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과정과 금융, 정권실세를 두루 잘아는 사람이 ‘키맨’

'왕차관' 으로 불리며 MB정권의 실세로 군림해온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의혹에 연루돼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피내사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의 파이시티 개발 인허가 로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겨냥하면서 MB 정권 최대의 비리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수사 진척에 따라서는 '파이시티 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부장 최재경)는 지난 3일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브로커 이동율(61ㆍ구속)씨에게 서울시의 인허가가 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7,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이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구속한 데 이어 박 전 차관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검찰 주변에서는 MB정권 최고 실세들이 걸려든 만큼 검찰 수사가 결국 로 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 정권 들어 각종 비리 의혹의 '단골손님'인 이상득 의원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높다. 이미 "파이시티 의혹과 관련해 이 전 의원이 개입됐을 수도 있다"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누군가 입 열면 일파만파

청와대
문제는 이들을 한꺼번에 엮을 수 있는 비리 단서다. 검찰은 파이시티 비리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다양한 정황 증거들은 이미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은 명백히 드러난 사실 외에 인허가 관련 압력 행사, 금품 수수 등에 대해서는 함구 혹은 부인하고 있다. 검찰이 이들의 불법ㆍ위법 행위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다. 의혹을 규명할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 수사는 일단 브로커 이동율씨 등의 진술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론 등 외부에 노출되는 수사 내용도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이 대부분이다. 파이시티 전 경영진이 파이시티를 정권 실세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폭로한 금품제공 증언, 각종 녹취록 등은 객관적 증거로 입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비리 의혹의 핵심을 규명할 만한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검찰의 꼬리 자르기 또는 봐주기 수사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연달아 큰 사건이 터져 수시로 여론의 관심이 배를 갈아타고 있다"며 "이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에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여론의 관심은 이 사건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도 흐지부지 될 것이다. MB정부의 검찰 수사는 대부분 그런 패턴을 그리고 있다"고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검찰 안팎에서도 "먼저 사건의 키맨을 규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이 파이시티에 관한 한 혐의 내용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전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을 집중 조사하고 있지만, 파이시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의 핵심을 밝혀줄 '키맨'으로 거론되는 인사가 따로 있다. 두 사람은 비리행위 당사자이기 때문에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할게 뻔하다. 따라서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과 두 사람간의 은밀한 행위를 가장 잘 아는 인사가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사실상 '핵심 열쇠'인 셈이다.

적지 않은 파이시티 관계자들이 '키맨'으로 보고 있는 인사는 바로 모 금융지주 회장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사람을 단순 참고인으로라도 불러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전모를 대충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검찰이 참고인 자격으로 부를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 연결됐나

모 지주회사 회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파이시티 사건은 정권 핵심 실세와 깊이 연관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데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금융지주 회장이 MB정권 실세와 두루 긴밀한 관계라는 점이다. 대통령과 학연으로 얽혀 있고, 서울시장 시절에는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파이시티 개발과 관련, 포스코건설에 특혜를 준 의혹도 제기되는 등 석연치 않은 대목이 금융지주사 운영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권실세의 배후조종이 아니고서는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당시 퇴임 50여 일을 남겨두고 파이시티 건설부지 용도변경 허가를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2005년 11월과 12월에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양재동 화물터미널의 대규모 점포 허가 등 세부시설 변경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일부 심의위원들의 반발했으나 그대로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위원들의 반발뿐 아니라 인허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아 향후 심각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서는 추가 검토도 없이 허가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울시 내부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 배경에 대해 당시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또는 "그 내용은 공적인 업무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답변해 줄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명한 사실은 그들 모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을 무리하게 추진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지시로 그렇게 무리했을까? 이와 관련, 서울시는 당시 일 처리에 개입한 직원들에 대한 조사 여부를 논의 중이다.

파이시티 배후 수사 청탁도

파이시티 주변에서는 로비자금의 출처와 모 금융지주, 포스코건설 등을 움직인 배후 권력에 대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파이시티 관계자들은 "검찰이 사업 과정의 불법성과 자금 출처를 캐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포스코건설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2조4,000억 원 규모의 사업인 양재동 파이시티 사업에 단독 입찰해 시공사로 선정돼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2010년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파이시티는 시공사 공모를 새로 시작했지만, 사업 설명회에 참여한 13개 건설사가 모두 조건이 까다로워 입찰을 포기했다. 이후 포스코건설은 단독으로 사업제안서를 내고 파이시티는 기다렸다는 시공권을 포스코건설에 맡겼다.

입찰을 포기한 A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측이 사업제안서를 내자 갑자기 조건이 완화되더니 파이시티와 포스코건설이 손을 잡았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일"이라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정배 파이시티 전 대표는 "인허가 작업이 끝나고 분양에 들어가려는 순간 1조 원의 개발이익을 가로채기 위해 은행측과 포스코건설이 서로 짜고 경영권을 빼앗아갔다"며 "이들의 배후에 막강한 권력이 숨어 있다. 이것은 권력형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은행측과 포스코건설 측은 이 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200억 원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주단의 제안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며, 포스코건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공권을 획득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또 2010년 파산직전 '청부 수사'를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은행측이 측 실세에게 파이시티에 대한 수사 청탁을 했고, 그 실세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수사 착수 시기는 파이시티의 파산 신청을 낸 시기와 중복되는 건 사실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10년 8월 은행측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여 1조 원 이상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 등으로 이 전 대표를 같은 해 11월 구속했다. 이 전 대표는 이후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다.

파이시티 발화점은 '한장의 고소장'
지난해 11월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 비밀협약으로 파이시티 파산"


윤지환기자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 개발 사업의 공동 시행자인 ㈜파이시티와 ㈜파이랜드 전 경영진은 지난해 11월 25일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에 대해 사기와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 등은 고소장에서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 사업권을 인수하기 위해 비밀협약서를 체결했고, 경영진 의사와 관계없이 파이시티를 파산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1983년 대우건설에 입사해 10년간 부동산 개발 분야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뒤 IMF위기 직후 아파트 개발사업을 손을 대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0년 초 대우자동차판매 등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200억 원에 모든 사업권을 양도하라는 협박을 받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같은 해 8월 채권은행단이 일방적으로 법원에 파이시티의 파산을 신청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파산신청을 기각했고 파이시티에 대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됐다. 대신 이 전 대표에 대한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가 시작돼 불법으로 은행 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은 중앙지검 형사부에서 수사하다 파이시티 사건이 불거지자 대검 중수부가 통합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양재동 개발사업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인허가가 늦어지는 등 문제가 잇따르자 로비를 통해 사업을 정상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