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경련 회장(앞줄 오른쪽)은 17일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유장희 신임 동반성장위원장(앞줄 왼쪽)을 만나 향후 실질적인 동반성장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던 동반성장지수 평가결과가 발표됐다. 평가대상은 매출액 상위 200대 기업이면서 자율적으로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한 기업 중 업종별 특성,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선정됐다.

대기업 56개사를 대상으로 했고 이중 7개사가 최하 등급인 '개선' 판정을 받았지만 재계의 시선은 홈플러스로 쏠렸다. '착한기업'을 표방하고 있던 홈플러스인지라 예상 외의 결과라는 평도 있지만 그간의 행적을 살펴보면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최하위 등급 '개선' 판정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동반성장지수 평가결과에 따르면 기아자동차,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6개사가 '우수' 등급을 받은 반면 동부건설,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홈플러스, 효성, LG유플러스, STX조선해양 등 7개사는 최하위 등급인 '개선' 판정을 받았다.

비록 제도적인 불이익은 없을지라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기업 이미지 실추 탓에 개선 판정을 받은 7개사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홈플러스였다. 대기업 골목상권 진출 논란의 중심에 위치, 가뜩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유통업체 중에서도 유일하게 최하위 등급을 받은 까닭이다. 평가대상인 56개사에 속한 유통업체 중 홈플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2개사(롯데쇼핑, 이마트)는 비교적 상위권인 '양호' 판정을 받았다.

유장희(왼쪽)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동반성장위원회에서 2011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동반성장의 또 다른 주체인 중소기업 측에서 유독 홈플러스에만 각을 세우는 것도 부담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 11일 열리 창립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등급이 업황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이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최저 등급을 받은 홈플러스에 대해서는 여론의 비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13일에는 아예 중소기업중앙회 차원에서 "창립 이후 유례없는 성장을 계속하면서도 최하위의 개선 등급을 받은 기업은 동반성장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홈플러스를 염두에 둔 논평을 냈다.

실제로 동부건설,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효성 등 함께 '개선' 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지난해 성적이 대부분 바닥을 찍은 데 반해 유독 홈플러스 만은 유례없는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홈플러스 측은 "(홈플러스)본사인 테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은 직접적인 자금 지원보다 협력회사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동반성장을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난해 4월부터 동반성장본부를 만드는 등 나름 애써왔는데 이런 결과가 낮게 나와서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착한기업' 하겠다더니

아이러니한 점은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함께 동반성장의 기치를 가장 높이 들고 있던 기업이 홈플러스였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컴퍼니 컨퍼런스'(Company Conference)를 개최, 당해년도의 경영 슬로건과 전략을 발표했다. 당시 홈플러스는 경영 슬로건을 '착한기업'으로 정하고 이를 위해 '속도경영ㆍ사회경영ㆍ배움경영'의 의미를 담은 6가지 경영 전략을 제시했다. 속도경영에는 '고객감동'과 '새로운 포맷', 사회경영에는 '동반성장'과 '사랑운동', 배움경영에는 '학습조직'과 '기업문화' 등이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고 사랑운동을 확산시켜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할 것"이라며 "학습하는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하여 존경받는 기업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착한기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UNGC 주최로 열린 '글로벌 CSR 컨퍼런스'에서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게 부담이 아닌 기회이며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어 기업의 투명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며 "경쟁을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어 사회공헌을 바탕으로 균형을 이뤄야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동반성장지수 평가서를 받아본 결과 그동안 홈플러스가 표방해왔던 착한기업의 가치가 결국 보여주기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는 SSM

