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SK하이닉스가 공식 출범했다. 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와 인수계약을 맺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만이고,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던 2001년부터 11년 만이다. 내수용기업이라는 오명을 씻게 해줄 복덩이 SK하이닉스에 대한 최태원 SK 회장의 애정은 매우 깊은 것으로 보인다. 적자폭 확대에도 불구, 격려금을 미리 뿌린 점이나 최 회장이 SK하이닉스까지 수시로 찾아가 현장경영을 하는 것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임직원에 격려금 팍팍!

최근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을 함박웃음 짓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SK그룹과 합병절차를 완료, 새롭게 출범한 SK하이닉스가 임직원들에게 900억원에 가까운 격려금을 뿌렸기 때문이다. 1만9,000명 가량의 전체 임직원 수를 감안한다면 1인당 평균 470만원 가량을 챙긴 셈이다. 큰 액수는 아닐지라도 임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기에는 충분한 금액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의 격려금 지급으로 SK하이닉스의 적자폭이 확대됐다는 점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지난 1분기 1,500억원 내외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격려금까지 합친다면 적자폭은 2,000억원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과거에 SK브로드밴드 등 인수된 기업들의 임직원들에게도 격려금이 지급됐음을 감안한다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굳이 적자임에 분명한 1분기에 지급해야 했냐는 점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다가올 2분기 1,000억원이 넘는 흑자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6일 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앞 호프집에서 직원들과 격의 없는 '맥주 소통'에 나선 뒤 '인증샷'을 찍고 있다.
적자폭 확대 우려에도 불구, 합병절차 완료 직후 바로 격려금을 뿌린 것에 대해 그룹 내부에서는 "SK하이닉스를 향한 최태원 회장의 관심이 그만큼 깊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올인

현재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에 올인하고 있다. 이는 최 회장의 근황을 잠깐만 살펴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룹 계열사 자금 횡령 혐의로 기소 중인 최 회장은 연이은 공판 가운데서도 SK하이닉스의 현장경영을 놓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경기도 이천 하이닉스 본사와 서울 사무소, 청주 사업장 등 총 세 곳에 개인사무실을 마련했다. 현장에서 직접 경영을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실제로 최 회장은 현장 임직원들과 수시로 만나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최 회장이 공동대표로 선임된 후 벌써 몇 번째 다녀갔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하이닉스 본사에 내려와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의 SK하이닉스 끌어안기는 그룹 차원의 노력으로도 이어졌다. SK그룹은 최 회장 직속 조직으로 'SK매니지먼트시스템(SKMS)실'과 '미래비전실'을 신설했다. SKMS실은 SK그룹의 문화를 SK하이닉스에 전파, 유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미래비전실에서는 반도체 사업의 장기 경영비전을 준비할 예정이다. 빠른 시일 안에 SK계열사로 적응, 실적을 내주길 기대한다고 읽힌다.

최 회장의 깊은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5월로 예정된 임금단체협상의 결과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주인 없는 신세로 오랫동안 떠돌며 실적에 걸맞는 임금인상을 하지 못한 SK하이닉스 임직원들로서는 최 회장의 주머니가 다시 한 번 통 크게 열리기만을 기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룹체질 개선 노림수

갈수록 깊어지는 최태원 회장의 SK하이닉스 사랑에 대해 재계는 SK그룹의 사업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최 회장의 노림수로 해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보통신 및 에너지ㆍ화학을 양 축으로 하는 내수중심의 기업이었다면 이제 제3의 성장축인 SK하이닉스를 추가, 수출지향형 기업으로 도약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출범식에 참석한 최 회장은 "SK텔레콤과 하이닉스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SK텔레콤은 HP, 델 등의 업체에서 제품을 공급받는 생태계의 최상위에 위치한 만큼 반도체 제조사인 하이닉스와 충분히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의 말처럼 SK하이닉스를 품에 안은 SK그룹은 향후 ICT 융합 트렌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꾀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SK하이닉스 올인에 대해 최근 횡령혐의로 기소되면서 손상된 자신과 그룹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실적호전을 통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룹 총수의 기소ㆍ공판에도 올해 주주총회가 무사히 끝날 수 있었던 데는 하이닉스 인수를 통한 실적향상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감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며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상 실적이 뒷받침되면 다른 문제는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라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