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전남 장성의 백양관광호텔에서 조계종 중진 8명의 승려들이 밤을 새워 억대 포커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의 한 장면. 성호 스님 제공
터질 것이 터진 것인가? 국내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 고위 승려들이 거액의 도박판을 벌여 우리 사회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것도 부처님오신날(28일)을 코앞에 두고 불거져 조계종은 일단 도덕적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종단 최고 지도자인 종정이나 총무원장의 지위까지도 위태로울 판이다.

문제는 도박사건에 조계종 국회의원 격인 중앙종회의원 등 고위층이 연루된 데다 계파간 내부갈등설까지 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정이 연일 사과하고 총무원 부ㆍ실장 등 집행부가 총사퇴에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성호 스님 고발로 불거져

조계종 도박사건은 지난 4일 불교계 인터넷 매체가 '방장 49재 날 노름으로 밤샘한 후학들'이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해당 기사에는 "전남 장성군의 한 호텔방에서 스님들이 손에는 카드를 들고 일부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만원권부터 오만원권들을 베팅하며 카드놀이에 열중한 스님들은 날이 새는 줄 몰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계종 총무원 출신으로 종단에서 멸빈(승직 박탈)된 성호 스님이 이 사건에 연루된 승려 8명을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부터. 성호 스님은 고발장을 통해 "승려 8명이 지난달 23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전남 장성군 백양관광호텔에서 술과 담배를 하며 수억원에 이르는 판돈을 걸고 포커 도박을 벌였다"며 "도박을 통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를 해쳤기에 고발하니 철저히 수사해 엄벌에 처해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성호 스님이 서울중앙지검에 도박 관련 혐의로 승려들을 고발하고 있다.
성호 스님은 고발장과 함께 몰래카메라로 찍은 13시간 분량의 도박 현장 동영상을 검찰에 자료로 제출했다. 동영상에는 반팔 차림의 스님이 호텔방에 둘러앉아 카드 패를 들여다보고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론 보도 이후 진상조사를 벌여온 조계종 총무원은 검찰 고발과 함께 동영상 일부가 공개되자 발칵 뒤집혔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도박판을 벌인 승려 8명에 대해 "즉각 전원 소환조사 해 종헌ㆍ종법에 따라 엄벌하라"고 지시하며 "특히 자성과 쇄신, 천일정진 중인 엄중한 시기에 스님들이 도박한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반성 움직임 커

종단 지도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 간부들은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10일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를 제출한 총무원 집행부 간부에는 총무부장, 기획실장, 재무부장, 사회부장, 문화부장, 호법부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종단 부ㆍ실장 간부들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겨 오전 회의에서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어 "검찰 조사와는 별도로 호법부를 통해 이번 사건의 경위를 자세하게 조사하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대국민 참회의 내용을 담은 선언과 함께 사표 수리 등 인적 쇄신을 단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계종의 최고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종정 진제 스님도 연일 언론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진제 스님은 지난 9일 조계종 도박사건에 대해 "도박 소리는 처음 들었다"며 "도박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삭발염의하고 시줏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먹물 옷을 입을 자격도 없다"고 질타했다. 이튿날에는 "내가 대신 참회한다"며 "총무원에 관련 기구가 있으니 잘 지도할 것"이라고 사과했다. 진제 스님의 발언 이후 조계종의 종단 사정기관인 호법부는 본 사건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잇따른 폭로 시발점 될까

불교계 일각에서는 기존의 계파 간 갈등이 이번 조계종 도박사건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계종 도박사건과 관련해 불교개혁 시민단체인 참여불교재가연대 정윤선 사무총장은 "2009년 가을에 현재 조계종의 총무원장이신 자승 스님이 취임하신 이후로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했었다"며 "곪아오던 계파 간의 갈등이 이번 사건을 통해 터진 것"이라 해석했다. 조계종 내 계파갈등으로 인해 도박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불교계 내 일부 인사들은 이번 사건을 종단 현 지도부를 향한 반대파의 공격으로 해석한다. 이번 사건을 고발한 성호 스님과 조계종 전 주지ㆍ총무원 사이의 악연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호 스님은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의 이력 변조설 등을 주장하며 2010년 3월부터 총무원장 당선 무효 소송 등을 여러 차례 제기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고 조계종 승적마저 박탈당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조계사 앞에서 '신밧드 사건' (2001년 조계사 고위직 승려들이 서울 강남 룸살롱에 출입해 문제가 된 사건) 재조사 등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성호 스님에 따르면 해당 동영상은 법당에 누군가 놓아두고 간 USB에 저장돼 있었다고 한다. 현 종단 지도부에 대해 불만이 있는 누군가가 이미 조계사 주지와 구원이 있는 성호 스님에게 동영상을 통해 복수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성호 스님은 결과적으로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 6명의 사퇴까지 이끌어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의 성격이 계파 간 갈등의 표면화건, 종단 지도부에 대한 공격이건 상관없이 제2, 제3의 폭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불교계에서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해 종단 고위 인사들의 개인 비리를 폭로하는 '괴문서'가 나돌고 있는 상태라 이번 사건이 어떻게 확산될 지 주목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