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 화장품업계 춘추전국시대'그루밍족' 열풍 타고 해마다 15%이상 급성장유명 배우·스포츠 스타 등 앞세워 마케팅 전쟁해외업체 '고급화'로 공격

"남자도 BB크림 정도의 기초화장은 해야 한다."

미혼 여성 가운데 약 50%가 화장하는 남자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개팅 서비스업체 이음이 20~30대 미혼남녀 1,0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54%가 화장하는 남자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인 셈이다. 포춘코리아는 5월호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을 조명했다.

최근엔 남성 화장품을 소개하는 행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3월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열린 뷰티 클래스 행사장. 남자가 화장솜을 이용해 능숙하게 콧날과 미간에 화장품을 바르자 회사 관계자가 화장하는 방법과 제품 특성을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청중은 경청하며 메모했다. 제품에 대해 서로 열띤 의견을 교환하는 20대 대학생과 40대 직장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피부관리는 생존전략

패션과 미용에 쓰는 돈을 아끼지 않는 남성을 그루밍족이라고 부른다.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켜준다는 뜻에서 생긴 신조어. 사회학의 영역에서 그루밍족은 단순히 겉모습을 잘 꾸미는 차원을 넘어 '미(美)'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관심을 둔다. 이런 까닭에 그루밍족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좋은 화장품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매와 건강까지 관리한다.

피부과를 찾는 남성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의 피부형에 맞는 화장품에 대해 묻는다.
그루밍족에게 피부 관리는 기본. 외모도 경쟁력이고 남성도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 도태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연예인이나 받을 거라고 여겨졌던 피부 관리가 20대 청년은 물론이고 40대 직장인에게까지 퍼졌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예전에는 마초나 터프가이가 선호의 대상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선 부드러운 남자와 예쁜 남자들이 선호되면서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좋아졌다"면서 "남성 사이에서도 외모가 곧 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백화점 1층 매장엔 남성 화장품이 진열된다. 남성용으로 제작된 아이크림, 에센스, 수분크림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예전에는 거의 없던 남성 화장품 단독 매장이 생겼다. 상품 기획전에도 남성을 타깃으로 한 뷰티 상품이 많이 구성되고 있다. 아직 여성 제품에 비해 매출 비중은 낮지만, 지난해 30% 정도 매출이 커졌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남성화장품 시장은 2008년에 5,700억원대였는데, 해마다 평균 15% 이상 급성장해 올해 매출은 1조원대로 전망된다. 국내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여성 화장품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성장률이 더디고 새로운 주자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성 화장품 시장은 다르다. 아직 절대 강자는 없는데다 시장까지 커지고 있어 경쟁자가 몰린다"고 분석했다.

치열해진 시장 경쟁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박지성, 드라마 무대의 톱스타 현빈, 따뜻하고 친근한 인상의 배우 차태현. 이들은 남성화장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박지성은 LG생활건강, 현빈은 아모레퍼시픽 TV 광고에 나선다. 외국계 화장품 업체 비오템 옴므, 랩시리즈, SK-Ⅱ MEN, 한국오츠카는 각각 다니엘 헤니와 지창욱, 유지태와 차태현을 CF 모델로 선택했다.

서울 상수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 남성 뷰티 플래그십 스토어 '맨스토어'의 실내 전경.
포춘코리아는 TV 광고에 경쟁이 붙을 정도로 남성 화장품업체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국내 화장품 기업들의 텃밭이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2010년 기준 남성 화장품 시장 점유율에서 23.5%, 14.7%를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대 중반부터 '라네즈 옴므'와 '헤라 옴므' 등 대표 브랜드를 활용해 남성 전용 라인을 출시해왔다. 특히 젊은 도시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라네즈 옴므는 최근 5년간 30% 이상 성장했다. LG생활건강이 2000년대 초반 출시한 '보닌'은 줄곧 남성 화장품 1위 제품라인 자리를 지켰다.

