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잡기 위해 정부가 빼든 칼에 정유업계 부담 가중

정부가 100일 넘게 고공 행진을 이어갔던 기름값을 잡기 위해 다시 한 번 강도 높은 정책을 선보였다. 기대했던 유류세 감소안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유업계를 향해 빼든 칼이 여간 날카롭지 않아 정유4사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재계1위 삼성그룹을 국내 정유시장에 참여시켜 그간 정유4사가 형성해왔던 과점체제를 흔들고 불공정행위에 대한 압박강도는 더욱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몇 년간 최대실적을 거두고 돈잔치를 벌여왔음에도 정부의 기름값 인하 요구에는 앓는 소리만 해온 정유4사에 대한 마지막 경고로 읽힌다.

정부부처 칼 빼들었다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는 19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열고 '석유제품 시장 경쟁촉진과 유통구조 개선 방안'(이하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 발표한 '석유시장 투명성 제고 및 경쟁촉진 방안'으로부터는 꼭 1년 만이고, 알뜰주유소 카드를 꺼낸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만의 일이다.

개선 방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삼성토탈이 정유시장에 신규사업자로 참여한다는 내용이다. 삼성토탈은 6월부터 석유공사에 알뜰주유소용 휘발유를 공급하기로 결정, 현재 물량과 가격 등 세부 공급조건을 협의 중에 있다. 매달 일본에 휘발유 3만7,000배럴을 수출해왔던 삼성토탈은 다음 달부터 8만8,000배럴의 휘발유를 추가 생산할 예정이다.

석유제품 혼합판매를 활성화하는 것도 개선 방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전량 구매 계약을 강요하면 불공정거래로 간주, 과징금을 물도록 하는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 앞으로 혼합판매 비율 상한(20%)을 없애고 정유사와 주유소가 합의해 비율을 결정하도록 했으며 주유소가 혼합판매 여부를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정부는 전자상거래용 수입 물량은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로 공급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현재 전자상거래용 수입 물량에 붙는 3%의 할당관세를 없애고 리터당 16원의 석유수입 부과금도 전액 환급할 계획이다. 전자상거래용 경유 수입분(15만㎘ 초과시)에 부과하던 바이오디젤 혼합의무도 면제해준다. 전자상거래용 물량 공급사에 대한 세액공제율도 0.3%에서 0.5%로 상향하고 거래보증금 요건을 완화한다.

알뜰주유소 사업자에 대한 혜택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소득세와 법인세, 지방세 등을 일시 감면하고 시설개선자금 등을 지원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 알뜰주유소 확대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서울지역에서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사업자에게는 지경부가 5,000만원의 시설개선자금도 지원한다.

성공 가능성 적지만…

이번 개선 방안의 핵심은 삼성그룹 계열사가 국내 정유시장의 다섯 번째 공급사로 진출한다는 부분이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정유4사가 그동안 형성해왔던 과점체제를 삼성토탈이라는 신규 공급사로 흔들어놓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정유4사의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각 정유사별 변동폭이 최대 5%도 되지 않을 만큼 과점으로 인한 유통구조 고착화가 심하게 자리잡아왔다.

삼성토탈은 삼성그룹과 프랑스 토탈의 합작기업이다. 화학기업이었던 삼성토탈은 지난 2010년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휘발유와 항공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토탈이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은 월 12만5,000배럴로 국내 월간 휘발유 소비량 550만 배럴의 약 2.27%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삼성토탈이 제한적으로 알뜰주유소용 물량만 공급하는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미 국내 정유시장이 30%의 공급과잉을 겪고 있는 상황인지라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에 삼성그룹이 굳이 뛰어들 까닭이 없다는 내용이다.

기존 정유4사가 원유를 수입, 이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LPGㆍ나프타ㆍ등유ㆍ경유ㆍ휘발유 등을 생산하는 데 반해 삼성토탈은 나프타를 수입해 PXㆍ벤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휘발유를 생산한다. 생산공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삼성토탈이 본격적인 정유업계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수조원의 신규투자가 필요하고 유통망도 새로 뚫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토탈 측 또한 "정부 요청으로 알뜰주유소 공급에 참여할 뿐 정유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은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는 터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류세 인하를 제외하고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해 강수를 둘 경우 실제로 정유4사의 독점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기존 정유4사가 원유 수입 시 3%의 관세를 내고 있는 반면, 나프타를 들여와 만든 휘발유 100%를 수출해온 삼성토탈의 경우 관세를 전혀 물고 있지 않다. 정부의 개입이 큰 정유업계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런 식의 혜택을 몰아준다면 삼성토탈로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막강한 자금력과 브랜드 인지도, 마케팅 능력을 갖춘 삼성그룹이 정부의 비호를 등에 업고 시장에 뛰어든다면 기존 정유4사로서는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원죄' 업계 누를 수밖에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며 고배당, 임원 연봉 상승 등 돈잔치를 벌여왔던 것도 정유4사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정유4사는 총 4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 1조7,033억원, GS칼텍스 1조2,360억원, S-OIL 1조1,924억원, 현대오일뱅크 3,607억원 순이다. 지난해 4~6월 리터당 100원을 할인했을 때 "손해가 커서 장사 못한다"며 앓는 소리를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의 실적이다.

정유시장 업황이 좋았던 탓에 장사를 잘한 것이 문제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높은 실적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겨온 것은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정유업계는 당기순이익의 30% 수준인 총 1조3,169억원을 배당했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S-OIL 5,589억원, GS칼텍스 4,970억원, SK이노베이션 2,610억원 순으로 배당을 진행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대표 기업들의 경우 배당성향은 6% 내외에 불과하다. 증권시장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도 15% 내외로 정유업계의 절반 수준에 그칠 뿐이다. 고유가와 고환율 정책에 따라 국민이 부담한 높은 기름값으로 돈잔치를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든 이유다.

또한 높은 기름값을 통해 거둔 이익에 기반, 정유4사 임원들의 연봉도 크게 올랐다. 2010년 각각 3억5,422만원, 8,922만원이었던 S-OIL과 현대오일뱅크의 임원 연봉은 지난해 6억3,868만원, 1억9,457만원으로 두 배로 뛰었다. GS칼텍스도 6억7,981만원에서 6억9,700만원으로 올랐고 SK에너지의 모회사 격인 SK이노베이션은 아예 46억4,733만원으로 상장사 최고수준의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지속해서 내놓은 기름값 인하 방안에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던 정유4사였던지라 이런 일련의 행동은 원죄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대선을 앞두고 기름값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정부로서도 시민단체의 유류세 인하 요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유업계를 압박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번에 삼성그룹을 끌어들이는 데까지 성공한 이상 앞으로 각종 특혜를 베풀어 삼성토탈의 영역을 확장, 현재의 과점적 정유시장을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이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