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뼛속까지 박근혜 맨' 고비마다 팔걷고 도와 충청권 민심 중시 당대표론 힘받아 '신군부 출신' 부담이해찬당내 최고 기획통 6월 당권 도전 유력 참여정부 실세 역할 풍부한 국정경험 재산 친노·강성이미지 부담

강창희
지난 11일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대선 지형을 뒤흔들 만한 두 거물의 당선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 모두 '민심의 풍향계'라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헤비급'들로, 향후 전개될 대선 정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친박(친 박근혜)의 핵심인 (66) 새누리당 당선자(대전 중구)와 친노(친 노무현)의 '성골(聖骨)'인 (60) 민주통합당 당선자(세종특별자치시)가 이번 총선을 통해 나란히 부활 찬가를 불렀다.

두 사람의 당선으로 정가는 벌써부터 떠들썩하다. 강 당선자와 이 당선자가 나란히 6선에 성공한 데다 친박과 친노를 대표하는 거물들인 만큼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독 과반의석(152석)에 성공한 새누리당에서는 "강 당선자가 국회의장이나 당대표를 맡아 당의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대선까지 염두에 둔다면 뼛속까지 친박인 강 당선자가 국회의장보다는 당권 쪽으로 가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당내 유일한 6선이자 친노의 좌장인 이 당선자도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당의 전면에 나설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일각에서는 "이 당선자가 당권을 포함해 큰 밑그림을 염두에 둘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하지만 이 당선자 측은 "대선 출마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해찬
'박근혜를 대통령 만들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강 당선자, '정권 교체의 선봉에 서겠다'는 이 당선자가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 펼쳐지기도 전에 뜨거운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자유민주연합과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DJ(고 김대중 전대통령)와 JP(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연합정권이었던 국민의 정부 전반기에 '한 배'를 탄 인연도 갖고 있다.

당선자

와신상담이란 이런 것

당선자의 승리는 와신상담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 당선자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 후 8년간 원외에 머물렀다. 17ㆍ18대에 연거푸 낙선하며 정치적 위기를 맞았지만 8년 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국회에 입성, 6선 고지에 올랐다.

강 당선자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친박 인사다. 그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열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을 즈음해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가까워졌다.

강 당선자는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인사들과 함께 박 위원장을 당대표로 내세우자고 제안했다. 박 위원장이 정중하게 고사하자, 강 당선자는 "나라가 어려운데 아버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라면 어떻게 판단하셨겠냐"는 말로 설득했고, 박 위원장은 마침내 강 당선자의 제안을 수락했다.

강 당선자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충청권의 압승을 이끌어냈고, 2007년 17대 대선 경선에서는 '박근혜 후보 경선 선거대책본부 고문'을 맡는 등 정치적 고비마다 팔을 걷고 박 위원장을 도왔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온 강 당선자는 박 위원장의 외곽 조직인 전국 규모의 '국민희망포럼'의 상임고문을 맡아 박 위원장의 대선 행보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각료 당료 두루 거친 베테랑

강 당선자는 본래 박근혜 위원장이 아닌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사람이었다. 11대 국회에 민정당 전국구(현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강 당선자는 대전 중구에서 12대(민정당)에 이어 14대 때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1995년 자민련에 입당해 사무총장,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거쳤다.

16대 대선 때 김대중ㆍ김종필(DJP) 연합으로 정권을 잡은 국민의정부에서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자민련이 민주당 의원 3명을 임대받아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하다 당에서 제명되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육사 25기인 강 당선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관 등을 지냈다. 그는 보안사에 근무하던 19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자 중령으로 예편한 뒤 민정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다. 때문에 강 당선자에게는 '신군부의 막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2006년 전당대회 때도 강 당선자는 "5공 인사 아니냐"는 경쟁자들의 공격에 시달렸다.

강 당선자는 내달 치러질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선의 향배를 가를 수 있는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과 더불어 박 위원장의 복심(腹心)이라는 점이 강 당선자의 당대표 대세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제 박병석 이상민 노영민 변재일 윤진식
반면 "총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는 완패했다"는 당내 비판이 강 당선자에게는 부담이다. 쇄신파를 중심으로 일부 의원들은 "젊고 신선한 수도권 출신 당대표가 제격"이라고 주장한다.

강 당선자는 당 대표 논란에 대해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강 당선자가 당대표가 되든 안되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선봉에 설 것이라는 점이다.

