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2번지 중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 정진석 꺾고 당선

정호준 당선자와 부인이 당선 축하 화환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삼대를 합치면 반세기가 훌쩍 넘는다. 할아버지(8번)와 아버지(5번)를 더하면 한 집안(직계 기준)에서만 14번째 금배지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최초고,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도 결코 흔치 않은 대기록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 기본이니 삼대가 국회에서 활동한 시간만도 반백년이 더 된다.

정호준(41) 민주통합당 후보가 마침내 금배지를 달았다. 정 후보는 지난 11일 치러진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 3만1,364표를 얻어 2만8,904표에 그친 정진석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정진석 후보는 6선을 지낸 고(故)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의 아들이다.

정 당선자는 '초선(初選)'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선수(選數)를 합치면 무려 14선에 이른다. 정 당선자의 조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인 고 정일형 박사(8선)이고, 부친은 중구의 터줏대감이었던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5선)이다.

특히 정 고문은 중구에서만 5선을 지낸 '대한민국 정치 2번지'의 상징이다. 따라서 정 당선자는 아버지를 기준으로 하면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12년 만의 탈환에 성공한 것이다. 17, 18대 때는 새누리당 후보들이 민주통합당 후보들을 누르고 중구의 주인이 됐었다.

정 당선자는 "저를 지지해주고 성원해준 중구민들에게 감사한다"며 "이번 승리는 저만의 승리가 아니라 중구 전체의 승리"라며 감격을 이기지 못했다.

왼쪽부터 노웅래, 남경필, 정문헌, 김세연
그는 이어 "국회로 들어가서 서민경제를 바로잡고 거꾸로 갔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지역 일꾼으로서도 최선을 다해 서민복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삼세번 만의 승리

정호준 당선자는 한양대 사회학과(89학번)를 졸업한 이후 미국에서 공부했고, 국내로 돌아온 뒤로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며 정치적 소양을 닦았다.

'3대(代) 국회의원의 꿈'을 키우던 정 당선자는 당내 예선에서 3선 현역인 유선호 의원 등을 누르고 본선에 진출했다. 쉽지 않은 승부였지만 워낙 오랫동안 터를 닦았던 터라 예상외의 낙승을 거둘 수 있었다.

정 당선자의 여의도 진출의 꿈은 8년 전인 2004년부터 시작됐다. 아버지인 정대철 고문의 바통을 이어받은 정 당선자는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중구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선거가 치러졌던 터라 어느 때보다 승산이 높았지만 정 당선자는 '강자'인 박성범 한나라당 후보에게 금배지를 내줘야 했다. 그리고 4년 뒤인 2008년 18대 총선 때는 당의 전략공천 방침에 따라 뜻을 접었다.

하지만 정 당선자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중구에서 처음 뜻을 세운 이후 8년 동안 착실하게 텃밭을 갈았고, 마침내 삼세번 만의 도전에서 꿈에 그리던 금배지를 달았다. 이제는 도전자가 아닌 챔피언이 된 정호준 당선자다.

총선 전 정 당선자는 "그간 중부는 전략공천으로 희생됐다. 그러다 보니 지역민들께서도 다선, 중진보다는 실제로 지역을 알고 일할 수 있는 후보를 원하신다"며 "그 부분을 지역민들께 호소하고 있고, 청년 토박이라는 점과 다른 후보들이 낙하산 철새정치인이라는 점을 어필하겠다"며 필승전략을 공개했다.

13선이 도운 정호준

중구는 총선 전부터 거물 정치인 2세들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정진석 후보는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이고, 조순형 자유선진당 후보는 고 조병옥 박사의 아들이다. 그러나 7선에 빛나는 조 의원은 지난달 21일 후보를 사퇴하면서 정호준 당선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고 정일형 의원
"정 후보의 조부와 저의 선친은 함께 독립 투쟁, 대한민국 건국, 민주화 투쟁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국가 지도자였고, 저도 정 후보의 부친과는 야당 동지와 동료 의원으로 동고동락한 사이였습니다." 이 같은 사퇴의 변은 정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6선을 자랑하는 김상현 민주통합당 고문도 정 당선자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저는 정 후보의 조부모인 정일형 이태형 박사와 그 아들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까지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족 같이 함께 지내온 사람입니다. 저의 오랜 정치 경험과 경륜으로 볼 때 정 후보는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4ㆍ11 승리의 그날을 위해 다 함께 힘을 모아주십시오."

조 의원과 김 고문의 선수를 합치면 13선이다. 13선은 공교롭게도 정 당선자의 조부와 부친의 선수를 더한 숫자다.

중구 토박이는 반드시 실천한다

정 당선자는 자신을 '중구의 토박이'라고 소개한다. 정치적 철새가 아니라 늘 지역을 지킬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는 "중구에서만 40년을 살았다"며 중구의 토박이임을 프로필 첫머리에 내세운다.

