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의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면 적어도 꼭 한 번씩은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그룹의 장남이면서도 참치잡이배를 타며 목숨이 위태로운 경험을 했던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다. 'Why not?'(왜 안 되죠?) 을 입에 달고 살며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김 부회장이 식품제조업계의 장자에서 금융계의 왕자로 거듭나고 있다.

부친인 김재철 회장이 동원그룹의 창업주인만큼 김 부회장은 엄밀히 말해 2세 CEO다. 그러나 여타 그룹의 3세들과 비슷한 연배로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고 있어 본 편에 소개해본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1963년에 태어난 김남구 부회장은 경성고(1982년 졸업)를 거쳐 1987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김 부회장이 선택한 첫 행보는 놀랍게도 참치잡이배였다. 동원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김 부회장은 원양어선에 올라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그물을 던져 참치를 잡고 갑판 청소를 하는 등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하루 16시간의 중노동을 했다. "경영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아버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뜻과 자신의 결단이 빚어낸 선택이었다.

6개월간의 혹독한 경험 이후에도 동원산업에서 4년간 평직원으로 근무한 김 부회장은 1991년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며 금융업계에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여의도 본사가 아닌 명동의 코스모지점이었고 직급도 대리였다. 이후 채권영업, 기획실 등을 거친 김 부회장은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계 다크호스로 성장

김남구 부회장은 오너일가이면서도 전문경영인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임원 자리에 오르는 여타 재벌가 자제들과는 달리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며 18년 동안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에서 실전 업무를 익혀온 까닭이다. 치열한 금융업계에서 그동안 쌓아올린 성과도 김 부회장에 대한 호평을 뒷받침하고 있다.

2004년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가장 먼저 "한국투자증권이나 대한투자증권 중 한 곳을 인수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후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는데 성공한 김 부회장은 오너가 자제로서 자연스레 받게 되는 경영능력에 대한 의혹의 시선들을 깔끔히 씻어냈다.

2005년 인수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중소형 규모였던 동원증권보다 훨씬 덩치가 컸다. 식음료제조업에 강했던 동원그룹이 규모가 큰 금융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세간의 우려도 컸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결국 5,426억원으로 인수에 성공, 동원증권보다 시가총액이 두 배나 많은 거대 한국투자금융지주를 탄생시키며 업계 수위를 다투게 됐다. 현재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 25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금융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Why not?

김남구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는 바로 'Why not?'(왜 안 되죠?) 이다. 참치잡이배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이후 자연스레 터득된 끈기와 도전정신을 바탕에 깔고 전형적인 야전스타일로 회사를 꾸려간다는 설명이다.

182cm의 거구인데다가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뚝심 탓에 김 부회장의 별명은 '곰'이다. 그러나 다소 둔한듯한 '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김 부회장은 독서와 공부를 즐겨하는 CEO로도 유명하다. 월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는 부친 김재철 회장의 철저한 독서교육 덕분이다. 김 회장은 두 아들에게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김 회장의 교육이 빛을 받은 것일까? 김 부회장은 요즘도 주말이면 독서와 사색에 시간을 투자하며 경영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후문이다.

그룹 금융계열 장악

김재철 회장은 자녀들에 대한 경영권과 소유권 이양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한 상태다. 김 회장은 부인인 고 조덕희 여사와 사이에서 2남 2녀를 뒀는데 이중 김남구 부회장, 김남정 사장이 경영에 참가하고 있다. 동원그룹은 2004년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 금융계열은 김 부회장이 식품계열은 김 사장이 각각 담당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이후 현재의 한국투자금융지주로 회사를 키우며 사실상 동원그룹의 금융계열에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지분 20.23%를 보유하고 있다. 부친인 김 회장이 1.09%, 셋째 삼촌인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회장이 0.76%로 각각 2, 3대 주주를 맡고 있다. 지주사 아래로는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운용지주, 한국투자저축은행 등이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20% 안팎의 김 부회장 보유 지분율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재 김 부회장이 보유한 20.23%의 지분에 특수 관계인들의 지분을 모두 더해도 22.95%에 불과한 반면 외국계 헤지펀드나 자산운용가가 가진 지분을 모두 더하면 40%를 훌쩍 넘어선다. 아직까지는 경영권이 위협받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할지라도 향후 기업가치가 상승하면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꾸준한 지분확보를 통한 경영권 방어가 요구되는 까닭이다.

최고의 성과·원대한 계획

김남구 부회장은 지난해 금융계 최고의 성과를 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2011년 1~3분기 기준(2011년 4월 1일~12월 31일) 2조2,318억원의 영업수익, 2,593억원의 영업이익, 2,31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이다. 주력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1,79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자산운용업 부문인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각각 311억원, 2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김 부회장의 성적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로 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0% 이상 하락했음에도 유독 한국투자금융지주만큼은 견실한 실적을 올렸다"며 "특히 한국투자증권은 여타 증권사처럼 위탁수수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산관리 수수료, 증권중개 수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수료 수입을 거두는 안정적인 구조로 자리잡았다"라고 전했다.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확보한 탓에 시장의 평가도 높아졌다. 2007년 이후 신용평가등급 AA-에 머물러 있던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에서 AA0를 받았다.

김 부회장은 2020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 20% 성장, 시가총액 20조원 달성 등의 목표를 세웠다. 현재 시가총액이 2조4,000억원 내외임을 감안한다면 까마득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껏 김 부회장이 보여준 뚝심, 추진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것이 금융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식음료제조업계의 장자에서 금융계의 다크호스로 변모한 김 부회장의 앞길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