 매출은 3년 뒤인 2000년 무려 570억원으로 급증했다. 결국 2010년 엔씨소프트는 코스닥 시장에 화려하게 상장하며 벤처 열풍의 맥을 이었다. 엔씨소프트는 대만, 태국, 일본, 유럽, 미국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 리니지 돌풍을 이어갔다. 2010년 리니지는 온라인게임 최초로 누적매출 2조원을 돌파, 현재까지도 연간 매출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후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온라인게임계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이 세 게임은 현재까지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게임정보사이트 게임노트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은 지난주(2012.03.05~11) 기준 10위권 안에 랭크돼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30여개국, 리니지2 70여개국, 아이온 60여개국 등 전세계 70여국에서 한국의 게임을 알리고 있다.

외길 고집하는 현역 개발자

김택진 대표의 경영스타일은 '꾸준함' 한 마디로 정의내려진다. 개발자 출신의 김 대표는 지난해 6,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엔씨소프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직 프로그래머로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게임의 출시를 앞두고 있을 때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에서 게임을 점검하며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하다. 평소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는 계속 일에 매진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을 때 나온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엔씨소프트 리니지
김 대표가 지닌 개발자로서의 애정 때문일까? 엔씨소프트는 다양한 게임들을 론칭하는 대신 기존의 게임들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4~5년 동안 하나의 게임 개발에 매진해 대작을 탄생시킨 다음에는 신작을 출시할 때와 맞먹는 강도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시, 이용자들의 발을 묶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온ㆍ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 게임에 반영하는 점도 큰 매력이다.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이라는 외길을 고집하는 것도 김 대표의 특징이다. 이전에 나온 게임들은 물론이거니와 올해 상반기 서비스를 개시할 '블레이드앤소울'이나 지난해 열린 '지스타 2011'에서 전격 공개한 '리니지이터널'의 장르 또한 MMORPG다. 게임들의 업데이트가 지속되는 데다가 각 게임의 장르가 겹치며 생기는 시너지 효과로 전체적인 완성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평소 생활이 검소한 김 대표가 게임 개발 이외에 집중하는 취미는 독서다. 오래전부터 일주일에 두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자신이 감명받은 어구를 트위터에 올려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여가 때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해진다.

최대 라이벌 김정주 회장

김택진 대표의 최대 라이벌은 김정주 NXC(옛 넥슨홀딩스) 회장이다. 김 대표와 김 회장은 서울대 1년 선후배 출신에 게임으로 성공한 주식부호로 언론에 라이벌로 자주 묘사된다.

NC 다이노스의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지난해 9월 고 최동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최흥수기자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김 회장도 한국 벤처기업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린다. 김 회장은 1994년 송재경 XL게임즈 대표와 함께 세계 최초 MMORPG인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다.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을 연 바람의 나라는 큰 성공을 거두며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이후 김 회장은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의 히트게임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온라인게임 시장의 대부로 자리잡았다.

김 대표와 김 회장은 둘 다 빠른 의사결정과 정확한 판단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경영스타일은 정반대다. 개발자로 직접 참여하며 직원들과 함께 신작 개발에 매달리는 김 대표와 달리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 무용 등을 배우거나 카이스트에서 강의하는 등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스타일처럼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사업방식도 사뭇 다르다. 엔씨소프트가 소수의 자체 개발작 위주로 승부를 보는 데 반해 넥슨은 M&A를 통한 성장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김 회장의 탁월한 안목으로 넥슨은 위젯(메이플스토리), 네오플(던전앤파이터), 게임하이(서든어택) 등 유망 중소개발사들을 연달아 인수하며 국내 최대의 게임업체로 성장했다. MMORPG를 고수하는 엔씨소프트와 달리 캐주얼, 스포츠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것도 넥슨의 특징이다. 현재 넥슨은 코스닥이 아닌 일본 증시에 상장돼있다.

동반자이자 사업파트너 윤송이 부사장

2008년 6월 인터넷 공간은 김택진 대표와 의 결혼 소식으로 들끓었다. 두 사람이 2007년 11월 경기도의 한 전원주택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2004년 11월 전 부인과 이혼하고 나서 300억원대의 주식을 재산분할한 김 대표가 새로운 삶의 동반자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거리였지만 그 상대가 '천재소녀'로 불리던 윤 부사장이었다는 사실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
서울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수석졸업,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SK텔레콤의 상무자리에 올랐던 윤 부사장은 이미 유명인사였다. 김 대표는 2004년 윤 부사장이 엔씨소프트의 사외이사에 선임된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결혼 이후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의 역할을 맡은 윤 부사장과 김 대표는 요즘도 함께 출근을 한다는 후문이다.

