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로펌들이 수상하다M&A 특허소송 전문 많아 국내 기업소송 난무 우려토종로펌 변호사법 족쇄… 조사에 한계 경쟁력 떨어져산업스파이 고용 기밀 빼내거나 기업 총수 개인 사생활까지 들추는 등 영화같은 첩보전 예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다음달 15일 발효함에 따라 외국의 거대 로펌들이 국내 법률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한ㆍEU(유럽연합) FTA와 한ㆍ미 FTA의 발효로 국내 진출을 꾀하는 외국 로펌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이 현실화 되자 법조계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ㆍEU FTA에 대한 부분만 놓고 생각하면 외국 로펌의 진출은 그리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었다. 유럽 로펌은 한국어 구사가 가능하거나 한국 사정에 밝은 유럽 변호사가 그렇게 많지 않아 한정된 업무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하지만 미국 로펌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계 미국 변호사를 다수 보유한 미국 로펌들이 시장에 진출할 경우 토종로펌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인들은 "미국로펌이 진출할 경우 우리나라 기업 등 경제 전반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미국로펌이 일반적인 의미의 법률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업 활동에 관련된 업무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이다. M&A나 특허소송 등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이 많아 향후 국내에 기업소송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토종로펌의 경쟁력을 지적하고 있다. 외국의 대형 로펌이 들어올 경우 살아남을 토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외국 로펌에 흡수되거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토종로펌의 생사보다 국내 법질서의 대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명탐정 셜록홈즈는 없다?

외국 로펌은 대부분 일명 '사설탐정'이라 불리는 민간조사원과 함께 움직인다. 로펌에 고용된 민간조사원은 로펌이 수임한 다양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보험조사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맞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 조사원은 살인사건, 도난사건 등과 같은 형사사건도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간인이 이렇게 사건을 조사할 경우 변호사법에 저촉된다. 말하자면 국내에는 '사설탐정'이라는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외국 로펌에 의해 고용된 민간조사원들은 대부분 조사에 관한한 '달인'이라 불릴만하다. 모든 조사원들이 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로펌에 고용돼 활동하는 이들 정도의 수준이라 하면 그들의 데이터 수집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조사원들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외국 로펌의 사건 처리 능력은 토종을 훨씬 능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렇다면 이들의 활동이 왜 국내 법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일까. 조사원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올바른 목적만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조사원은 로펌이 수임한 사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도감청은 물론이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해 기업 정보를 빼돌리거나 정치인 기업총수 등과 같이 주요인사의 개인 사생활까지 들추어낸다.

미국과 유럽 로펌의 경우 주로 M&A나 특허소송, 산업스파이 등과 같은 경제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한다. 예컨대 기업들은 M&A를 앞두고 있을 경우 흡수하려는 회사가 흡수되는 회사의 인수단가를 낮추기 위해 조사관을 동원해 여러 가지 문제를 잡아낸다는 것이다. 또 기업의 기술유출 여부를 잡아내기 위해 산업스파이를 고용해 경쟁사의 기밀을 빼내고 문제가 드러날 경우 초대형 특허소송을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들 조사관의 활동이나 외국 로펌의 조사관 고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마땅히 없다. 국내법상 이들의 활동을 제한할 근거도 취약할 뿐 아니라 로펌에서 은밀히 조사관을 고용하고 오리발을 내밀면 이를 밝히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국내 로펌은 사건을 수임할 경우 전문조사관 없이 의뢰인이 제공하는 자료의 의존해 소송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팀을 동원해 사건을 처리하는 외국 로펌이 들어오면 달리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외국 로펌이 들어올 경우 살아남을 토종 로펌은 불과 두 세 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조사원들은 정보수사기관 출신

