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집에서 식칼 13개 여성용 손목시계 78개 발견 연쇄살인 가능성 제기경찰측 "과거 범행 잊기 위해 새 범행 저질렀다고 진술 추가 살인여부는 조사중"범죄전문가측 "일종의 이상 심리 나타나 단순 살인범 아닐 것"

수유동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강모(37)씨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강씨가 유영철과 같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수유동 살인사건은 2010년 7월 서울 수유동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덕성여대 정문 앞 주택가에서 23살 여성 이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사건 발생 1년 8개월 만인 지난 20일 강씨가 검거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강씨의 여죄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프로파일를 지원받아 심리검사를 진행 중인 서울 성북경찰서는 일단 연쇄살인 가능성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으로 단정하기엔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경찰이 연쇄살인 조짐을 보이자 사건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보다 정확한 사건 규명을 위해 본격적으로 확대 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사건의 시작과 끝

경찰이 밝혀낸 수유동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0년 7월 26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다세대주택 3층 화재현장에서 이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씨는 당일 새벽 4시쯤 어머니 박모(56)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변을 당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이씨는 박씨와 단둘이 이 집에 거주해왔다.

경찰은 사건 당시 화재현장이 잿더미로 변해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하지만 수일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이씨 시신을 부검한 결과 한 남성의 정액 흔적을 찾아냈고 이를 통해 DNA를 확보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경찰은 이씨의 남자친구와 직장동료뿐 아니라 사건 현장 주변의 남성들에 이르기까지 0.0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모든 남성의 DNA를 수집, 분석했다. 그러나 유전자정보가 일치하는 이가 없었다. 경찰은 이씨 집 부근에 설치된 방범용 CCTV와 편의점 등에 설치된 사설 CCTV까지 모두 분석했지만 범인은 찾지 못했다.

답보상태에 머물던 수사는 지난 11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이날 성북구 동선동의 한 원룸에 침입해 자고 있던 여대생 K씨(23)를 성폭행한 뒤 금품을 훔친 혐의로 강씨를 지난 20일 긴급체포한 것.

경찰은 K씨의 몸에 묻어 있던 용의자의 타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고 이를 분석한 결과 타액의 DNA가 2010년 7월 강북구 수유동에서 발생한 성폭행 방화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추가 피해자 대체 몇 명?

강씨를 검거한 경찰은 그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수상쩍은 물건들을 찾아냈다. 책상과 부엌 싱크대 등 서랍에서 식칼 13개와 여성용 손목시계 78개를 발견한 것. 경찰은 이 시계들이 피해자들로부터 강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2년 전 범행에서 당시 이씨의 손을 케이블타이로 묶고 성폭행 한 뒤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집에 불을 질렀다. 강씨는 고등학생이던 1992년 퍽치기 범행으로 입건된 적이 있지만 당시 혈액형을 허위로 기재한 덕에 DNA 조사에서 빠져 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강씨는 "유독 비 오는 날 범행 충동이 끓어올랐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K씨 사건의 경우 "수유동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피해자가 내 얼굴을 못 봤고 신고할 것 같지 않아 죽이지 않았다"고 강씨는 경찰에 밝혔다.

경찰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연쇄살인 가능성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입장이다. 강씨가 "2년 전 범죄를 저지른 뒤 죄책감에 가위에 눌리는 등 심적 고통을 겪었고, 새로운 범행을 하면 과거 범행 기억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해 새로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점을 미뤄 살인 등 강력 범행은 2건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강씨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고 있어 추가 살인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강씨는 추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지만 범죄 전문가들은 강씨가 연쇄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경찰대 표창원(행정학과) 교수는 강씨에 대해 "그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을 보면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자세한 것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일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을 보면 살인 후 가위에 눌려 잠을 못 잤다던가 범행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또 다른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연쇄살인범들이 흔히 말하는 연쇄범죄의 이유"라고 지적했다.

표 교수는 "비오는 날 아침에 흥분된다"는 강씨의 경찰 진술에 대해 "그것은 일종의 이상 심리로 그 흥분을 살인 등 강력 범죄와 연결시켰다는 것은 그가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가 사용한 도구도 범죄 전문가들의 주목을 끈다. 강씨의 방에서 발견된 식칼들은 손잡이 모양과 날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 연쇄살인범들은 범행이 계속되면서 점차적으로 도구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또 연쇄살인범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범행을 기념하는 전리품을 챙기는 습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강씨의 집에서 발견된 여성 손목시계 78개는 일종의 전리품을 가능성이 높다.

강씨 주변인들은 "조용하고 말이 없어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아 주변에 친구가 없다. 회식 자리에서도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비교적 깔끔한 성격인 것 같다"고 전했다.

표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정신병이라기보다 일종의 의학적 장애다. 이들은 감정이나 감성이 없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연쇄살인범에게 흔히 나타나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살펴보면 대부분 말이 없고 조용하며 주변에 친구나 이웃이 없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주변인들이 당사자를 과묵하다거나 내성적인 인물이라고 평하는 것은 이런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강씨에 대한 프로파일링이 마무리되면 결과에 따라 연쇄살인 등 추가 범죄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윤지환 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