정 당선자는 정일형 박사의 손자, 정대철 전 의원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외증조모인 박현숙 전 의원(재선)과 이모부인 조순승 전 의원(3선)도 정 당선자의 피붙이다. 외증조모와 이모부로 범위를 넓히면 정 당선자는 집안에서 19번째 금배지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중구를 잘 아는 '중구 토박이'임을 자부하는 정 당선자는 주민들에게 당찬 약속을 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 당선자는 정책 공약과 함께 지역 공약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서울 중구는 서울시의 중심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일대를 특정산업개발진흥지구로 추진해서 자생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 청계천 주변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문화관광사업 시행과 서울역 중심의 국제 컨벤션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 조성도 추진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이 소외되지 않는 글로벌 중구를 위한 발걸음도 함께할 것입니다."

●정호준은

출생: 1971년 2월 19일

가족관계: 정일형-이태영 박사 손자, 정대철 전 의원 아들

학력: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졸업(89학번)-뉴욕대학교 대학원 석사

소속: 민주통합당

경력: 삼성전자 근무, 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정일형 이태영 박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중구 선거대책본부장, 민주통합당 부대변인

반값등록금 국민본부 공동대표, 제19대 국회의원 당선

"정치 처음엔 만류했으나 이젠 잘할것"

■부친 정대철 고문이 말하는 정호준

"호준이는 정직하고 정의롭게 잘할 겁니다."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정호준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지난 12일 전화통화에서 "8년 전에 출마하려 할 때 '삼성전자라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데 왜 굳이 정치를 하려 하느냐'며 만류했었다"면서 "그래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정 고문은 "(정 당선자가) 자신의 실력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자신만의 특기(인터넷 등 온라인)가 확실하기 때문에 잘 성장할 것'이라는 주위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 회사를 다닌다 해도 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 고문은 이어 "8년 전에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4년 전에는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받지 못했지만 (호준이는) 낙심하지 않고 착실하게 준비했다"면서 "이번에도 본인이 워낙 열심히 하기에 나는 옆에서 조용히 응원만 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정 고문 역시 직계 기준으로 국회의원 13선을 기록한 자신의 가문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정 고문은 "호준이가 이번에 당선되면서 집안에서 14선째"라며 "내 신조가 그렇듯 아들에게 '정치는 정직하고 정의롭게 주위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준비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하려는 자세가 있기에 잘할 것으로 믿는다"며 아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

2세 정치인들 19대 총선서 선전했다
■노웅래·남경필·정문헌 김세연등 줄줄이 당선
제19대 총선의 특징 중 하나로 정치인 2세들의 약진을 꼽을 수 있다. 세습이라는 비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역구 돌파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지역민들에게 아버지 못지않은 신임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7대에 이어 8년 만에 등원에 성공한 노웅래 민주통합당 당선자는 서울 마포 갑에서 가슴 벅찬 콧노래를 불렀다. 노 당선자는 마포구청장, 국회부의장을 지낸 노승환 전 의원의 아들이자 전직 언론인이다.

마포 토박이인 노 당선자는 17대 때 이 지역에서 금배지를 달았으나 18대 때는 'MB 바람'에 휘말려 야인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4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했다.

'수원의 터줏대감'인 남경필 새누리당 당선자는 이번 당선으로 5선 고지에 올랐다. 남 당선자는 14, 15대 때 국회의원을 지낸 고 남평우 의원의 아들이다. 남 당선자는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선거부터 19대 때까지 내리 5차례 금배지를 손에 넣었다.

김동석 전 의원의 아들이자 고 김윤환 전 의원의 동생인 김태환 새누리당 당선자도 경북 구미 을에서 다시 한 번 승전가를 불렀고, 정문헌 새누리당 당선자는 강원 속초 고성 양양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정 당선자의 부친은 이 지역에서 3선을 지낸 정재철 전 의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김세연 의원은 부산 금정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김 당선자의 부친은 같은 지역구에서 5선을 했던 김진재 전 의원이다. 김 당선자는 18대 때는 만 36세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인 유승민 새누리당 당선자도 대구 동구 을에서 승리했고, 김상영 전 의원의 아들인 김성곤 민주통합당 당선자는 여수 갑에서 4선 의원이 됐다.

5선에 빛나는 정운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우택 새누리당 당선자는 청주 상당에서 국회부의장 출신인 홍재형 민주통합당 의원을 따돌렸다. 정 당선자는 2010년 6ㆍ2 지방선거 때 도지사 선거에 나가 석패했으나 이번에는 보기 좋게 설욕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격전지인 서울 송파 을에서는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아들인 유일호 새누리당 후보가 4선에 빛나는 민주통합당 천정배 후보를 제치고 깃발을 꽂았다. 유 당선자는 당에서는 유일하게 강남3구에서 재공천을 받은 주인공이다.

반면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인 김영호 민주통합당 후보는 서울 서대문 을에서 피 말리는 접전을 벌였으나 끝내 정두언 새누리당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아들로 18대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성동 새누리당 후보는 서울 마포 을에서 정청래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비교적 큰 표차로 패했고,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용희 의원의 아들인 이재한 민주통합당 후보는 충북 보은 옥천 영동에서 새누리당 박덕흠 후보에게 석패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