윤 부사장은 김 대표의 내조자로서 역할뿐만이 아닌 사업의 주요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달 엔씨소프트가 야구게임 '프로야구 매니저'로 유명한 엔트리브소프트를 인수한 것도 대주주였던 SK텔레콤 출신인 윤 부사장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MMORPG에만 집중해 온 엔씨소프트로서는 SK텔레콤과의 공조를 통해 스마트폰 게임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이번 결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를 시작으로 결혼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윤 부사장의 경영행보가 이어지리라 예상하고 있다. 윤 부사장은 엔씨소프트에 발을 들여놓은 뒤 게임포털 '플레이엔씨', 인터넷서비스 '오픈마루' 등의 사업에 참여했지만 큰 결과를 내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가 게임 개발에 주력할 수 있도록 윤 부사장이 전체적인 사업 전략을 총괄한다면 엔씨소프트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업계 4위로 추락, 협업으로 다시 날까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의 성공으로 게임업계의 대부로 올라선 김택진 대표지만 엔씨소프트의 최근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2007년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던 엔씨소프트는 이듬해 넥슨에 자리를 내줬고 지난해에는 네오위즈게임즈와 NHN한게임에도 밀려났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6,089억원의 매출을 기록, 넥슨(1조2,117억원), 네오위즈게임즈(6,678억원), NHN한게임(6,407억원)에 이어 업계 4위로 추락했다.

엔씨소프트가 1위였던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의 매출증가율 역시 빅4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엔씨소프트의 최근 5년간 매출증가율은 84.8%로 455.8%의 네오위즈게임즈, 358.7%의 넥슨, 164.4%의 NHN한게임에 비해 큰 폭으로 낮은 수준이다. 영업이익증가율 또한 172.4%로 최하위였다. 사업부문별 영업손익 분류가 힘든 NHN한게임을 제외하고 같은 기간 넥슨은 488.8%, 네오위즈게임즈는 300.8% 성장했다.

엔씨소프트의 실적 감소는 기존 게임의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신작 '블레이드앤소울'의 출시가 지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체 개발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엔씨소프트의 특성상 신작이 나오지 않을 경우 성장세가 주춤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올해 초 시무식에서 김 대표는 3년 연속 '협업'을 기업운영의 핵심단어로 제시했다. 김 대표는 "현재는 위기"라며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코끼리 떼처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세계 시장에서 핵심 역량을 높여나가는 데 지속적인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김 대표가 엔씨소프트라는 코끼리 떼를 몰고 찾는 오아시스에 대해 가깝게는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블레이드앤소울'로 멀게는 '스마트시대에 열릴 MMORPG의 재도약'이라고 보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블레이드앤소울은 리니지와 아이온을 잇는 대작게임으로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설 블레이드앤소울은 중국 1위 게임사인 텐센트를 통해 서비스될 예정으로 로열티 매출만 약 55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사양이 MMORPG를 즐기기엔 부족하지만 2~3년 안에는 스마트기기들을 통해 엔씨소프트의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김 대표에게는 호재다. 스마트기기 시대엔 MMORPG의 명가로서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자수성가한 1세대 벤처기업가로 10대 주식부호에까지 치달은 김택진 사장이 앞으로 어떠한 도전과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낼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야구인으로 변신한 김택진
지난해 9월 고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빈소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렸을 때부터의 영웅이었던 최 감독을 자신이 구단주를 맡은 한국프로야구 제9구단 'NC 다이노스'에 영입하려 했던 염원이 무산된 것으로 인한 통한의 눈물이었다.

김 대표가 NC 다이노스 창단 추진 계획을 밝혔을 때 많은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온라인게임으로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을 컴퓨터 앞에 잡아두었던 김 대표가 현실에서의 스포츠 구단을 추진하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KBO에 제9구단 창단신청서를 낸 김 대표는 경남 창원을 연고로 NC 다이노스를 출범, 같은 해 3월 창단식을 열었다. 김 대표가 야구의 꿈을 꾸었던 것은 어렸을 때 접했던 일본 스포츠 만화 '거인의 별'과 우상이었던 최 감독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진에서 열린 첫 자체 연습경기에서 시구하는 것을 지켜본 이들은 김 대표의 투구폼도 최 감독과 흡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대표의 야구 사랑은 과 결혼 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한 공개석상이 NC 다이노스의 연고지 창원의 한 도서관에서 열린 강연장이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당시 두 사람의 공동강연 주제도 '과학이 숨어있는 스포츠, 야구'였다.

김 대표는 새롭게 시작하는 야구에 자신의 주종목인 IT를 접목할 예정이다. 기본적으로 구단 운영에서 홍보, 관리까지 IT와 연계해 혁신을 이루고 게임에도 야구와 관련된 콘텐츠를 더욱 풍성히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최근 국내 최초 프로야구 매니지먼트 게임인 '프로야구 매니저'를 개발ㆍ서비스하고 있는 엔트리브소프트를 인수, NC 다이노스와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