화장품 개발 연구에 참가했던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부터 슬슬 남성용 제품 개발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당시 인기 축구선수와 배우가 동시에 광고 출연을 해 큰 화제가 됐던 소망화장품의 '꽃을 든 남자'가 대박을 치면서 본격적으로 바람이 불었다. 남성용 화장품 시장은 국내 대형 뷰티 기업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다. 외국 제품들도 국내에 들어와 있었지만, 해외 기업들이 직접 시장을 공략했다기보다 수입 업체들이 해당 브랜드를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화점 매출로 보면 외국 기업이 1위다. 백화점 매출 1위인 비오템 옴므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국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자세. 남성 대상 스킨케어 쇼를 펼치는가 하는 등 국내 남성 소비자를 겨냥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화이트닝 제품과 BB크림을 연달아 출시하며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브랜드 SK-Ⅱ는 지난해 10월 자사의 남성브랜드 'SK-Ⅱ MEN'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내에 출시했다. 한국에 첫선을 보인 제품은 출시 4일 만에 한 달치 물량이 모두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SK-Ⅱ MEN 홍보팀 관계자는 "한국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잡고 가장 먼저 제품을 출시했다. 한국의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시장 잠재력도 일본에 비해 크기 때문인데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남성들의 특성도 고려됐다"고 귀띔했다.

피부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남성이 늘고 있다. 사진은 남성 화장품 업체 랩시리즈의 뷰티 클래스에서 제품 체험을 하고 있는 남성들.
우르오스는 일본계 기업인 한국오츠카제약이 3월에 출시한 제품. 남성 전용 브랜드 '랩시리즈'와 '키엘' 역시 다양한 이벤트와 고품질의 신제품으로 시장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급화 앞세운 공방전

포춘코리아는 한국화장품협회 관계자 말을 인용해 해외 업체들은 주로 고급 기능을 갖춘 제품라인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고 남성 화장품 시장을 분석했다. 남성용 영양크림 한 통 가격이 20만 원을 훌쩍 넘어 갈 정도로 외국 업체는 고급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외국 업체는 피부 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 그루밍족을 겨냥한 광고도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고급화 전략은 TV CF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홍익대 광고홍보학과 이혜성 교수는 고급화 전략에 따른 TV CF를 이렇게 해석했다.

"피부 미남, 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돼 서로 바라보다 여자가 조용히 읊조립니다. '최고의 사람, 아낌없이 주고 또 줘도 모자란 사람. 최고만 선물하고 싶다. 내 남자의 피부를 위한 최고의 선물'. 제품의 기능보다는 선물로서의 가치를 강조한 카피입니다. 그리고 최고급 선물로 가치를 부여 받은 화장품과 남자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피부는 권력입니다. 고급 이미지의 남자 모델이 지닌 권력이 그대로 제품으로 투영되는 거죠. 최고의 피부를 꿈꾸는 남자에게도, 그런 남자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은 여자에게도 먹히는 광고 한 편이 되는 겁니다."

외국 업체에 안방을 내줄 수 없다는 생각에 국내 업체도 반격에 나섰다. LG생활건강은 최근 남성용 피부 항산화 화장품 '보닌'을 선보였다. LG생활건강 홍보팀 관계자는 "박지성 선수가 제품 개발 과정에서 향과 디자인 그리고 사용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피부노화의 주범인 활성 산소를 이겨내고 피부에 강력한 에너지를 부여하는 이 제품의 기능은 박지성 선수가 지닌 신뢰성과 어울려 상당한 판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제품은 박지성이 직접 제품 개발단계에 참여해 일명 '박지성 화장품'으로 불린다. 박지성이 20여 년간 운동선수로 뛰며 겪은 피부 고민이 녹아 있는 화장품인 만큼 출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네이처 리퍼블릭은 남성라인 전 제품을 과감하게 새로 단장했다. 남성 고객들의 피부 고민에 따라 타깃층을 세분화해 기능성 라인을 크게 4가지로 나누었다. 이 밖에 아모레퍼시픽은 '라네즈 옴므'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했고, 이니스프리는 남성 전문 스킨케어 라인 '포레스트 포맨'을 선보였다.

군장병을 겨냥해 '위장 크림'까지 내놓는 업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군에서 보급품으로 나눠주는 위장 크림은 얼굴에 바를 경우 잘 지워지지 않는다. 자주 사용하면 피부가 거칠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 착안해 피부 보호와 보습에 도움을 주고 쉽게 지워지도록 만든 것이 위장 크림이다. LG생활건강을 필두로 스킨푸드, 아모레퍼 시픽,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 토니모리 등이 이 같은 제품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시장 변화에 맞춰서 고급 기능을 갖춘 고급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맞대응한다. 하지만 20~30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점점 다양해지고 세분되고 있어 단순한 기능의 고급화와 비싼 가격만으론 소비자를 공략하기 어렵다. 보다 전문적인 제품 개발과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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