● 당선자는

출생: 1946년 8월 3일

출신지: 대전

소속: 새누리당

출신교: 대전대흥초-대전중-대전고-육사

주요경력: 육군대학 교수, 국무총리 비서실장,

과학기술부 장관, 자민련 원내총무ㆍ사무총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남대 석좌교수,

6선 의원(11~12대, 14~16대, 18대)

당선자

다시 뜬 기획통

당선자는 13대 때 평화민주당 간판으로 서울 관악 을에 출마해서 당선된 뒤 2004년 17대 총선까지, 내리 5차례 같은 곳에서 금배지를 달며 몸집을 키웠다. 같은 지역구에서 5번 연속 공천을 받아 5번 연속 당선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그러나 대선 패배 4달 만에 치러졌던 2008년 18대 총선에는 불출마함으로써 정치적 휴지기를 맞았다. 그러던 이 당선자는 2009년 '시민주권' 상임대표로 다시 기지개를 켰고 지난해 9월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를 맡으며 수면 위로 올라섰다.

이 당선자가 당내 최고 기획통이라는 데 이론은 별로 없다. 이 당선자는 지난해 야권 통합 과정에서부터 '한명숙 당대표, 문재인 대선후보' 구도를 그려왔다. 한 전 대표나 문 상임고문 모두 이 당선자와 친분이 각별한 친노 그룹이다.

하지만 당의 총선 참패로 이 당선자의 이 같은 밑그림에도 일정 부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또 문 상임고문 자신은 지역구(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됐지만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문성근 최고위원, 김영춘 전 의원, 박재호 전 국민제육진흥공단 이사장 등 측근들에게 배지를 달아주기에는 힘이 부쳤다.

이 당선자는 그러나 "이 정도면 대선에서 해볼 만할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당선자가 오는 6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 도전에 나설 거라는 관측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정당별 득표율에 따르면 총 유효 투표수 2,180만 2,240표 가운데 새누리당은 912만 9,226표(42.8%), 민주통합당은 777만 5,737표(36.45%)를 기록했다.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은 각기 219만 8,082표(10.3%), 68만9,843표(3.23%)씩을 얻었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한 보수 진영의 지지율은 46.03%,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을 합친 진보 진영의 지지율은 46.75%로 박빙이었다.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이제 당대표를 맡는 사람은 대여 전투에서 선봉에 섬과 동시에 연말 대선에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킹 메이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충청 출신 총리, 당ㆍ대선 역할 주목

이른바 운동권 출신인 이 당선자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투옥됐으며,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도 옥고를 치렀다.

참여정부 시절 '1인 지하 만인지상'인 국무총리에까지 올랐던 이 당선자는 풍부한 경험이 단연 돋보인다. 5선 의원, 국정 운영, 정책 조정 등 정치인으로서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

이 당선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각각 교육부 장관과 총리를 역임했고, 1992년 이후 3차례 대선에서는 전략기획 업무를 맡았다. 이 당선자에게 '기획통' '참여정부 실세'라는 수석어가 붙는 이유다.

유력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이 당선자는 충남 청양이 고향이다.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덜한 충청권 출신이라는 것도 향후 대선 정국에서 이 당선자에게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너무 진한 친노 색채와 강성 이미지는 이 당선자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 당선자는 교육부 장관과 총리 시절에도 강공 일변도로 나가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민주통합당 한 관계자는 "이 당선자의 능력이야 새삼 말할 게 없지만 강성 이미지는 대중성 확보와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당선자는

출생: 1952년 7월 10일

출신지: 충남 청양

소속: 민주통합당

출신교: 용산고-서울대 사회학과(1971년에는 서울대 섬유공학과 입학)

주요경력: 서울시 정부부시장, 새정치국민회 정책위의장,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창당 기획단장,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6선 의원(13~17대, 19대)

충청권 다선의원들 어느 지역보다 많아
6선의원 3명 모두 해당
대전 박병석도 4선
이상민·윤진식 등은 3선

대권 예비주자로 분류되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7선)을 제외하면 19대 국회에는 6선 타이틀을 가진 의원이 모두 3명이다. 3명 모두 충청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대전 중구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된 (66) 당선자, 세종특별자치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와 승리한 (60) 당선자, 논산ㆍ계룡ㆍ금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금배지를 단 이인제(64) 당선자가 그 주인공들이다.

강 당선자와 당선자는 향후 대선 정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큰 역할을 맡을 게 확실시되고, 선진당의 새 선장으로 유력시되는 이인제 당선자의 동선도 어느 정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 전체 의석 25개 가운데 44%인 11개는 재선 이상 의원들이 주인이다. 이는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 민주통합당의 아성인 호남은 총선 때마다 변화 바람이 거셌던 반면 충청권은 상대적으로 '안정 기조'가 강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민주통합당 박병석 당선자(대전 서구 갑)는 내리 4선에 성공했고, 총선 직전 자유선진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말을 갈아탄 이상민 당선자(대전 유성구)와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한 양승조 당선자(천안 갑)는 3선 고지에 올랐다.

또 충북 지역에서는 민주통합당의 오제세 당선자(청주 흥덕구 갑), 노영민 당선자(청주 흥덕구 을), 변재일 당선자(청원), 새누리당의 윤진식 당선자(충주)가 3선 등정에 성공하며 당내에서 중진 반열에 올랐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