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반응은 폭발적 예산상 어려움과 외부 입김 배제가 관건

코오롱스포츠 ‘페더’
한국판 컨슈머리포트인 'K-컨슈머리포트'가 시중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원조 컨슈머리포트는 1936년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미국 소비자협회에서 발행하는 보고서다. 매달 특정 제품을 선정해 업체별 성능, 가격 등을 비교ㆍ분석해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컨슈머리포트를 벤치마킹해 지난달 첫선을 보인 K-컨슈머리포트가 현재까지 두 개의 보고서를 내놨지만,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러나 적은 예산과 외부 입김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끝까지 조사 신뢰도를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인기 끄는 K-컨슈머리포트

K-컨슈머리포트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이 합작해 만든 소비자종합정보망 '스마트컨슈머'의 주력 콘텐츠다. 공정위 관계자는 스마트컨슈머의 설립 목적에 대해 "상품비교 정보와 구매 가이드는 물론 리콜 정보 및 피해구제 신고까지 주요 정보들을 한곳에 모아 서비스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라고 전했다.

블랙야크 '레온'
첫 선을 보인 K-컨슈머리포트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지난달 21일 첫 보고서로 선보인 '등산화 품질 비교'는 나오자마자 수많은 접속자를 모으며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해당 보고서에서 추천 상품으로 선정된 코오롱스포츠 '페더'와 은 각각 평소의 3.5배, 2.5배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지난 4일 공개된 '변액연금보험 상품비교'도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변액보험 10개 중 9개의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는 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목된 보험회사 관계자는 보고서를 본 가입자들의 해지 문의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관련 업계 불만 폭주

K-컨슈머리포트가 세간의 관심을 모으면서 잡음도 커지고 있다. 불만은 주로 관련 업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첫 보고서인 '등산화 품질비교' 추천 상품에 선정되지 못한 업체들은 "비교 대상ㆍ방법ㆍ기준 등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항변했다. 아예 용도가 다른 등산화를 비교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기준 또한 적정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등산화 품질비교' 보고서에서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아웃도어 업체 5곳(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K2, 트랙스타, 노스페이스)의 일반용ㆍ둘레길용 각 1종씩 총 10종의 등산화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행했다. 비교 항목은 미끄럼저항, 내마모성, 내수성 등 품질과 포름알데히드 포함 여부 등의 안정성, 그리고 무게와 가격이었다. 그러나 등산화 대부분이 품질 및 안정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탓에 결과는 무게와 가격에서 판가름났다.

비교군에 속했던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에서는 일반용과 둘레길용 두 제품군을 놓고 비교했지만 사실 등산화는 일반용일지라도 등반거리, 날씨, 계절 등 용도에 따라 종류가 천차만별"이라며 "용도에 따라 무게, 재질, 안정성 또한 달라지는데 (해당 보고서에서는) 단순히 가볍고 저렴한 것 위주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아예 비교군에 속하지도 못해 기회를 박탈당했던 아웃도어 업체들은 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보고서인 '변액연금보험 상품비교'는 아예 업계 전체의 비판에 직면했다. 보고서의 대상이 되는 보험업계는 수익률을 저평가한 리포트의 신뢰도를 문제삼는 한편 조사를 맡은 금융소비자연맹과 날 선 공방을 펼치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22개 생명보험회사의 변액연금상품 60개를 분석했다는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설계사와 은행 방카슈랑스 등을 통해 시판되고 있는 상품의 90%(54개/60개)의 연평균 실효수익률이 지난 10년(2002~2011년) 동안 평균 물가상승률(3.19%)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투자지표로 쓰여야 할 컨슈머리포트가 상품의 특성과 운용기간, 펀드 설정시기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수익률 통계치를 뽑아내는 등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자와 보험 기능을 섞은 복잡한 변액보험상품은 단순 비교가 아예 불가능한데 금융소비자연맹에서 '매달 20만원씩, 10년간 납입'이라는 기준을 설정해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생명보험협회가 금융위원회에 자료 게재 중단 조치까지 요구했지만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금융소비자연맹은 변액연금보험 가입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연금보험 수익률 수준을 나타내는 분석이 필요하고 수익률 분석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뢰성 확보할 수 있을까?

두 번의 보고서가 발표된 상황에서 불만 제기가 잇따르자 그 원인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K-컨슈머리포트가 어떤 평가와 분석을 내놓는가에 따라 해당 제품의 시장점유율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큰 까닭에 시행 초기의 잡음을 해소할 필요성이 커졌다.

가장 큰 문제는 K-컨슈머리포트가 조사 대상의 적절성, 조사 방법의 적확성 등 전문성으로, 소비자들의 신뢰와 그에 따른 권위를 가져갈 수 있느냐다.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70년 이상 그 권위를 인정받는 이유는 해당 업체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전문성과 그에 따른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원은 30개의 실험실과 500여 개의 실험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석박사 학위 소지자 13명을 포함해 시험분석인력 또한 36명이나 돼 기본적인 실험을 하기에 충분한 여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의 실험능력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K-컨슈머리포트가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막대한 예산도 필수적이다. 어떤 제품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수조사가 꼭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일례로 국내에서 판매되는 등산화가 수백 종이 넘어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데도 첫 보고서에서 10종만을 선택ㆍ조사했던 이면에는 예산문제가 가장 컸다는 후문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실험을 위해 각 제품마다 11족씩 시중에서 구입하면서 전체 비용이 4,000만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K-컨슈머리포트에 책정된 올해 예산은 9억4,000만원에 불과하다. 이중 사업을 위해 신규 편성된 것은 보고서 제작 시민단체에 지원되는 2억2,000만원 뿐이고 나머지는 소비자원의 기존 예산 일부를 끌어와 할당했다. 매년 2,600억원 이상을 소비하는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정확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정부 및 대기업으로부터의 자율성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애초에 공정위와 소비자원이라는 정부기관이 시작한 데다 예산도 정부에서 나오고 있어 공신력에 흠집이 날 우려가 없지 않다. 특히 공정위는 최근 물가잡기로 개별 기업들을 관리했던 전력이 있어 이러한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소비자원은 분석 결과가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해당 업체에 어떠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첫 보고서인 '등산화 품질비교'를 내기 위해 처음부터 해당 아웃도어 업체들에게 등산화를 추천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머쓱해졌다.

정확한 정보 및 선택권 확보를 통한 소비자 권익향상이라는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초반부터 만만찮은 문제에 직면한 K-컨슈머리포트가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지,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