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판도 가르는 요충지 분석

정세균
4ㆍ11 총선을 10여 일 앞두고 전국 246개 지역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열전이 한창이다. 올해는 20년 만에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잇달아 치러지는 데다 총선 결과에 따라 대선 지형이 달라질 수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총선전이 치열하다. 특히 몇몇 지역은 대선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총선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총선(4월 11일)에서 대선(12월 19일)까지는 약 8개월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대권을 향한 잠룡(潛龍)들의 발걸음은 총선을 기점으로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총선에 나서는 예비주자들은 기본적으로 금배지를 달아야 대선 가도에서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 불출마하는 주자들은 측근들에게라도 배지를 달아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수월하다. 만일 반대의 결과를 얻는다면 밑그림 자체가 틀어지게 된다. 경우에 따라 조기 낙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총선은 대선의 예선전이자 1차 관문이다.

대선 지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국의 요충지를 분석했다.

'정치 1번지' 도전한

문재인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는 총선의 상징성과 더불어 출마 후보들의 비중으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 지역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6선의 홍사덕 후보가 나섰고, 야권에서는 대선 예비주자이자 민주당 대표를 지낸 민주통합당 후보가 출마했다. 4선 관록이 돋보이는 후보는 본래 지역구인 전북 무주ㆍ진안ㆍ장수를 떠나 서울 종로에 둥지를 틀었다.

종로는 고(故) 윤보선 전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종로에서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종로에서 야당의 승리는 199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정 후보가 종로에서 승리한다면 친노(친 노무현) 그룹 등 당내 여러 정파들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터라 대선가도에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대항마'로 나선 홍사덕 후보의 승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자존심과도 직결된다. 조윤선 의원,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을 배제한 채 전략공천한 홍 후보가 패한다면 박 위원장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정몽준
지난 21일 SBS-TNS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홍 후보가 33.9%, 정 후보가 33.4%로 박빙이었다.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도 두 후보 간의 격차는 2% 안팎이었을 만큼 피말리는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1차 고비 맞은

부산 사상구는 친노 그룹의 대표선수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27세의 여성 새내기 정치인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와의 대결로 주목받고 있다.

후보는 실물정치에 데뷔하자마자 단숨에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라 총선 관문을 통과하면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 상대인 손수조 후보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비록 27세의 정치 신인이지만 참신성을 무기로 박근혜 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정동영
선거가 '문(재인)-박(근혜)'대결 양상을 띤다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지난 20일 국민일보-GH코리아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51.5%, 손 후보가 40%를 얻었다. 여전히 문 후보가 앞서고는 있지만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문 후보에게 '1차 고비'인 총선은 완승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가정이지만 패하거나 이겨도 신승(辛勝)한다면 무척 난감해진다. "총선도 안 되는데 대선이 되겠냐"는 비판이 쏟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박(非朴) 대표 노리는

서울 동작을 지역은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6선의 후보가 여권의 잠룡으로 비상할 수 있느냐가 이번 총선에 달렸다.

이재오
정 후보의 상대는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민주통합당 의원.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인 정 의원과 '현대 맨'의 대결이 펼쳐지는 셈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긴 하지만 정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8일 매일경제-한길리서치 공동 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36.3%, 이 후보는 33.3%로 나타났다.

정 후보는 공천을 계기로 박근혜 위원장과 완전히 등을 돌렸다. 박 위원장을 공격하면서 비박 진영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계안 후보 측은 "정 후보가 중앙 정치에 치중해온데 반해 오래전부터 바닥표를 다져왔다"며 총선 승리에 기대를 나타냈다.

각 당 자체조사에서 새누리당은 동작 을을'우세' 지역으로 분류한 반면, 민주통합당은 '백중' 지역으로 평가했다.

손학규
마지막 승부수 던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화두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가 격돌하는 서울 강남 을도 초미의 관심지역이다.

17대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정 후보는 4ㆍ11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 후보는 지난해 연말 FTA 정국 때 '좌 클릭'을 하며 노동계에 손을 내밀었으나 큰 소득이 없었다. 또 총선을 앞두고는 부산 등지를 염두에 두다 어렵사리 강남 을에 터를 잡았다.

정 후보의 본선 경쟁자는 'FTA 전도사'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김 전 본부장은 새누리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반(反) FTA의 대표 격인 정 후보와 찬(贊) FTA의 상징인 김 후보의 2라운드인 셈이다.

지난 21일 SBS-TNS 공동 여론조사 결과 김 후보는 40.5%, 정 후보는 30%를 얻었다. 다른 조사에서도 김 후보는 정 후보를 10% 정도 리드하고 있다. 김 후보는 FTA 논란보다 거주, 주택 문제 등 '민생'을 앞세워 여론 우위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노회찬
반면 정 후보 측은 "뒤집을 수 있다"며 역전을 자신하고 있다. 대선주자 인지도에다 강남에서도 민주통합당 지지층이 늘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야당의 사지(死地)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정 후보의 대선 운명이 총선에 달렸다.

