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uy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

부모를 잘 만나 태어날 때부터 많은 부를 지니고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서양 속담이다. 우리나라에도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이들이 있다. 아무런 노력 없이 큰 액수의 재산을 어린 나이에 상속받은 재벌가 자제들이다.

지난 4일 재벌닷컴이 상장사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지분 가치를 조사한 결과 1억원 이상을 기록한 어린이(1999년 4월 30일 이후 출생자로 만 12세 이하)는 총 102명이었다.

보유주식 10억원 이상 어린이 18명

총 102명의 어린이 주식부자 중 100억원 이상의 보유주식을 지닌 이들은 총 3명이었다.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어린이 부자 1위는 허용수 (주)GS 전무의 장남(11세)이었다. 허군은 세 살이던 2004년에 처음으로 증여받았던 (주)GS의 주식 25만9,000여주가 현재 76만341주로 늘었다. 허군의 주식은 453억2,000만원에 달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부친인 허 전무의 보유주식은 3월말 기준 2,405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주식부자 2위는 역시 GS가 어린이인 허양(12세)이었다.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의 딸인 허양은 169억6,000만원의 주식을 보유했다. 2003년 세 살의 나이에 허양이 증여받은 GS건설 주식 2,700주는 9년이 지난 지금 6만2,700주로 23배가 넘게 불었고 네 살 때인 2004년에 받은 (주)GS 주식 13만7,000여주도 현재 19만5,916로 대폭 늘었다.

어린이 주식부자 3위는 허 전무의 차남(8)이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100억원 이상의 보유주식을 지닌 어린이들은 모두 GS가에 속해있었다. 허군은 다섯 살이던 2009년 (주)GS 주식 27만3,000주를 증여받았다.

어린이 주식부자 중 10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이들은 총 15명이었다. 박상돈 예신그룹 회장의 딸 박양(9세)이 47억2,000만원으로 어린이 주식부자 4위에 이름을 올렸고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 아들(11세)과 조카(9세)가 각각 40억3,000만원, 35억8,0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정호 화신 회장 손녀(12세)가 26억9,000만원,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손자(12세)가 22억3,000만원, 권철현 세명전기공업 대표이사의 차남(12세)이 20억1,000만원,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손녀(12세)가 18억2,000만원으로 10위권에 들었다.

그밖에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손자(7세, 17억2,000만원), 전필립 파라다이스 회장 차남(8세, 15억8,000만원), 황우성 서울제약 회장의 쌍둥이 아들(각각 8세, 13억7,000만원), 김정 삼양사 사장 아들(12세, 13억3,000만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손자(5세, 11억7,000만원), 이승용 삼영무역 사장 친인척(12세, 11억1,000만원),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아들(10세, 10억1,000만원)의 보유주식이 10억원대를 넘겼다.

범LG가 어린이 부자가 최다

어린이 주식부자들 중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이들이 속한 그룹은 GS였다. GS가의 어린이들이 1~3위를 독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수의 어린이 부자가 속해있는 곳은 범LG가였다.

이번에 조사된 어린이 주식부자 102명 중 범LG가에 속한 어린이들은 총 10명으로 전체의 10%에 달했다. 범LG가의 어린이 주식보유 순위 1, 2위는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의 아들과 조카가 차지했다. 구본천 사장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의 아들이다.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손녀(9세, 7억6,000만원), 구본걸 LG패션 사장의 친인척인 구양(8세, 7억5,000만원)이 뒤를 이었다.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의 친인척 4명은 각각 5억8,000만원씩의 주식을 보유, 눈길을 끌었다. 구자준 회장은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인 고 구철회 LIG 회장의 4남이다.

범LG가 다음으로 어린이 주식부자들이 많이 속해있는 그룹은 두산이었다. 두산에는 총 6명의 어린이 주식부자가 포진해있었다. 이중 보유주식이 가장 많은 어린이는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의 차남(12세)으로 9억9,000만원의 주식을 지니고 있었다. 박지원 사장은 두산가의 장자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3남이다.

박용현 전 두산 회장의 손자, 손녀인 박군(6세), 박양(13세)이 각각 8억7,000만원으로 뒤따랐다. 그밖에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전무의 장ㆍ차녀와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의 둘째딸(9세)은 각각 2억8,000만원의 주식을 보유했다. 박진원 전무와 박석원 상무는 박용만 두산 회장의 셋째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아들들이다.

