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수원 살인사건'의 살인범 오원춘(42)이 지난 10일 오전 경기 수원 남부경찰서를 나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러면 안 되잖아?” “니 말은 못 믿겠어.” “딴 생각하잖아.”

얼핏 들으면 헤어지자는 연인을 잡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온 휴대전화 통화로 여겨진다. 그러나 “잘못했어요. 아저씨”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터이고, “무서워요”라는 말과 함께 끊어지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상황은 짐작보다 훨씬 심각했다. 귀가하는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토막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던 날 피해자가 다급하게 112신고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오간 대화였다.

검찰이 공개한 112 신고센터 녹취록을 들어다 보면 섬뜩해진다. 피해여성이 낯선 아저씨 오원춘(41ㆍ중국)에게 강제로 끌려간 뒤 느꼈을 공포와, 오씨가 화장실에 간 사이 방문을 잠그고 112로 신고할 때의 숨막히는 초조함, 오씨가 문 옆의 작은 창문을 통해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채 방문을 열라고 협박할 때 닥쳐왔을 절박감 등이 그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영화 속에서나 볼 것 같은 상황이었다.

살인마 오는 사이코패스?

어쩔 수 없이 밤 늦게 귀가해야 하는 여성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은 수원 여성 토막 살해 사건의 범인 오원춘은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범죄 전문가들은 “오원춘이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인)이고 다른 살인 사건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사이코패스와 연쇄 살인 특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이 연쇄 살인 등 여죄를 추궁할 때 DNA 검사와 함께 거짓말 탐지기까지 사용했지만 헛일이었다.

물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평소 음란물을 좋아했다는 오원춘이 사건 당일 술을 마셨다지만 납치 성폭행에 이어 살인을 저지르고 살점을 도려내는 방법으로 사체를 절단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오원춘이)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서 “의문점이 있지만 피의자 진술을 배척할만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지석배)는 귀가하는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반항하던 피해자를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피의자 오원춘을 강간살인 및 사체손괴 등의 혐의로 지난 26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총 13명으로 구성된 전담수사팀을 투입해 현장 감식을 다시 실시하고 통합심리 분석 등 각종 과학수사기법을 활용했지만 추가 범행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하고 수원사건 단일 범죄로 기소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오원춘이 진실을 회피하는 데 능하다”고 설명했다. 오원춘은 중요하지 않은 것도 계속 거짓말해 수사에 혼선을 줘왔다고 한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오원춘은 지난 1일 밤 10시 30분께 피해자를 납치해두 차례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화가 난 그는 이튿날 새벽 3~4시께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원춘은 첫 성폭행 시도 과정에서 피해자 지갑과 MP3를 뺏고, 살해한 다음 시체를 절단하면서 금목걸이와 귀걸이, 반지를 챙겼다고 자백했다.

검찰은 왜곡된 성생활을 범행 동기로 추정했다. 검찰 수사 결과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오원춘(중국발음 우위엔춘)은 내몽골자치구 출신으로 2007년 9월 한국에 들어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주 1회 정도 성매매해왔다. 또 최근 구입한 스마트폰으로 하루 3회 이상 음란물을 검색했다. 한 달 수입이 약 200만원이었는데 오원춘은 매달 성매매 비용으로 40만원 안팎을 사용했다고 한다. 범행 직전인 1일 오후 7시 58분부터 8시 47분까지 음란한 사진을 28회나 검색했다. 부엌칼로 사체를 훼손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음란한 사진을 볼 정도로 욕정이 넘쳤다고 한다.

검찰 감식반은 오원춘의 집에서 제3자 모발 두 점을 발견했다. 한 점은 올해 1월까지 내연 관계였던 중국인 여성의 것으로 판명됐다. 내연녀는 검찰 수사에서 “오원춘이 내성적이었지만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관계를 강요한 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내연녀는 오원춘과 9개월 동안 동거하다 헤어졌다고 밝혔다. 오원춘은 사건 발생 이틀 전에 성매매 여성을 집으로 불렀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나머지 한 점은 오원춘과 성매매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추정된다.

오원춘은 미국 영화에서 손과 발을 절단하는 장면을 떠올려 피해자 사체를 절단했다고 진술했다. 오원춘은 부인했지만 그의 고향 동료는 ‘오원춘이 양과 돼지를 도축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성매매 여성을 집으로 불렀고 토막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오원춘은 영화 ‘추격자’에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 지영민과 닮았다. 이런 까닭에 검찰은 쓰레기장으로 보이는 소각로에서 발견한 뼈(닭으로 추정)와 각종 유류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 국과수 분석 결과 단서가 나오면 검찰은 즉각 재수사할 계획이다.

수사 결과 오원춘과 피해 여성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알려졌다. 납치 성폭행과 토막 살인이 계획적이라기보다 우발적이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그러나 폐쇄회로 TV에 찍힌 오원춘은 피해자를 뒤에서 덮쳤고 50m쯤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피해자와 욕설을 주고받으며 다퉜다는 오원춘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납치했다는 말조차 믿을 수 없어 보인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