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훈 당선자는 자신을 초선 의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명찰은 3선이지만 초선이나 다를 바 없다. 8년간의 공백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국회 입성 각오를 밝혔다. 부천=윤관식기자
4ㆍ11 총선을 통해 19대 국회에서 국민을 대변할 선량(選良) 300명이 선출됐다. 19대 국회를 이끌어 갈 당선자 3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148명이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초선이고, 재선 이상 급에서도 상당수가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있는 '할 말 많은' 선량들이다.

<주간한국>에서는 총선에 이은 대선이 있는 올해 '19대 국회, 주목! 이 사람' 코너를 통해 앞으로 4년간 국회 안팎에서 활약할 주요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 본다.

설훈(59) 민주통합당 당선자는 지난 23일에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김대중 대통령님께 인사 드리고 왔습니다. 8년간의 야인생활 후라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고, 대통령님이 많이 보고 싶더군요."

경남 창녕이 고향인 설 당선자는 'DJ 비서' 출신이자, 고(故) 김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영남 인맥'이다. 김 당선자는 김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5대와 16대 때 서울 도봉 을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그해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설 당선자는 "한 대 맞았다고 칼로 찌른다는 게 말이 되냐"며 탄핵 반대 삭발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설훈 당선자가 1995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서울 수유동에 있는 국립 4ㆍ19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설 당선자는 이 사진을 사무실 중앙에 걸어두고 있다.
18대 때는 공천을 받지 못해 여전히 야인으로 머물렀던 설 당선자가 이번 총선을 통해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설 당선자는 이사철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부천 원미 을에서 같은 당의 비례대표인 손숙미 의원을 누르고 12년 만에 여의도에 입성했다. 12년 만에 돌아온 'DJ 비서' 설 당선자를 지난 25일 부천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선을 기준으로 하면 12년 만에 국회 입성이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당선자 워크숍 때도 말했듯이 명찰은 3선이지만 초선이나 다를 바 없다. 오랫동안 여의도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적응하도록 노력하겠다."

-본선에서 승리하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손숙미 의원과의 본선도 어려웠지만 어떻게 보면 그에 앞서 당내 예선전이 훨씬 더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새누리당에서 이사철 의원이 또 나왔다면 본선에서 박빙승부가 됐을 것 같다."

설훈 당선자는 대학 시절 사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역사서적에 관심이 많다. 설당선자의 지역구 사무실에는 족히 수십년은 돼 보이는 역사 서적들이 즐비하다.
-앞선 8년간의 의정활동 동안 줄곧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만 일했었다.

"당시만 해도 교과위는 기피하는 상임위원회였다. 하지만 요즘엔 서로 가려고 한다. 물론 좋은 현상이다. 이번에도 기회가 된다면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청년 실업, 반값 등록금 문제 해결에 반드시 힘을 보태서 젊은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

-서울 도봉 을에서 2차례 당선됐기에 부천이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계실 때 '자네는 미아리 고개를 절대 넘어오지 말게'라고 하셨다. 그런데 부천은 친하게 지내는 배기선 전 의원의 지역구라 3년 전에 둥지를 틀게 됐다. 이제는 지역민들께서도 많이 알아 보시고 격려해 주신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서 돌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옛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노 대통령이 우리를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그때 나는 '탄핵은 한 대 맞았다고 상대를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탄핵을 막지 못한 데 내 책임도 있는 것 같아서 총선에 나가지 않았다."

-공백기가 길었다. 8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2004~2005년은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객좌 연구원으로 지냈다. 중국 정부가 추진했던 동북공정(고조선사, 고구려사, 발해사 등 한국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논리)에 반박하는 논리를 폈던 게 나름대로 성과였다. 이후로는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당을 지켜보며 지냈다.

-4ㆍ11 총선 당선 이후로만 김대중 대통령 묘소에 3차례나 참배했다고 들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늘 대통령님을 찾아 뵙는다. 묘소 앞에 서면 '제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한다. 대통령님은 생전에 '정치는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2012년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잇달아 치러지는 해다. 그만큼 중진으로서 당내에서 역할이 클 것 같다.

"중진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초선이다. 공백기가 길었던 사람이 당장 주요 당직을 맡는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선 승리를 위해 밑거름이 된다는 각오뿐이다."

-내달 5일에는 원내대표, 6월 9일에는 당대표가 선출된다.

"이번 원내대표는 정말 중요하다. 원내대표가 당대표 선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당대표는 대선정국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보기에 좋은 인물이 아닌, 유권자가 만족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게 소신이다. 그게 안 된다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유권자들에게 내놓을 지역 발전방안은 무엇인가.

"부천뿐 아니라 지역 발전방안은 여야가 크게 다를 게 없다. 정치인, 자치단체, 시민단체, 종교인 등 여러 분야 인사들이 힘을 합쳐 범시민 연대를 결성해야 한다. 그 연대가 지역 발전의 청사진을 만든다면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바뀐다 하더라도 사업의 연속성이 유지될 걸로 본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예산과 시간을 절약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부천=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