더욱 큰 문제는 '착한기업' 홈플러스의 '나쁜기업' 이미지가 단순히 이번 동반성장지수 평가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마트 및 SSM(Sup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을 경영하고 있는 홈플러스는 그동안 각종 꼼수로 골목상권 죽이기에 앞장서왔다는 내용으로 중소 자영업자들의 맹비난을 받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365플러스편의점'이라는 이름으로 편의점 가맹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홈플러스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시점에 이들이 소자본으로 창업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하고자 편의점 가맹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사업 진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는 편의점은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유통산업발전법'을 피하기 위한 형태일 뿐 실제로는 SSM이라고 비난했다. 농ㆍ축ㆍ수산물의 비중을 높이고 저가 공세를 펼친다면 실질적으로는 SSM과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이다. 급기야 한국편의점협회 또한 홈플러스의 365플러스편의점은 미니 SSM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며 직영점 개점이 여의치 않자 결국 홈플러스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가맹점 형태로 1호점을 열었다.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으로 인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월 2회 의무 휴무와 심야영업이 규제되자 홈플러스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규제를 피해갔다. 당초 '대형마트'로 등록돼있었던 주요 지역 점포들을 '쇼핑센터'로 변경한 것이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중순 화성 동탄점(메타폴리스), 고양 킨텍스점·터미널점, 분당 오리점(애플 프라자)·야탑점(성남종합터미널) 등 경기도 내 5개 점포를 비롯해 부산 동래점, 서부산점과 진주점, 거제점 등에 대해 해당 지자체에 '대규모 점포 개설 변경등록 신청 사전 알림의 건'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홈플러스 측은 "매장과 함께 입주된 쇼핑센터의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전했지만 업계 내에서는 유통산업발전법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로 해석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홈플러스는 '착한기업' 이미지는 자신이 갖고 부담은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협력업체에 매장 판촉사원 인건비를 떠넘겼다는 내용과 협력업체가 내는 수수료의 일종인 판매장려금률을 부당하게 인상했다는 내용으로 홈플러스를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허위 제보에 따른 통상적인 조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만약 협력업체의 제보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위법행위를 한 홈플러스는 '대규모 유통법에서의 거래 공정화법'에 따라 과징금을 물게됨은 물론 동반성장을 저해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에 시행된 '대규모유통법 공정화법' 제12조에 따르면 대규모유통업자는 납품업자 등으로부터 종업원이나 그 밖에 납품업자 등에 고용된 인력을 파견받아 자기의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정부의 길들이기?

일각에서는 이번 동반성장지수 결과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대해 정부가 홈플러스를 위시한 유통업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이어졌던 일련의 의혹과 이승한 회장의 강력한 발언, 유통업계에서 차지하는 이 회장의 위치, 외국계 기업이라는 홈플러스의 특이성 등 여러 이유로 홈플러스가 정부의 표적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경영 운동'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는 수박과 같아서 겉은 파랗지만 잘라보면 빨갛다"며 유통업계 규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정부가 기업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시장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동쪽에서 시작한 정권이 서쪽으로 가고 있다"며 "이러다 나라 망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회장이 롯데마트, 이마트, 킴스클럽 등 유통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회장으로 있는 점도 정부의 홈플러스 압박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표격인 이 회장의 홈플러스를 강하게 압박해서 전체 유통업계의 경각심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동반성장 의지가 강력해 유통업계들이 바짝 몸을 낮추고 있는 상태"라며 "홈플러스는 외국계 기업이라서 그런지 현 상황에 대안 위기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동반성장지수 후폭풍에 동반위 '쩔쩔'
'우수'부터 '개선'까지 4등급 실명공개에 대기업들 반응 격렬


김현준기자


동반성장지수 평가결과 발표에 평가 대상 대기업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실명이 공개된 데다 '우수'부터 '개선'까지 4등급으로 나뉘어 줄 세우는 바람에 기업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하위 등급인 '개선' 판정을 받은 기업들은 이번 평가결과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에 '개선' 등급을 받은 7개 업체는 동부건설,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홈플러스, 효성, LG유플러스, STX조선해양이다. 이들은 동반성장 노력을 해왔음에도 업종별 특성이 무시된 판정에 불명예를 입었다는 반응이다.

대표적으로 한진중공업의 경우 11개월간의 장기간 파업이라는 특수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던 데다 업황이 좋지 않았던 조선업계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했다. 실제로 최하위 등급을 받은 7개 기업 중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STX조선해양 등 3개사가 포함돼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현대미포조선은 현대중공업그룹의 3개사가 같은 수준의 동반성장을 실천하고 있는데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은 '보통' 등급을 받고 자신만 '개선' 등급을 받은 것에 대해 지적했다.

통신업체 중 유일하게 '개선' 등급을 받은 LG유플러스 측도 "동반성장지수가 결국 실적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며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동반성장지수 평가기준 중 현금 결제 비율, 자금 지원 등이 포함돼 있어 당해년도 실적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급기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 단체들마저 우려를 표하자 동반성장위원회에서도 사태진화에 나섰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회 16일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반성장지수 발표 이후 사회적 영향 등을 고려해 평가지표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력했다"며 "이번 지수 발표를 계기로 동반성장이 한층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