이화일 조선내화 회장 손주 6명 주식부자

개인별로 나눠본다면 가장 많은 어린이 주식부자들과 관계된 친인척은 이화일 조선내화 회장이다. 이화일 회장은 손주들에게 주식을 증여, 6명의 어린이 부자를 배출했다. 이중 보유주식이 가장 많은 어린이는 이군(8세)이다. 이군은 조선내화의 주식 1만5,341주를 보유 9억8,000만원의 주식부자로 꼽혔다. 조선내화 주식을 각각 4억8,000만원어치(7,528주)를 보유한 두 명의 이군(6세, 3세)이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어린이 주식부자들을 배출한 사람은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이다. 구자준 회장의 친인척 어린이 5명은 각각 LIG ADP의 주식 23만2,000주를 보유 5억8,000만원의 어린이 주식부자가 됐다.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도 5명의 어린이 주식부자들과 관계됐다. 류덕희 회장의 조카딸인 심양(5세)은 경동제약 주식 3만1,000주를 보유 3억3,000만원의 주식부자에 올랐고 2만5,000주를 조금 넘게 지니고 있는 세 명의 신양(12세, 12세, 10세)들도 각각 2억7,000만원의 어린이 주식부자가 됐다.

그밖에 김홍준 경인양행 전 대표이사,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이사, 구조웅 WISCOM 회장, 이승용 삼영무역 사장, 황우성 서울제약 회장 등이 각각 4명의 어린이 주식부자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자준 회장을 제외한다면 의외로 중견기업급 회사의 인사들이 어린이 주식부자를 다수 배출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상득 의원 손자·손녀도 포함

어린이 주식부자 순위가 발표되며 가장 눈길을 끌었던 인물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손녀들이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장남(6세)군과 장녀(9세)는 각각 한국타이어의 주식 1만8,910주를 보유, 9억원의 어린이 주식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이기도 한 조현범 사장은 이 대통령의 셋째딸 이수연씨와 2001년 결혼했다.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의 아들인 구군(11세)은 (주)LB의 주식 1만6,668주를 보유, 40억3,000만원으로 전체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구본천 사장은 이상득 의원의 장녀 이성은씨와 가정을 꾸렸다.

12세 미만의 어린이 주식부자들 사이에서도 어린 축의 주식부자들이 관심을 모았다. 102명의 어린이 주식부자 중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5세 이하 어린이들의 비율은 20%(20명)나 됐다. 이들의 평균적으로 보유한 주식액수는 3억7,000만원에 달했다.

가장 어린 주식부자는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이사의 친인척인 송군(1세)이었다. 송군은 지난해 신규 상장한 와토스코리아의 주식 1억1,000만원어치(1만5,665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구자홍 LS 회장의 친인척인 이군(2세)도 태어난 지 일년밖에 안된 젖먹이 때 (주)LS의 주식 1만2,300주를 증여받아 단숨에 9억3,000만원의 주식부자에 올랐다. 김상헌 동서 회장의 친인척인 김양(2세)과 김동길 경인양행 회장 친인척인 김군(2세)도 각각 3억3,000만원, 1억4,000만원의 주식을 보유한 어린이 주식부자였다.

'짬짬이' 나눠주고… 폭락 틈타 몰아주고…


김현준기자


올해 1억원 이상의 어린이 주식부자는 총 102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점의 87명보다 15명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1억원 이상을 기록했던 어린이 주식부자 87명 중 올해 만 12세를 넘겼거나 주가하락 등으로 지분가치가 줄어든 7명까지 감안한다면 1년 만에 22명의 어린이가 새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억대 어린이 주식부자가 100명을 넘어선 것은 최초다.

재벌닷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들어 어린이 주식부자가 급증하고 있는 까닭은 대주주들이 계열사 주식을 자녀 혹은 손주들이 어릴 때부터 한 번에 수백~수천주씩 나누어 증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짬짬이 증여'라 불리는 이런 방식은 지금 받는 주식의 배당금을 이용,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데다 주식의 대량증여에 따른 세금부담과 사회적 비판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새로 억대 주식부자가 된 어린이 22명 가운데 지난해 주식을 증여받은 것은 1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2명은 과거에 증여받은 주식을 밑천으로 무상증자나 배당금 등을 통해 계속 주식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유럽발 금융위기로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한 것도 어린이 주식부자가 급증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행법상 주식을 증여할때 물리는 세금은 증여시점을 전후한 3개월 이내 평균 종가를 기준으로 부과한다. 주가가 폭락하는 틈을 타 증여 또는 저가매수를 하면 절세를 하기에도 용이하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