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 사건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맹신하는 오컬트(occult) 문화가 연관돼 있다고 알려졌다. 사진은 귀신을 불러내는 일본식 주술‘분신사바’ 장면. 윤관식기자
"사령(死靈) 카페가 뭐야?"

"사령은 악한 영혼을 막아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야. 사령 카페는 사령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지."

"그럼 현피를 뜨다가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던데, 현피가 뭐야?"

"현피는 인터넷 게임에서 쓰이는 은어인데, 현실과 Player Kill에서 앞글자를 딴 합성어야. 인터넷 게임 도중 말다툼이 벌어지면 실제로 만나 싸우는 일이 잦은데 이럴 때 현피를 뜬다고 말하지."

서울 신촌 대학생 살해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됐던 3일, TV로 뉴스를 보던 일반 가정에서는 이런 요지의 대화가 오갔다. 그만큼 사령이나 현피라는 단어는 일반 중ㆍ장년층에게는 생소한 영어다. 그러나 중고생이나 대학생들에게는 현피 문화와 초자연적인 현상을 맹신하는 오컬트(occult)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다만 인터넷에서 생긴 말다툼이 현실에서 칼부림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끔찍할 뿐이다.

경찰 수사 결과, 신촌 대학생 살인 사건은 네이버 사령 카페인 '네사카'에서 싹텄다. '네사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여대생 박모(21)씨의 권유로 남자친구 김모(20)씨와 김씨를 살해한 고교생 이모(16)군과 홍모(15)양도 이 사령 카페에 가입한 회원이었다. 살해된 김씨는 지난해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를 통해 박씨와 사귀게 됐고, 이군과 홍양은 만화 주인공처럼 옷을 입는 코스프레 동아리에서 박씨와 만나 친해졌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은 사령 카페 때문에 철천지 원수가 됐다.

사령 카페 활동은 일종의 '오컬트' 문화다. 오컬티즘(occultism)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적 이론. 동북아에서 유행한 역학과 인도 아유르베다 체계 등도 일종의 오컬티즘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면서 신비주의와 주술 등이 혼합돼 사이비 종교처럼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호기심이 강한 청소년은 일본 만화나 인터넷을 통해 오컬트 문화에 빠져들기 쉽다는 게 정설이다.

경찰 조사 결과, 사령 카페에 빠진 박씨는 "나는 이제 마녀야. 마법도 부릴 수 있어"라면서 "죽은 영혼을 불러서 내 몸에 붙여서 같이 살 거야"라고 말해왔다. 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씨는 사령 때문에 여자친구 박씨와 말싸움을 했고, 박씨를 편드는 이군, 홍양과도 갈등을 빚었다. 김씨는 지난달 박씨에게 결별을 통보했지만,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박씨를 사령 카페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해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김씨와 이군 등의 말다툼은 끊이질 않았고, 김씨는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이군 등을 윽박질렀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이군은 김씨를 "죽여버리겠다"며 블로그와 카페에서 댓글로 심하게 다퉜다고 한다.

그나마 나이가 많은 김씨가 지난달 29일 "심하게 말한 것을 사과하고 싶다"며 먼저 화해를 청했다. 그러나 이군은 김씨의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현피 문화에 익숙한 이군은 코스프레 동아리에서 만난 윤모(19)씨와 함께 칼과 전선을 준비했다. 인터넷 게임에서 상대방을 없애듯 현실에서 김씨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사령 카페에서 악연을 맺은 김씨와 박씨, 이군과 홍양은 30일 오후 7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바람산 어린이공원에서 만났다. 이군 등은 김씨를 살해할 생각으로 칼과 전선을 준비했지만 김씨는 이군 등을 설득하려고 선물로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준비했다. 김씨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목적은 레카 구출. 무력 따윈 안 써. 조용히 빼내오는 거야"란 글을 보냈다. 레카는 여자친구 박씨가 사용하는 아이디이고, 구출은 사령 카페에서 빼내겠다는 뜻이었다.

김씨는 7시 59분 "레카는 갔어"란 문자를, 8시 13분에는 "점점 골목, 웬지 수상"이란 글을 친구에게 보냈다. 잠시 뒤 김씨는 공원 산책로에서 칼에 40여 차례 찔린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가 김씨 목을 붙잡았고 이군은 김씨를 난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튿날인 지난 1일 신촌에 있는 모 찜질방에서 이군과 홍양을 붙잡았다. 2일엔 의정부에서 윤씨도 검거했다.

경찰은 3일 이군과 홍양, 윤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여자 친구 박씨는 살인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이군 등이 김씨를 혼내주려는 건 알았지만 살인할 계획이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령 카페보다 인터넷 채팅에서 생긴 갈등을 이번 범행의 직접적인 동기로 지목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사령 카페에 가입한 사실은 있으나 범행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며 이군과 홍양은 활동이 부진해 강제 탈퇴를 당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김씨 친구들은 경찰 발표에 반발하며 사령 카페가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친구들은 박씨가 지난달 24일 자신의 블로그에 남자친구 김씨를 향해 '진심으로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란 글을 썼고, 이군 등이 '확인완료'란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들어 박씨가 살인을 공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사령 카페를 빼놓고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사령에 대한 인식 때문에 갈등이 무척 커졌고, 이 과정에서 살인이 복수의 한 수단이 됐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은 청소년 사이에 널리 퍼진 오컬트ㆍ현피 문화에 대한 위험성을 우리 사회에 일깨워준 흔치 않는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