친이계의 보루

친이계 좌장격인 새누리당 후보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 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친박(친 박근혜)의 전면 등장으로 친이계가 거의 무너진 상황에서 이 후보의 총선 결과에 따라 당 역학구도는 물론, 대선지형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승리해 친이계의 존속, 또는 부활로 이어지면 친박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 대선지형 역시 박근혜 위원장 '나홀로 체제'에서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 정운찬 전 총리 등 비박 인사들이 대선에 나서는데 이 후보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후보는 본선에서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진보통합당) 등과 싸워야 한다. 이 후보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기도 했으나 실제 여론조사에서는 천 전 대변인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찬
지난 26일 중앙일보-한국갤럽-엠브레인 여론조사에서는 후보가 39.1%로 천호선 후보(24.2%)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난 22~23일 MBN-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지지율 30.8% 로 27.0% 지지율을 기록한 천호선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지난 20일 국민일보-GH코리아 공동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가 44.9%, 천 전 대변인이 44.2%를 기록했다. 야권 단일화 과정 등으로 인해 천 전 대변인이 늦게 출발한 점을 감안하면 박빙승부다. 이 후보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분신들 살리려는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셨다. 자신의 측근들 중 상당수가 공천에서 탈락하자 안색이 변했다. 손 고문은 총선에서 어떤 직함도 맡지 않고 백의종군하기로 했다. 공천에서 전횡을 일삼은 친노 그룹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다.

손 고문은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분신들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손 고문의 주요 측근으로는 김병욱 전 정책특보(분당 을), 이찬열 의원(수원 갑), 송두영 전 부대변인(덕양 을) 등을 꼽을 수 있다.

김 전 정책특보를 돕기 위해 분당에서 출근인사를 해온 손 고문은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짐에 따라 측근들뿐 아니라 전국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심대평
각 당 자체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경기 분당 을을 '우세'지역으로, 경기 수원 갑과 고양 덕양 을 지역은 '백중'으로 평가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분당 을은 '열세'로, 수원 갑과 덕양 을 지역은 '우세'로 분석했다.

진보당의 간판들은

통합진보당 간판들의 향배도 주목 대상이다. 지역구에 나서는 심상정 공동대표, 대변인, 비례대표인 유시민 공동대표 등이다. 이들이 총선 관문을 넘을 경우 야권 대선주자들의 한 축을 형성할 수 있다.

심상정 후보는 경기 고양 덕양 갑에서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와 재대결을 펼친다. 심 후보는 18대 때는 석패했지만, 이번에는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는 만큼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지난 20일 국민일보-GH코리아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심 후보 48.3%, 손 후보 39.7%였다. 각 당 자체 조사에서도 심 후보가 '백중 우세'로 분석됐다.

후보도 서울 노원 병에서 설욕을 벼르고 있다. 18대 때 이곳에서 당선됐던 홍정욱 새누리당 의원이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허준영 전 경찰청장 등이 노 후보의 적수로 나섰다.

지역에 중산ㆍ서민층이 많고 노 후보가 바닥을 다져온 이유로 현재까지 허 후보에 앞서고 있다는 게 양 당의 공통된 분석이다.

유시민 전 의원은 비례대표 12번에 배치됐다. 당선 안정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유 전 의원은 동료들의 당선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자존심 건 여·야 "세종시에선 질 수 없다"

2강 체제에 신진 추격 양상

세종특별자치시는 4ㆍ11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장을 뽑는다. 이 지역은 기초자치단체 한 곳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을 1명씩 뽑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세종시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총선 이후 정국 주도권과 대선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 올인하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새누리당은 세종시 사수에 공을 들였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섰고, 민주통합당에서는 한명숙 대표 등 지도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또 자유선진당에서도 '간판'인 의원의 당선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신진 충남대 교수와 최민호 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민주통합당에서는 전 국무총리와 초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을 지낸 이춘희 전 건설교통부 차관, 자유선진당에서는 의원과 유한식 전 연기군수가 뛰고 있다. 신진 후보는 국회의원, 최민호 이춘희 유한식 후보는 시장 후보다.

지난 21일 SBS-TNS 공동 여론조사 결과 후보 28.4%, 후보 26.7%, 신진 후보 13.9%로 나타났다. 일단은 이 후보와 심 후보가 2강 체제를 형성한 가운데 신 후보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후보는 거대 야당 통합체인 민주통합당의 산파일뿐 아니라 대선에서 유력한 킹메이커로 점쳐지고 있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선구도와 대선주자들에 변화가 예상된다. 친노 인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등이 대선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는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이 '보수 연합'이라는 기치 하에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지난 21일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이춘희 후보(35.2%)와 유한식 후보(32%)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였다. 새누리당 최민호 후보도 25.3%로 잠재력을 과시했다.

잠룡 그림자들의 성적표도 궁금하네

당락 따라 대선 행보 영향… 유승민 김경수 등 관심

잠룡들의 승패 못지않게 그들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측근 후보들의 성적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들의 당락에 따라 잠룡의 대선 행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브레인 역할을 해온 유승민 후보(대구 동구을), 대변인격인 이정현 후보(광주 서구을),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후보(경기 김포) 등이 특히 주목된다.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자신과 함께 '낙동강 벨트' 공략에 나선 문성근 최고위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경수 전 노무현 대통령 연설기획관 등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18대 때 4석(야권 전체)을 차지했던 부산 경남에서 적어도 7, 8석은 건져야 문 후보의 체면이 선다.

초토화되다시피한 계라고는 하지만 이종걸(경기 안양시만안구), 신기남(서울 강서갑) 후보 등이 살아 돌아온다면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설 자리가 많이 좁아진 후보는 안효대(울산 동구), 전여옥(국민생각 비례1번) 후보 등 '동지들'의 생환이 절실하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