조사원들이라는 존재가 국내에 없기 때문에 아직 법조계는 이들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막연히 일부에서는 "외국 로펌이 고용한 조사원들이 뛰어나다 해도 국내 동향에 어두운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 분석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조사원들에 대해 아는 이들은 "미국 유럽의 정보기관도 이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할 정도로 대단한 첩보원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조사원들이 현지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라서 정보를 모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보기관 첩보원들의 활동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조사원들은 첩보원과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이들은 로펌의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신분을 위장하기도 하고 주요 정보원을 매수하기도 한다. 또 필요할 경우 현지 대사관의 비공식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미국 로펌에서 변호사로 10년 이상 근무한 적 있는 한 변호사는 "외국 로펌이 고용하는 전문조사원들 중에는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 출신자들이 많고 그들은 현지 사회에서 상당한 엘리트로 통하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로스쿨 등에서 쏟아지는 실업자 변호사들을 외국 로펌이 전문조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들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외국 로펌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들을 고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외국 로펌과 함께 조사원들이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 국내 시장은 영화같은 첩보전쟁터가 될 것으로 보는 법조계 인사들이 적지 않다. 특히 검찰에 근무하는 이들은 이들 조사원의 존재를 벌써 경계하는 눈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정보과를 통해 외부 범죄정보나 주요 동향 정보를 수집하는데 이들 조사원이 들어오게 되면 여러 경로를 통해 검찰 내부 정보를 빼내려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이 정보활동을 하게 되면 정보활동을 하는 기업과 기관 정보원들을 매수해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음지에서 온갖 불법 정보 수집행위가 만연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불법 정보수집행위로 인한 피해가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이렇게 정보활동을 하는 부분에 대해 법적으로 막는 것이 쉽지 않다. 정보원들은 정보를 은밀히 교환할 뿐 아니라 입수나 출처에 대해 절대 함구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한편 국내에서도 민간조사원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가입국 중 유일하게 사설탐정 제도가 없다. 수사권이 위축될 수 있고 불법 조사행위로 인해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이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새누리당의 이인기 전 의원과 강성천 전 의원이 각각 경비업법 개정안과 민간조사업법을 입법 발의해 국회에서 논의한 바 있으나 이해관계가 얽힌 각 부처 간 힘겨루기로 3년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민간조사원 정보 수집력 무섭네

한 나라의 정보기관급… 외국 언론사들도 '검은 거래'

유명 전문조사원의 정보력은 한 나라의 정보기관에 비교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 예로 최근 선정적 폭로로 유명한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이 2000~2003년 사설탐정을 통해 1,728건의 개인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하루 한건 꼴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셈이다.

이 신문은 2003년 영국 정부의 사생활 침해 단속에 걸려든 악명 높은 사설탐정 스티브 휘터모어의 압수된 노트북 자료를 '아이티브이'(ITV)가 분석한 결과 애초 알려진 것보다 두배 많은 정보가 '데일리 메일'과 자매지 '메일 온 선데이'에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데일리 메일'은 그 대가로 14만3,000파운드(약 2억6,000만 원)를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신문이 수집을 의뢰한 정보에는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과 그 동생에 관한 것도 포함돼 파장을 일으켰다.

경찰 등 공공기관을 통해 휘터모어가 불법적으로 얻은 이 정보들은 자동차 번호판으로 추적한 주소는 건당 150파운드, 전과 정보는 건당 500파운드에 팔린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휘터모어는 32개 언론사 기자 305명한테서 개인 정보 파악을 의뢰받고 사업을 해왔다. 유명인이나 주요 범죄 피해자 쪽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이 주로 수집이 의뢰된 정보다.

새로운 분석에서는 역시 황색지인 '데일리 미러'가 9만2,000파운드를 주고 984건을 의뢰해 두 번 째로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휴대전화 메시지 해킹으로 물의를 빚고 폐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도 같은 기간에 2만3306파운드를 주고 240건의 정보 수집을 의뢰했다.

'가디언'은 자신들의 일요판 자매지인 '업저버'도 1만3,270파운드를 지급하고 201건의 정보 수집을 의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국도 이들 외국 조사원의 덕을 본 적이 있다.

작년 12월 국세청은 미국계 사설탐정회사에 의뢰해 해외에서 사업하는 K씨의 불법 탈세 행각을 잡아낸 적 있다. 당시 한국에서 출장 간 국세청 직원은 홍콩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조사원으로부터 두툼한 봉투에 든 자료를 건네받았다. 이 자료는 국세청이 이 조사원에 의뢰한 K씨 탈세 조사 자료였다. 국세청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서류를 열어본 국세청 직원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세무조사 중이던 제조업체 사주 K씨가 홍콩에 숨겨둔 계좌와 거래 내역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기 때문. 이 자료를 근거로 국세청은 K씨에게 역외(域外)탈세 혐의로 208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홍콩에 비밀계좌를 만들어 놓고 1,000억원 규모의 해외 사업소득 등을 빼돌린 혐의다. K씨는 자료를 보자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그저 놀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국세청은 정보를 빼낸 사설탐정회사에 3만달러(약 3,300만원)를 지급했다.

국세청은 올해도 영수증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20억원(특정업무경비의 일부)을 활용해 해외 비자금 계좌정보 수집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